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arl K Feb 28. 2024

변화의 한가운데

나는 지금 폭풍이 몰아치듯 분주하게 돌아가는 커다란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다. 분명 분주하고 정신없고 불안하고 두려움에 떨어야 정상일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은 평안하고 고요하다. 마치 폭풍의 눈 속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다. 태풍이 지나갈 때 보면 한참 비가 내리다가 당분간 소강상태를 보이는 시간이 있다.


   방금 전까지 폭우가 쏟아지다가도 금세 맑은 하늘을 보여주기도 하고, 빗방울은커녕 선선한 바람이 혼란스러웠던 주변에 질서를 가져다줄 때도 있다. 하늘에 떠 가는 구름마저도 천천히 아주 여유롭게 흘러간다. 그렇다고 해서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이 고요한 시간이 끝나면 찾아올 이제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태풍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2023학년도는 역할이 바뀌어 적응이 쉽지 않았고, 업무도 과중이라 어려웠지만 여러 가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덕분에 한 뼘 더 성장했다는 자부심과 아직 더 발전해 나아갈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연말에 자의와는 관계없이 이동해야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무래도 인간인지라 조금 서운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신기하게도 아무것도 걱정되지 않았다. 다음의 연결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까지 태평해도 되는 건가 할 정도였다.


   막상 새로운 자리를 찾으려고 하니 새삼 긴장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어차피 얼마를 일하든 나는 나니까, 내가 아닌 척하지 말자.' 그 한 가지 마음으로 다시 도전했다. 사전에 믿을만한 지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해 두었었다. 고맙게도 명절 전에 갈 곳이 결정되어서 2월의 남은 방학은 조금 덜 부담스럽게 보낼 수 있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냐고 물으시는 부모님과 친한 친구들에게 짐짓 "봐. 내가 걱정 안 된다고 했잖아." 하며 그 순간을 누렸다.


   이번주는 드디어 개학 전 새로 근무하게 될 곳의 실질적인 업무 인수인계와 내가 사용할 도서관을 정리하고 있다. 또 이전에 근무하던 도서관의 공사뒷정리를 돕고, 마지막 업무 두어 가지를 마무리하여야 한다. 눈 돌아가게 바쁜 시즌은 아니지만 나름 몸도 쓰고 머리도 쓰고 작별도 하고 새로 적응도 해야 하는 과제를 겪고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고요한 걸까. 말로는 걱정된다고 얘기하고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평안함이 있다. 태풍의 눈 때문인지 아니면 평안한 마음을 부어주시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마음이 조급할수록 실수가 잦아지는 내게는 너무도 고마운 마음이고 시간이다. 방금 자기 전 미리 읽은 내일의 묵상집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 있었다. "주님은 나를 기억하십니다. 그분의 심장에 내 이름을 새겨놓으셨고, 나를 너무 사랑하십니다. -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시편 139편 13절)"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폭풍 같은 상황들 속에서 내게 고요함을 유지시켜 주시는 것, 지나온 폭풍과 다가올 태풍 그 사이에서 온전한 쉼을 누릴 수 있게 해 주시는 것, 주어진 일자리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는 것. 이 모든 평온의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분께서 나를 기억하시고, 심장에 이름을 새기시고, 나를 너무 사랑하여 주시기 때문이었다. The Lord remembers and loves me! 너무도 단순한 한 문장이 마음속 깊이 들어와 내 심장에도 새겨졌다.


   학교도서관에 첫 지원서를 냈을 때를 기억해 본다. 도서관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기도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기도의 제목이 바뀌어 왔다. 내가 만나는 한 아이, 한 아이들을 소중하게 대하고 사랑을 흘러넘치게 줄 수 있는 용기와 이해심과 인내를 달라고. 사실 아이들만 사랑하기에도 내 사랑과 이해심은 너무 부족한데,-나이만 먹고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이들까지 품어야 하는 경우가 있어 가끔 화가 나지만-다시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행복하다.


   내 앞에서 기다리는 것이 거대한 태풍일지, 살랑거리는 봄바람일지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묵상집의 문구를 통해 제대로 된 격려를 얻었다. 무엇보다 변치 않으시는 가득한 사랑을 듬뿍 주신다고 하니, 일단 못 먹어도 Go 해봐야겠다. 혹시 앞날에 폭풍이 찾아와 지치고 쓰러질 것 같을 때,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이렇게 꼭 응원해주셔야 합니다. 믿고 갑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슬기로운 방학생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