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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May 12. 2024

이유 모를 혐오와 비난, 멈춰!

평소와 다름없는 퇴근길이었다. 퇴근 중에 오랜만에 친한 동료샘과 근황토크를 나누며 '세상은 넓고 이상한 사람은 많다'라는 사실을 새삼 뼈저리게 깨달았다. 동료샘이 겪은 너무도 황당한 일들에 헛웃음을 지으며 통화를 끝내고 나니, 아까부터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우리 집 강아지의 얼굴이 보였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통화를 끝내자마자 강아지 목줄을 채워 동네 산책을 나섰다. 며칠째 비가 오고 흐린 날씨 때문에 제대로 산책하지 못한 지 꼬박 4일 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너무 신난 강아지는 발걸음도 경쾌하게 집을 나섰고, 여기저기 킁킁 냄새를 맡아가며 맑은 하늘과 깨끗해진 거리를 한껏 즐겼다.


   나 역시 며칠 만에 보는 햇살이 반가웠다. 평소보다 조금 더 긴 거리의 산책코스를 정해 다니며 여기저기 예쁘게 핀 나무수국과 붉은 병꽃나무를 즐기고 있었다.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사거리에서 보행자 신호가 바뀌길 기다렸다. 봉봉이는 왼쪽으로 건너자고 나를 끌어댔다.


   마침내 초록불이 켜지고 강아지가 원하는 방향으로 함께 길을 건넜다. 횡단보도 근처라서 여러 사람이 있길래, 목줄을 짧게 잡고 길가 수풀 쪽으로 이동하는데, 어떤 아저씨가 줄을 잡으라며 쌍욕을 내뱉었다. 순간 당황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었다. 신호가 다시 바뀌고 아저씨가 길을 건너길래 억울한 마음이 들어 뒤를 쫓아갔다.


   "아저씨! 저 아세요? 처음 보는 사람한테 왜 욕하세요? 목줄을 짧게 잡으라고 하셨는데 그럼 강아지 목을 아예 틀어쥐고 다녀요? 법적으로도 2m 이하면 되는데 지금 1m도 안 되거든요?" 했다. 아저씨는 개가 자기 쪽으로 다가왔다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아저씨 자뻑이세요? 개는 아저씨한테 간 게 아니고 풀 있는 곳으로 간 건데요? 아저씨 쪽으론 아예 안 갔어요."라고 했더니, "그런가 보네요." 대답하고 갈려고 하길래, 욕한 거 사과하라고 했더니 자기가 언제 욕을 했냐고 한다. "좀 전에 말씀하신 건 그럼 욕이 아니고 다른 건가요?" 했더니 그제야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반려인들에게 강아지는 소중한 가족이다. 가족이 아프면 속상하고, 내 가족이 이유 없이 혼나면 기분이 나쁜 것처럼 강아지도 그렇다. 내 인생의 대부분을 반려인으로 살아왔기에 비반려인의 마음에 대해 미처 깨닫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언제나 더 조심스럽다.


   평소에 산책할 때는 혹시 모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자동리드줄도 사용하지 않는다. 개에 대한 공포심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이해하기에, 사람들 많은 곳에서는 최대한 줄을 당겨 잡는 편이다. 무엇보다 내 강아지의 배변은 바로 치워주는 것이 반려인이 반드시 해야 할 배려다.


   지켜야 할 것들을 다 지켰음에도 갑작스러운 욕 세례를 받게 되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비반려인 분들의 표정이나 몸짓만으로는 눈치채지 못할 수 있으니 불편함을 표현해 주시는 건 좋다. 대신 좋은 말로 해 주시거나, 조금 피해서 가 주시면 상식 있는 반려인이라면 누구나 본인들이 먼저 개들을 조심시킨다.


   하지만 배려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위해 서로 마음을 써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반려인 중에서도 괜한 시비를 걸어대는 비상식적인 사람들을 여럿 만나다 보니 일단 방어자세가 된다. 신기하게도 여성이 혼자 조금 큰 개를 산책시키면 별별 참견과 욕을 다 먹는다.


   동네 할머니는 엘베에서 보자마자 나더러 애를 키워야 될 시간에 개나 키운다는 막말을 시전 하셨다. 내 사정을 다 알지도 못하시면서 말이다. 또 한 번은 길에서 모르는 아저씨가 우리 개를 갑자기 부르더니 오라는데 오지 않았다고 발길질을 하더니, 침을 뱉었다. 너무 화가 나서 나도 같이 욕을 하고 싶었지만, "술 취했으면 괜히 시비 걸지 마시고 집에나 가시라"라고 말씀드렸다.


   때로는 가만히 길을 가고 있을 뿐인데, 각종 험담의 주인공이 된다. 어떤 애기엄마는 "저런 개한테 물리면 큰일 나~" 하고 아이에게 겁을 준다. 또 다른 분은 장난친다며 개한테 애를 미는 시늉을 하며 겁을 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까이 가지도 않았는데 그야말로 황당하고 억울할 따름이다.


   가끔은 비상식적인 반려인들이 공공장소에 리드줄도 없이 개를 풀어놓아 동네에서만 여러 번 이유 없는 입질을 당하기도 했다. 그렇게 줄 없이 뛰어오는 개들을 만날 때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 한동안은 산책할 때마다 아예 우리 개를 입마개 씌우기도 했다. 최소한 그러면 가해견이 되지는 않을 테니까.


   비단 반려인과 반려견에 대한 상황뿐만이 아니다. 어쩐지 요즘의 대한민국에서는 서로 다른 삶의 방식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혐오와 비난이 날이 갈수록 더욱 심각해져 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키보드 뒤에 숨어 타인을 조롱하고 모욕하며 막말을 내뱉는 것,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죄다 가득 찬 분노로 곪아터져 피폐해진 한국사회가 너무도 걱정스럽다.


   사회적으로 정해진 규칙을 지키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각자의 자유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존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끝없는 경쟁과 황폐화된 개인의 삶으로 최소한의 존중도 이해도 잃어버렸다. 하루빨리 제대로 된 대책을 만들지 않으면 인구절벽이 오기도 전에 증오범죄로 멸종해 버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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