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인데도 믿기가 힘들다. 평소처럼 퇴근하는 길이었다. 오늘은 병원에 들러야 해서 조금 시골길 같은 길로 달리고 있었다. 잠시 정지 신호에 걸려 있다가 다시 출발하려는데 앞차가 급정거를 했다. 다행히 나도 늦지 않게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었다.
그때였다. 눈앞에 진한 갈색의 털과 짙은 고동색 갈기를 가진 말 한 마리가 달려서 지나가는 거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이게 현실인가 하는 생각도 들어서 나는 달려가는 말을 잠시 멍하니 쳐다보았다.
말은 차들 때문에 살짝 당황한 듯하더니 기다려주는 차들 앞으로 가로질러 맞은편 차선을 지나 나와는 반대방향을 향해 달려갔다. 잠깐의 최면에서 깨어난 듯 곧 앞차가 출발했고 나도 그 뒤를 따라 다시 출발했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하고 생각해 보니 아마도 근처의 종마 목장에서 말 한 마리가 탈출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탈출한 말이 도로 위에서 발견한 건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자기보다 더 빨라 보이는 쇳덩어리들이 쌩쌩 달리는 광경을 보며 겁이 나기도 하지 않았을까.
멋지게 생긴 말은 그렇게 자유를 찾아 갈기를 날리며 고속도로 위를 날듯이 달려갔다. 내가 저런 장면을 어디서 본 적이 있나 가만히 생각해 봤더니 바로 1999년에 개봉했던 크리스 오도넬, 르네 젤위거 주연의 영화 '청혼' 속에서 본 적이 있었다.
자신을 자유로운 야생마라고 생각하며 결혼을 회피해 온 총각 지미(크리스 오도넬)의 인생관이 비상사태를 맞는다. 하루 안에 결혼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남긴 유산 1억 불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애인인 앤(르네 젤위거)에게 성의 없는 청혼을 했다가 차였고, 그녀는 그를 떠났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그는 기억이 가물가물한 옛 여자들을 찾아 청혼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이 영화 속 장면에서 결혼을 표현하는 방식이 바로 들판을 자유롭게 달리는 야생마에 목줄과 멍에를 채우는 것이었다. 그 영화 외에는 목줄도 안장도 멍에도 매고 있지 않고 자유롭게 달리는 말을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잠깐의 찰나였지만 지나친 이후에도 그 말은 무사히 자유를 찾았을지 아니면 뒤따라 나온 승마장 직원들에 의해 강제귀가 되었을지, 혹은 미처 피하지 못한 채 사고를 당하지는 않았을지 몹시 걱정도 되고 궁금해졌다. 개인적인 소망이라면 그 말이 어디에서건 충분히 자유를 누릴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