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생일상

by Pearl K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 열흘쯤 전부터 으슬으슬 몸이 춥더니 가장 바쁜 시기에 덜컥 감기가 찾아왔다. 나름대로 예방조치를 했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한동안 경험한 적 없는 독한 놈이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무언가 날카로운 발톱으로 목을 긁어놓은 것처럼 아팠다. 당장 눈앞에 닥친 걸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무진장 버거워서 다른 건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가장 시급한 것들부터 정리되자마자 이때다 싶었는지 감기란 놈은 더 기세등등해졌다. 덕분에 시부모님과 만나 뵐 약속도 모두 취소하고 집에 콕 틀어박혀 요양만 했다. 뉴스에선 주말 기온이 초가을 날씨라며 이상기온을 언급했지만, 내게 지난 주말은 한겨울 중에서도 가장 추운 날이었다. 옷으로 꽁꽁 싸매고 전기매트를 뜨끈하게 틀고 이틀 내내 비 오듯이 땀을 빼고 나니 드디어 몸 상태가 조금 나아진 것 같다.


문제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편의 생일이 바로 오늘이란 거다. 당장 저녁상을 무엇으로 할지 계획조차 없는 상태여서 당황스러웠다. 준비한 것이라곤 오로지 미역국을 끓일 한우 양지뿐이었다. 추가로 음식 재료를 구할 여유는 없으니 일단 있는 걸로 해결해야 했다. 건강 식단을 하고 있기에 우선순위는 탄, 단, 지가 골고루 어우러진 건강한 식단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집에 남은 재료들을 머릿속으로 되짚으며 그제야 어떤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을 시작했다.


일단 생일에 빠질 수 없는 미역국인데, 미역은 해조류로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거기에 한우 양지가 들어가니 메뉴에 1순위로 포함되었다. 두 번째 메뉴는 시금치와 양파, 당근, 토마토, 계란, 후랑크로 만드는 이탈리아식 오믈렛 요리인 시금치 프리타타로 정했다. 건강식 레시피에서 발견하고 언젠가 한 번은 만들어봐야지 했는데 그게 오늘이어도 좋을 것 같았다. 대신 후랑크는 건강한 닭가슴살 후랑크로 바꾸어 넣고, 토마토는 세 번째 메뉴와 중복될 것 같아서 제외하고 만들었다.


세 번째 메뉴는 토마토 카프레제 샐러드다. 신선한 야채와 토마토, 치즈가 어우러진 상큼하고 입맛 돋우는 메뉴여서 애피타이저로 적절하다. 마지막 메뉴는 남편이 좋아하는 바비큐 폭립을 준비하기로 했다. 마침 밀키트를 준비해 놓아서 빠른 시간 안에 조리가 가능하다는 점도 플러스 요인이었다. 다음은 케이크와 디저트 차례다. 홀 케이크보다는 간단히 축하할 수 있는 조각 케이크로 주문하고, 까눌레와 슈톨렌도 미리 주문해 두었다. 남편이 음료를 좋아해서 오랜만에 겨울과 잘 어울리는 뱅쇼도 준비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서 시계를 보니 도착까지는 40분이 남았다. 자그마한 성탄 트리에 반짝이는 전구를 켜 놓고 테이블을 세팅한다. 10분 전, 예쁜 접시에 완성된 음식을 플레이팅해 놓고 언제 올지 두근거리며 기다린다. 문 앞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케이크에 꽂아둔 숫자 초에 불을 붙이고 대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케이크를 들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며칠 전 케이크는 조각 케이크면 된다고 남편이 먼저 말했을 때, 나의 반응이 심드렁했기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눈치다.


작전 성공! 예상치 못한 생일 케이크로 맞이하는 환대에 더 기뻐하는 티가 팍팍 난다. 촛불을 불고 식탁 위에 차려놓은 음식들을 함께 먹으며, 어느새 아홉 번째로 같이 맞이하는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앞으로도 계속 축하해 주겠지만 오늘의 기록을 잊지 않도록 글로나마 박제해 본다. Happy Birthday to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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