안아주세요

따뜻한 품의 온기

by Pearl K

어린 시절, 엄마는 우리를 참 많이 안아줬다. 엄마의 커다란 품속에 폭 안겨 있노라면 세상의 어떤 두려움도 이겨낼 만큼 안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이가 들고 내 덩치가 커지면서 어느 순간부턴가 포옹의 빈도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변한 엄마가 섭섭해서 동생은 그렇게 자주 안아주면서 왜 나는 안아주지 않냐고 항의해 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어리광 부리지 말라는 말뿐이었다.


사람은 결핍을 통해 자신의 필요를 선명히 느끼게 되는 법이다. 사실 나는 촉감에 민감한 아이였다. 그런 내게 엄마의 포옹은 그녀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몸으로 확인할 수 있는 매개체였다. 간절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나를 안아주지 않는 엄마를 보며 점점 내쳐지고 버려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삼 남매 중 둘째로서 오빠와 동생에게 빼앗긴 애정을 친구들에게서 채워보려 했지만 그것 역시 나의 오산이었다.


반에서 만난 친구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를 진짜 친한 무리들 사이에 끼워주는 일은 드물었다. 애정을 얻고자 했던 관계 속에서 나는 불안만 더 키우게 되었다. 사춘기 즈음에는 심각해진 아토피와 그에 따른 원치 않는 학교폭력을 경험하며, 내 몸에 속한 모든 것과 몸에 닿는 것들이 모두 더러운 것처럼 취급되었다. 친구들이나 가족들 사이에서 나눌 수 있는 모든 친밀한 스킨십들로부터 나는 철저히 거부당하고 배제되었다. 나를 괴롭혔던 아이들의 말처럼 나는 다시는 깨끗해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중학교 3학년 여름수련회의 마지막 밤이었다. 캠프파이어가 끝난 후 목사님은 애찬식을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먼저 다 같이 커다란 원을 그려 서고, 끝 사람부터 원을 따라 서 있는 사람들을 일대일로 만나 인사를 하고 위로와 격려의 말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서로를 꼭 안고 토닥거려줬다. 큰 원이 안으로 들어가 작은 원을 그려가며 모두와 인사를 끝낸 사람은 다시 줄의 끝에 가서 섰다. 그렇게 그날 밤 수련회에 참석한 학생과 선생님까지 80여 명은 서로를 일일이 격려하고 위로하고 안았다.


처음에는 시켜서 했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심을 다해 서로를 꼭 안아주었다. 나를 싫어하던 친구도, 내게 관심 없던 친구도 나를 밀어내지 않고 안아주었다. 마음이 가득 담긴 80번의 포옹을 받으면서 내면의 불안과 외로움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마지막 순간에는 서로가 서로를 겹겹이 얼싸안는 것으로 그날의 캠프파이어가 마무리되었다. 말할 수 없던 나의 결핍은 포옹이 전해준 사랑으로 가득 채워졌다.


이게 진짜 세례가 아닐까. 이웃집 아주머니의 전도로 일곱 살 때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지만, 사람들에게 진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었다. 진짜 사랑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던 건 그때 그 수련회의 밤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기회가 된다면 교회 중고등부에서 교사로 봉사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좀처럼 오지 않던 기회는 교회를 뛰쳐나갈 정도로 격렬했던 신앙의 반항기를 경험한 후에 찾아왔다.


보통 주일학교 교사는 예배를 함께 드리고, 성경을 풀어서 설명해주는 공과공부를 진행하게 된다. 교사로 봉사하면서 내가 아이들에게 주고자 했던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사랑이었다. 너희의 존재 자체로 충분히 소중하다고, 사랑받을 만하다고. 그런 마음을 전할 방법으로 나는 안아주기를 택했다. 어릴 적 내가 엄마의 품에 안겼을 때, 여름수련회 마지막 날 친구들과 포옹했을 때, 그때 받았던 따뜻한 온기를 그대로 전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춘기를 지나는 중학생들이다 보니 포옹 자체를 몹시 어색해하기도 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나는 “선생님이 한 번만 안아줘도 될까? 싫으면 싫다고 해도 돼.”하고는 허락을 받으면 아이들을 언제나 꽉 안아주었다.


품에 꼭 안고 다독여주다 보면 엉엉 소리 내어 우는 아이도 있었다. ‘왜 눈물이 나지?’ 하며 멋쩍어하다가 눈물 콧물 범벅된 얼굴을 민망해하기도 했다. 그런 아이는 갈비뼈가 으스러지도록 더 꽉 안고 토닥여 주었다. 내가 가진 치트키는 사랑을 가득 담은 포옹 하나였지만, 사랑을 전해주려고 아이들을 안고 있노라면 오히려 내가 더 위로받았다. 지나고 보니 아이들에게 가르쳐 준 것보다는 내가 받은 게 훨씬 더 많았다.


지난 17년 동안 학교에서 또 교회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알았다. 누군가를 따스하게 안아줄 수 있고, 누군가에게 안길 수 있는 것이 그 어떤 말보다 얼마나 큰 힘이 되어주는 일인지. 나는 너를 거부하지 않는다고, 너는 안전하다고 넌 사랑받고 있다고 온몸으로 아이들을 꽉 끌어안고 사랑의 마음과 온기를 전했던 그 순간이 내게도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게 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게리 채프만의 책 ‘5가지 사랑의 언어’에 따르면 사랑에는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의 다섯 가지 언어가 있다고 말한다. 각자가 가지고 태어나는 사랑의 언어는 다르고, 이것은 연인관계나 부부관계뿐만 아니라 나와 관계 맺고 있는 타인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된다. 수많은 사랑의 언어와 각자에게 맞는 사랑의 표현은 다 다르겠지만, 분명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따뜻한 품의 온기가 나를 살렸고, 더 나아가 아이들이 살아나게 한 힘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그 마음을 전해주고 싶다.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계속해서 주어진다면, 꽉 안아주는 걸로 변함없이 사랑을 전하려고 한다. 아이들을 온몸과 마음으로 꼭 안아주고 사랑을 전해주고 다독여주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나 역시 그렇게 따뜻한 품의 온기를 통해 사랑을 전해 받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변하고 시대가 달라져도 사랑은 결코 실패하지 않을 거라고 믿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