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무엇을 믿으면서 살고 있는가. 우리의 믿음은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는가. 내가 믿는 것이 진실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믿음이란 어쩌면 너무 쉽게 시작되고 너무 쉽게 깨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힘이 되어주는 것은 그것이 정말 믿을만한가 보다 내가 무엇을 진심으로 믿고 살아가는가에 달려 있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각종 SF영화를 보며 자라온 세대지만, 가장 충격적이었던 작품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일리언(1979)’이었다. 초등학교 때 우연히 TV에서 보게 된 이 영화는 아이들의 상상력에 불을 지폈다. 사람들 사이에 사람으로 위장하고 사는 외계인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가졌을지 모르지만, 지구가 아닌 저 먼 은하나 성운의 별 어디쯤 지적 생명체가 있을 거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수없이 접한 외계인과 UFO에 관한 이야기들과 전 세계적으로 이런 류의 목격 현상들이 수도 없이 증언되었던 것도 보았다. 막상 한국에서는 이렇다 할 정보를 찾기가 힘들었다. 미확인 비행 물체나 다른 은하의 지적 생명체가 외국만 골라서 나타나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최근 한국에서 외계인과 UFO 등을 소재로 삼아 본격적으로 다룬 몇 편의 작품들은 그래서 더욱 흥미로웠다.
며칠 전 Netflix에서 공개된 드라마 ‘글리치’는 그동안의 이런 소재를 다룬 작품들과는 조금 결이 다른 느낌이다. 평범해 보이지만 어릴 때 갈대밭에서 본드를 흡입한 이후 가끔 눈앞에 외계인이 보이는 여자 홍지효(전여빈). 오랜 시간 사귄 남자 친구가 동거를 제안하지만 지효는 헤어짐을 선택한다. 그렇게 2주 후, 전 남친 이시국(이동휘)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사실을 듣게 되는 지효.
외계인이 전 남친을 데려간 게 분명하다고 생각한 지효는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지만 성인 남성의 실종은 수사 거리가 되지 않는다. 사라진 전 남친을 찾으려고 외계인 오타쿠 모임까지 찾아가지만 별 소득이 없다. 하지만 그곳에서 지효는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친구 보라(나나)를 다시 만나게 된다. 보라를 통해 딸의 실종을 조사하던 김직진 씨가 의심했다는 한 사이비 종교단체를 조사해 보기로 한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계속 생각해 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는 부모님, 경찰서의 형사, 직장 동료들, 오래된 친구, 동호회 사람들 등 믿음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들이 등장한다. 수시로 외계인을 보는 환경 속에 살아온 지효는 처음에는 그 누구도 믿지 못한다. 오히려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지효가 신뢰하고 믿음을 주는 대상과 범위가 조금씩 넓어지는 게 보였다.
등장하는 사이비가 기독교 계열의 이단 종교라는 설명 때문에 성경 말씀을 인용하는 것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진짜 믿음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다. 전여빈, 이동휘, 류경수, 김남희, 고창석, 손숙 등 믿고 보는 배우들의 호연과 아이돌 애프터스쿨 출신으로 배우가 되었지만 배역에 찰떡이었던 나나까지. ‘글리치’를 보기 시작한 후 순식간에 마지막 편까지 이어서 보게 만든 힘은 탄탄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연기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글리치’를 보면서 등장인물들의 각자 다른 대처와 반응하는 방식을 지켜보는 것이 즐거웠다. 또한 각자가 믿고 있는 삶의 가치 속에서 결국 무엇을 선택할지는 본인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UFO와 외계인, 납치 그리고 사이비 종교까지 난해할 수 있는 주제를 귀엽고 위트 있게 표현해 주셔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