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식탁의 양쪽 끝에서 각자 고개도 들지 않고 식사를 하는 남녀의 모습으로 영상은 시작된다.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상대에게 다가와 많은 말들을 쏟아내지만 듣지 못한다. 남자는 음식을 먹으며 간간이 한숨을 내쉬고, 여자는 입맛이 없는 듯 음식을 뒤적거린다.
서로를 쳐다보지도 못하는 부부 그리고 서로를 향해 무언가를 계속 요구하는 그림자. 자세한 정보를 읽지 않고 영상을 볼 때는 가정폭력이나 부부싸움에 관한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여자가 세탁기에서 아이의 옷을 발견했을 때는 아동학대에 관련된 건가 싶기도 했다. 결론은 다 아니었다.
이 애니메이션은 학교에서 일어난 총기사고로 인해 갑작스럽게 아이를 잃은 부모의 일상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힘들어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던 영상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림자 부모를 통해 남녀가 사랑을 하고 부모가 되어 아이를 만나고, 아이가 씩씩하게 자라는 과정을 보여준다.
가장 가슴이 아팠던 건 사고가 일어난 그날, 있는 힘을 다해 아이가 학교에 못 가게 막는 장면이었다. 부모는 아이가 학교로 가지 못하게 온 힘을 다해 반복해서 막아보지만 안타깝게도 아이는 실체가 없는 그림자뿐인 부모를 무심하게 지나쳐 간다.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아이 그리고 성조기가 그려진 체육관 문 안에서 들리는 연발의 총성. 화면 가득히 뜬 휴대폰에는 이런 메시지가 남겨진다. “"If anything happens I love you."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사랑해요.
급작스럽게 일어난 대처할 수 없는 사고 앞에서 아이가 부모님께 남긴 메시지의 마지막은 사랑한다는 말이었다. 황망하게 아이를 잃어 어찌할 줄 모르는 슬픔을 겪는 부모. 그 위로 그림자가 된 아이가 눈물처럼 검은 비가 되어 내린다.
며칠 전 란초 님이 쓰신 가까운 곳에서의 총기사고에 관한 글을 읽었다. 그리고 우연히 오늘 이 영상을 클릭하게 되었다. 어떤 내용인지 모르고 보기 시작했기에 뒷부분에 스토리를 깨닫고는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다.
최근에 종영한 드라마 '미씽 2: 그들이 있었다'를 보면서도 매 회차마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게 있다. 바로 사랑하는 누군가를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잃는다는 것은 도무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정도의 고통과 슬픔을 가져오는 일이라는 것이다.
알고 지내던 사이이기만 해도 마음이 어려운데, 하물며 정말 가까운 친구나 가족 특히 자녀에게 갑작스러운 황망한 죽음이 찾아온다면 상상하기조차 싫은 일일 것이다. 고작 12분의 짧은 애니메이션 영상이지만 정말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유월절 마지막 만찬이 끝나고 예수의 제자 중 하나가 칼로 예수를 잡으러 온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자르는 사건이 발생한다. 예수는 그 제자를 향해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하고 말씀하신다.
자식을 황망하게 잃어야만 했던 수많은 비통한 목소리들은 왜 여전히 묻혀 있는 걸까. 미국의 수정헌법으로 보장된 개인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개인이 자유하기 위해서 우리 아이들의 안전이 끊임없이 위협받는다면 그것은 자유일까 방종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