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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Nov 08. 2022

변검술의 비밀

변검이라는 공연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등장인물은 한 명, 고개를 저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가면이 바뀌는 신기한 중국 전통 가면술이다. 변검을 공연하기 위해서는 너무도 어려워서 수많은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기에 전통 변검의 맥을 이어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한다. 이 변검술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배우가 비단(또는 천, 비닐, 고무 등등) 위에 그린 몇 장의 검보(가면)를 얼굴에 여러 겹 겹쳐서 덮어 두고 각 장마다 실을 매어 두거나 특정 위치에 고정시켜 두었다가 한 장씩 찢어버리는 것이다. 이때 배우는 검보를 바꾸는 동작이 관중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찢어버린 가면이 들통나지 않게 옷 안쪽이나 통이 넓은 소매 안으로 재빠르게 감추는 기술을 통해 순식간에 가면이 바뀐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주: 블로그 지식 글 참고)


   마치 마술 같기도 한 변검술을 사용하는 사람이 전통 변검의 후계자뿐만은 아닌 것 같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아무 가면도 쓰지 않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홀로 편안한 공간에 있을 때와는 달리 직장에서는 사회생활의 가면을, 시어른들 앞에서는 며느리의 가면을, 나의 속내를 들키고 싶지 않은 이들 앞에서는 무표정의 가면을 쓰기도 한다.


   그렇게 나 역시 다양한 가면을 쓰고 살아가다 보니 때로는 가면을 벗고 누군가를 마주하는 것이 몹시 두려워 애써 스스로를 감추기도 하고, 어떨 때는 믿을만한 사람인 거 같아 가면 없는 맨얼굴을 드러냈다가 멀어지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인간에 대한 신뢰가 전부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계속 그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면 아주 얇더라도 나를 감추는 가면을 쓰고 사는 것이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다만 가끔 고민되는 지점이 있다. 바로 타인에게 다른 누군가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느껴질까 하는 생각이다. 나의 이기심들에 상처 입은 누군가가 있지는 않았을지. 잘한다고 했는데 내가 바라는 대로만 해서 오히려 멀어진 누군가가 있지는 않았을는지. 혹은 이유도 모르게 마음속으로부터 미움받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하는 것들이다.


   직업상 몇 년에 한 번씩은 이동이 있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20년이 조금 못 되는 시간 동안 일을 하며 만난 사람들을 다시 생각해 본다. 깊이 알면 알수록 처음에 알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에는 세상 친절해 보였는데. 알고 보니 이기적이고 무례하게 구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첫인상은 약했지만, 은근히 마음 씀씀이가 다정하고 배려심 있어 갈수록 더 좋아지는 사람도 있다.


   시간이 갈수록 더 깨닫게 되는 점은 어떤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그 사람을 직접 경험해 보아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떠도는 가십이나 소문, 뒷이야기 같은 것들에만 집중하다 보면 한 사람을 제대로 마주하기도 전에 커다란 편견이 생겨버리기도 한다. 내가 당사자라면 그런 편견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을 원치 않을 테니 나도 좀 더 마음을 열어보기로 했다.


   이제 곧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과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는 시기가 다가온다. 설렘이나 기대감과 동시에 약간의 두려움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가면을 쓴 얼굴로 만나더라도 서로를 찬찬히 알아가면서 언젠가 나를 감춘 가면을 벗어도 되겠다는 믿음이 생길 거라고. 가면 속에 갇혔던 우리가 가면을 벗어도 안전한 공간에서 서로의 맨얼굴을 마주하고 웃을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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