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손맛

by Pearl K

엄마의 요리는 언제나 맛있었다. 누구나 자기 엄마가 한 음식에는 익숙해지기 마련이지만, 엄마 손으로 만든 음식을 먹으면 다른 곳에서 먹는 것보다 열 배는 든든했다. 엄마는 요리를 할 때 언제나 좋은 재료를 쓰는 데다가 손도 큰 편이라서 음식을 한 번 하면 푸짐하게 하는 편이었다. 한창 잘 먹는 나이의 아이들 세 명을 키우느라 더 그랬겠지만 말이다.


엄마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병원에 두 달간 입원해 있었던 때를 제외하고는 엄마는 매 끼니를 항상 직접 챙겨 주셨다. 당시에는 배달 음식이라는 것이 전혀 없어서 아빠가 퇴근길에 사 오시던 치킨이나 특별한 날 중국집에 가서 먹는 짜장면이 아니면 외식의 기회도 거의 없었다. 그러니까 거의 이십 년 동안 세 아이들과 아빠의 끼니를 오롯이 혼자 엄마가 챙겼던 거다.


엄마의 음식이라고 했을 때 기억에 남는 장면 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생일 파티 날이다. 하교 후에 친구들이 집으로 왔는데 가장 넓은 상 두 개에 가득 차려져 있는 음식을 보고 다들 눈이 왕방울 만하게 커졌었다. 음식을 먹는 아이들은 연신 맛있다를 외쳤고 생일파티의 주인공이었던 나는 왠지 뿌듯했다.


두 번째 기억은 엄마가 만들어주던 부드럽고 따뜻한 물방울 모양 버터빵의 기억이다. 만드는 내내 고소한 버터 냄새가 풍기던 빵은 따끈따끈할 때 쭉 찢어서 먹으면 놀랄 정도로 부드럽고 달콤했다. 어릴 때는 정말 자주 해주셨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만들어 주시지 않았다. 시간이 지난 후에 그때 그 빵 진짜 맛있었는데 어떻게 만들었던 거야 하고 물었더니, 놀랍게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세 번째 기억은 일명 우리 집 튀김 파티 날이다. 커다랗고 깊은 프라이팬에 기름을 가득 채워서 기름이 지글지글 소리를 내면, 엄마는 미리 만들어 둔 돈가스, 오징어, 고구마, 야채 같은 것들을 잔뜩 튀겨냈다. 오징어가 튀겨질 때 나던 그 고소한 냄새와 바삭바삭한 소리와 가끔 흩날리는 튀김 부스러기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장면 같았다.


갓 나온 튀김은 넓은 소쿠리에 키친타월을 깔고 그 위에 차곡차곡 순서대로 쌓아 시원한 바람이 통하는 곳에 두었다. 튀김이 맛보고 싶어 엄마 몰래 다용도실에 가 튀김을 하나씩 자꾸 집어먹다가 들켜 찰싹하고 손등을 아프게 맞기도 했다. 온 집에 고소한 냄새가 퍼져 바깥까지 냄새가 진동하면 위아랫집에 사는 친구들이 궁금해하며 놀러 오기도 했다. 튀김에 한 번 사용한 기름은 재사용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튀김을 하는 날은 연례행사처럼 특별한 파티의 날이었다.


또 다른 네 번째의 기억은 바삭바삭한 김구이다. 엄마는 김을 굽기 전에 식탁에 앉아 김 위에 솔로 정성 들여 기름을 발랐다. 기름을 발라 둔 김은 한 장씩 양면석쇠에 넣고 불 위에서 왔다 갔다 춤을 추듯 바삭해질 때까지 구웠다. 잘 구워진 김에는 소금을 조금씩 뿌렸다. 엄마가 구운 김은 너무 맛있어서 도시락에 싸서 학교를 가면 아이들이 김 한 장만 달라며 점심시간에 내 책상 앞으로 줄을 섰다. 김을 받은 아이들은 소중하게 들고 가 아껴먹고는 "내일도 또 싸와야 돼." 신신당부를 했다.


마지막 기억은 매년 송구영신 예배를 가기 전에 올 한 해도 수고했다며 가족 모두가 모여 함께 나눈 식탁의 기억이다. 우리는 예배로 드리지만 아빠는 교회를 안 다녀서 같이 축하할 수가 없으니 가족 파티를 하자고 제안한 건 엄마였다. 잡채와 불고기, 배달시킨 치킨, 밥과 미역국 그리고 케이크. 그렇게 매년 12월 31일 저녁은 우리 가족 모두 모여 작은 파티를 열었다. 서로에게 수고했다는 격려도 하고, 내년에도 잘해보자는 다짐을 하는 시간이었다.


엄마의 손맛이 듬뿍 담긴 맛있는 음식들을 먹고 자라서 그런지 나도 요리를 하는 데 있어서 두려움이 없는 편이다. 어릴 때는 설거지 담당이었지만 이제는 내가 메인 셰프가 된 거니까. 자취를 할 때도 시켜 먹는 것보다 재료를 사서 직접 만들어 먹는 음식이 더 좋았다. 대학생 때는 동아리 선배들을 초대해서 집밥을 만들어 주기도 했고, 주방다운 주방이 생기면 시도해보고 싶은 요리도 많았다. 덕분에 결혼 후에 신랑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내가 해주는 전 세계의 요리를 맛볼 기회를 얻었다.


엄마랑 성격도 안 맞는 부분이 있고, 엄마의 표현방식 때문에 유난히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나이가 들어 돌아보니 엄마도 그 시절 많이 힘들었겠구나 짐작이 된다. 언젠가, '그렇게 힘들었는데 포기하고 도망가고 싶지 않았어?' 했더니 엄마는 그 어렵던 시간에 자식들을 보며 희망을 품고 버텼다고 했다.


엄마의 손맛이 남겨준 기억은 내 온몸에 새겨져 있는 기억이기도 하다. 덕분에 굶지 않고, 혹시 장금이 아니냐는 소리를 들으며 잘해 먹고살고 있다. 여전히 내가 우선이고 내 감정이 먼저라서 따뜻한 말 한마디 못하는 무뚝뚝하고 못 돼먹은 딸이지만 엄마의 식탁에 담긴 따뜻한 사랑 덕분에 내가 잘 자랐다는 것을 알기에 뒤늦게 글로나마 고마운 마음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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