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을 이틀 앞둔 밤, 이태원에서 축제를 즐기러 나온 10만 명의 인파 속에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미 대형 인파가 운집할 것은 예고되어 있었다. 통제가 사라진 좁고 경사진 골목길 위에서 사람들은 인파에 떠밀려 넘어졌고 손을 쓸 틈도 없이 무려 300여 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낸 압사 사고가 일어났다.
이러한 참사를 두고 각계각층의 반응은 참담했다. 피해자들과 유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어 보였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희생되었는데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 공감 능력이 없는 소시오패스가 넘쳐나는 걸까. 답답한 마음으로 내린 결론은 이랬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한다. 때로 그것을 감추기 위해 다른 방향으로 더욱 강렬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자신들의 이해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해서 함부로 말해도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기성세대들에게 핼러윈 문화는 아직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반면에 젊은 세대들에게는 유치원에서부터 이어져온 하나의 축제 같은 문화다. 코로나로 오랫동안 계속된 봉쇄는 젊음을 한참 누려야 할 시기에 아이들을 몇 년 동안이나 집안에만 가두어 놓았다.
지금 세대들은 그 흔한 소풍과 수학여행, 하다 못해 체육대회조차도 몇 년 동안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오랜만의 제대로 된 축제를 즐기고 싶었을 뿐인 피해자들에게 이번 참사에 대한 책임을 돌리는 것은 몹시 부당하다.
사실 사람이 많이 몰리게 되면 일어나는 사고는 아주 예전에도 있었다. 이미 20년도 더 넘은 이야기다. 한때 어마어마한 인기를 자랑했던 뉴키즈 온 더 블록 내한 공연 때 수많은 인파로 인해 유사한 사고가 일어났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불과 몇 년 내에도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에서 비슷한 사고가 일어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 이태원에서는 매년 핼러윈 축제가 열렸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함께 이 축제를 즐겼고, 이번보다 두 배나 많은 20만 명의 사람들이 운집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아무런 사고가 없었던 이유는 사전에 이 사실을 인지하고 인력들을 배치해 거리의 통행을 관리했기 때문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이전에 핼러윈 축제가 열렸을 때 이태원 거리를 통제하는 인원이 800명이나 동원되기도 했었단다. 이번 핼러윈 때 거리를 통제하는 인원은 130명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거리 통제에 모두 투입한 인원이 아니라 혹시 있을지 모르는 마약사범을 잡기 위한 경찰 인원들도 있었다.
사고가 일어난 것을 인지한 후에 수많은 시민들이 경찰과 소방관들과 함께 사람들을 구조하려고 애를 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젊은 생명들이 살아남지 못했다. 누군가의 잘잘못을 떠나 생때같은 목숨들이 세상을 떠났고, 이건 국가적인 비극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참사가 일어난 지 겨우 이틀도 지나지 않았다. 지금은 판단과 평가를 넣어두고 단지 애도하고 슬퍼해야 할 때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애끓는 마음을 헤아린다면 더욱 그렇다. 이번 참사로 희생된 젊은이들과 유가족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깊은 위로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