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져!

너 지금 나한테 꺼지라고 했니?

by Pearl K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의 담임을 맡았다. 교회 중등부 남학생들 다섯 명에 여학생 두 명. 중학교 1학년 때 새 가족으로 와서 새 가족 반을 맡아 내가 직접 진급시켰던 아이도 있었다. 반장을 하고 싶다고 지원한 정훈이를 반 대표로 정하고 반 아이들과 매주 만나 함께 예배를 드렸다.


한참 바깥에서 뛰어놀 나이의 중학생 남자아이들과 예배가 끝난 후, 성경 공부 소그룹을 진행하는 건 쉽지 않았다. 이미 예배 시간에 지쳐 버려 소그룹에서는 거의 집중시키기가 힘들었다. 다양한 먹거리와 이벤트를 활용하며 아이들과 한 해를 보냈다. 부활절과 새 가족 초청 잔치를 무사히 마치고 여름수련회를 준비하며 학생들에게 수련회 참석을 독려하는 타이밍이었다.


꼼꼼한 편인데다 확인을 중시하는 성격 덕분에 무엇이든 반복 안내를 하는 게 익숙했다. 여느 때처럼 반 아이들에게 수련회 관련 문자를 주당 한 번씩 보냈다. 소그룹 시간에 이미 안내문을 나누어주었지만, 혹시 부모님께 전달하지 않거나 잊은 아이가 있을 수 있어서였다. 문자를 보낸 후 나도 일하느라 바빠 한참 후에 핸드폰을 확인했는데, 반장에게서 답 문자가 와 있었다.


문자를 여는 순간 “꺼져!!”라고 적힌 것을 보았다. 순간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평소에 내가 본 정훈이는 말을 그렇게 하는 아이가 아닌데, 도대체 문자를 왜 이렇게 보낸 걸까?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나와의 관계에서 정훈이가 속상할 만한 일이 있었는지를 되짚어 보기도 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훈이의 문자는 잔잔하던 하루에 커다란 돌을 던져 놓았다.


몇 시간의 고민 끝에 “정훈아, 이 문자 선생님한테 보낸 거 맞아?”하고 물어보았다. 문자를 보내면서도 막상 어떤 답변이 돌아올까 두려웠다. 답은 다시 오지 않았고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주일에 다시 정훈이를 만났지만 1학기 기말고사를 앞둔 시점이라 문자에 대해 직접 물어보기가 매우 난감했다. 머릿속은 복잡하고 학생들은 분주하고, 기말고사까지 겹쳐 한 주는 소그룹을 쉬고 일찍 아이들을 집으로 보냈다.


드디어 기말고사가 끝나고 여름방학과 동시에 여름수련회 준비가 시작되었다. 정훈이와의 그 일은 계속해서 내 마음 한편에 찜찜함으로 남아있었다. 둘째 날 수련회 일정을 모두 마치고 조별로 다 같이 간식을 먹는 시간. 정훈이에게 조심스레 문자에 대해 물어보았다. 정훈이는 순간 당황한 듯했으나 이내 “그거 친구가 장난친 거예요.” 하고 대답했다.


“친구가 장난을 쳤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했더니, 자기가 화장실 간 사이에 친구가 맘대로 답 문자를 보낸 거였다고 했다. “정훈이가 그런 게 아니라는 거지? 알겠어. 너도 당황했겠다.” 했더니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민망하게 웃는다. 그렇게 강렬했던 “꺼져!”의 문자는 웃지 못할 해프닝으로 일단락되었다. 정훈이에 대해 오해할 뻔했는데. 뒤늦게나마 풀 수 있도록 기회가 생겨서 다행이었다.


가끔 사소한 오해가 생길 때가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도, 어른들을 만날 때도 본의 아니게 오해하게 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일들이 생긴다. 업무를 하면서 의도치 않은 서운함이 발생하기도 하고, 잘 알지 못하면서 오해하는 말들로 마음이 상할 때도 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오해를 사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일들이 생긴다. 나 역시 오해로 인해 누군가에게 꽁한 마음을 가지게 되기도 하고, 그런 감정이 몇 달 동안 해결이 안 되는 일들도 있다. 이런 부분들은 그때그때 해결하지 않으면 작은 오해가 커져 깊은 균열을 만들기도 한다. 매번 배우면서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게 단점이다.


예전에는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분명하게 배운 건 말하지 않으면 상대는 알 수가 없다는 거였다. 내가 타인의 생각과 마음을 알기 어렵듯, 타인도 나에 대해 말해주기 전에는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걸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학교든 교회든 어디에서나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나 가르치는 아이들과도 오해가 쌓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말로 내 감정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성숙한 인간이 되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불필요한 오해 없이 건강하고 발전적인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