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온통 봄이 내려앉았다. 여기저기 앞다투어 화사하게 피던 각종 꽃들은, 짧은 시절을 화려하게 누리고 마지막 힘을 다해 꽃비로 흩날리기 시작했다.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던가. 활짝 피어났다가 빠르게 져버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란다.
꽃 화 花, 춤출 무 舞. 한 장 한 장 떨어지는 꽃잎들이 내게는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이 보인다. 퇴근길 자동차 위에, 산책길 곳곳에 도로 위에 떨어져 있는 꽃잎들의 흔적을 눈으로 좇아 사진으로 남겨본다. 봄에 어울리는 플레이리스트를 담아놓고 들으면서 꽃잎 사이로 파릇파릇 피어나는 연한 초록 잎들의 자태를 넋 놓고 감상해 본다.
대학교 1학년 때 교양과목으로 들었던 한 과목의 교수는 몹시도 무감해 보이는 인물이었다. 칼 같은 단호함에 서릿발 같은 불호령까지 더해지니 강의시간의 공기는 그야말로 호흡곤란 수준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화창한 4월 이맘때쯤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강의실은 한겨울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숨죽여 과제를 써 내려가던 학생들을 두고 창밖을 한참 내다보던 교수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냥하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한 마디를 던졌다. "오홍홍. 봄은 봄인가 봐~"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투와 감상에 학우들은 몰래 '왜 저래?' 하는 눈빛을 교환했다.
교수는 머쓱했던 듯, 과제물을 쓰는 대로 빨리 제출하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침묵이 흘렀다. 강의가 끝난 후 친구들은, 저렇게도 매사에 무감한 눈의 여왕 같은 사람도 감상을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하는 것이 봄인가 보다며 한참을 웃었다. 그날이 그 교수가 감정을 가진 사람처럼 보였던 처음이자 마지막 날이었다.
직사각으로 날카롭게 그어진 아직은 차가운 건물 안에서 여전히 남은 찬 공기를 몰아내고 햇빛이 비추인다. 이제야 겨우 히터나 난방 없이도 손이 시리지 않다. 따뜻한 온기를 지닌 볕은 점점 그 화력을 더해가며 얼어붙은 공기를 녹이며 덥히고 있다.
아마도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여름이 도착하게 될 것 같다. 그전까지는 남은 봄을 충분히 즐겨야 한다. 바쁘다고 모른 척하다가는 봄은 너무 빨리 스쳐 지나가 버릴 테니까. 후회하지 않도록 이른 봄과 늦은 봄을 모두 충분히 누려야겠다. 그 후에야 뜨거운 여름을 맞이하게 될 용기가 제대로 생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