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남들이 겪지 않아도 될 일을 참 많이 겪으며 자랐다. 유난히 감성적이고 예민한 편인 성격이라 내가 겪어야 했던 일들은 다른 사람들의 체감보다 몇 배나 더 크게 상처로 다가왔고 그렇게 나를 바꾸어 놓았다. 그 시간의 고통과 어둠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나를 탓하고 부모님을 탓하고 세상을 원망했다.
사실은 내가 꽁꽁 숨겼으면서 나의 힘듦을 몰라주었던 부모님을 원망했다. 그렇게 부모님께 답답한 속을 쏟아놓으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나는 세상을 원망하면서 나 자신도 지독하게 미워했다. 버텨내지 못하고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져 버린 나의 연약함이 죽도록 싫었다.
알고 보니 나는 평생 나 자신을 가장 미워해 온 사람이었다. 단번에 생명을 버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떤 일이 생길 때마다 어린 시절의 고통스러웠던 기억과 이어져 자책과 자괴감이 점점 심해졌다. 다른 것은 다 용서해도 나 자신만큼은 용서가 안 되었다. 결국 그런 자책들로 스스로를 천천히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가장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은, 용서받아야 할 사람은, 용서해야 할 사람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 자신이었다. 이제까지 방치하고 버려두었던 자신, 건강에 나쁜 음식들로 몸을 망가뜨린 것, 현실을 마주 보지 않고 도피하여 나를 깊은 동굴 속에 가둔 것. 그것 모두가 나의 잘못이었다.
내 문제로 부모님을 향한 끝없는 원망을 했던 모든 순간이 죄송스럽다. 나는 나를 미워하는 법만 배웠지 용서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었다. 이제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 그때 나는 어린애였다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그래도 조금은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오랜 미움과 증오에서 용서받은 나는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성경에는 많이 용서받은 사람이 많이 감사한다는 말이 있다. 스스로 원망했던 시간들을 넘어 용서받은 사람답게 많이 감사하며 살아가고 싶다. 나의 모든 고통을 유발했던 나의 어리석음은 이미 용서받았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