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온 인생을 한두 줄로 요약할 수 있을까? 살아오는 동안 경험했던 수많은 만남과 이별, 내가 해 온 일, 맺었던 관계 등 나를 규정해주었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나면 인생에는 무엇이 남게 될까?
혼자 죽는 사람은 있지만 혼자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고독사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죽음을 처리하고, 사망진단서를 발급하며, 남겨진 가족을 찾아서 부고를 전해주는 업무를 하는 남구청 복지과 무연고 사망 담당자 주무관 독고 정순. 그녀의 별명은 저승사자다.
그녀가 작성하는 사망진단서는 좀 특별하다. 단지 한두 줄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고인에 대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사망진단서에 담으려고 노력한다. 사실 정순은 그동안 맡았던 외로운 죽음들처럼 자신도 홀로 남아 죽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 공연을 볼 때는 국내 창작 뮤지컬 초연이다 보니 전반적으로 서걱거리는 느낌이 있었는데 두 번째의 관람에서는 공연이 전체적으로 훨씬 더 부드럽고 매끈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인공 두 분 외에도 등장 비중이 가장 큰 관리인과 보험왕 역을 맡은 두 분 배우님이 편안하게 연기해주시니 좋았다.
주인공인 독고 정순과 서산 모두 개인의 인생에 일어난 힘들고 어려운 일들로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상태이다. 그렇게 매일 반복되는 하루를 겨우 버티며 살아간다. 삶을 버텨내는 시간 동안 무연고 사망자들의 죽음을 가까이서 접하고, 그 가족들을 만나면서 오히려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고 담아두었던 자신의 아픔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이 작품은 이미 10여 년 전에 워크숍 리딩 공연으로 올려졌었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매체를 통해 더 많은 외로운 죽음들을 접하고 들어왔기에 이제는 뻔한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도 점점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각자의 삶에 바빠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누가 있는지 돌아보지 못하는 동안 혼자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고독사도 지나치게 늘고 있다.
한참 전이지만 독거노인을 돕는 봉사활동을 했던 적이 있었다. 함께 살던 남편과 자녀까지 가족들이 모두 일찍 돌아가시고 혼자 오랫동안 살아오고 계신 노인 분이셨다. 사소한 것조차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뼛속 깊은 외로움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한 몇 년 전 나의 가족인 친척이 고독사 하신 일을 직접 경험하기도 했다.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것들이 멀지 않은 가까운 상황이라고 공감이 되는 이유다.
뮤지컬 ‘어차피 혼자’는 공연의 제목 자체에 커다란 역설을 담고 있다. 제목과는 달리 작품에서는 인간이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혼자 태어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혼자서 죽는 사람도 없어야 한다고.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지만 누구도 혼자여야 하는 사람은 없다. 결국 이 작품은 혼자 사는 삶이 아닌 서로를 지키고 연대하며 확인하고 함께하는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계절의 변화가 온몸으로 느껴지는 시기다.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혼자 계시는 분들에게 춥고 쓸쓸한 시간이 되지 않도록 서로의 기댈 곳이 되어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쉽지는 않지만 내 문제에만 향했던 시선을 돌려 내 주변부터 체크해 보자. 그렇게 한 걸음씩 외로운 이들에게 다가가 주는 것만으로도 이 오래된 고독을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때론 혼자, 때론 함께 서로의 삶을 조금씩 돌보아 주자. 끝까지 함께 살아보자. 그 누구도 혼자 남아 죽음을 맞지 않도록. 인생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