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소설] 모퉁이 뜨개방, 마음을 짜는 사람들

by 김펄미

"대리님, 뜨개질은 잘 돼 가고 있어요? 저 목도리 완성한 거 언제 보여주실 거예요?"


수현은 옆자리에서 고개를 쑥 내밀고 묻는 소정의 눈을 자신도 모르게 피해버렸다.


"아, 그거...? 그게, 요즘에 컨디션이 좀 안 좋은지 집에 가면 너무 피곤하더라고. 그래서 그냥 천천히 뜨려고."


"하긴, 대리님 요새 일이 많으시니까 그럴 수 있죠. 그래도 완성되면 저한테 제일 먼저 보여주셔야 돼요, 아셨죠?"


그 말에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시작했으니 완성하긴 해야 되는데, 왠지 모르게 의욕이 조금 떨어졌다. 그래도 돈 내고 시작한 취미를 이대로 그만두면 돈낭비가 될 것 같아서 퇴근 후에 다시 대바늘을 잡았다. 한 코, 한 코 조심스럽게 떠나가니 목도리의 길이가 차곡차곡 늘어났다.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래쪽에 틀린 부분을 가리고 보면 참 괜찮은 목도리인데, 자꾸 엉성하게 떠진 그 부분이 신경 쓰였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에 한 단씩 계속 떠나갔지만 자꾸 마음이 불편했다. 그렇다고 다시 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되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먼 길을 와버렸으니까. 한참을 그렇게 뜨개질에 열중해 있는데, 갑자기 '부웅-'하고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엄마한테서 온 메시지였다.


- 수현아, 내일 할아버지 생신인 거 알지? 엄마는 아빠랑 먼저 가서 음식하고 있을 테니까 점심식사 전에 맞춰서 와.


아 맞다, 내일이었지? 하마터면 깜빡할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린 수현은 늦잠 자지 않도록 알람을 맞춰두고 침대에 누웠다. 할아버지 댁에 가려면 지하철에 버스까지 갈아타고 2시간 넘게 가야 해서 일찍 자야만 했으니까. 그리고 다음날, 먼 길을 달려 도착한 할아버지댁에는 먼저 와있던 친척들로 인해 북적였다.


"할아버지, 생신 축하드려요. 앞으로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어이구, 우리 손녀딸이 오래 살라니까 내 오래 살아야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백 살까지 살아야겠어!"


갈비찜에 잡채에 육회에 온갖 반찬들까지. 할아버지의 생신상은 그야말로 상다리가 휘어질만한 진수성찬이었다. 온 친척들이 둘러앉아 그 음식을 나눠 먹으며 화기애애하게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수현도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과 각자의 근황을 공유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후식으로 케이크에 과일까지 먹은 후에는 그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흩어졌다. 어른들 몇몇은 거실에 담요를 깔고선 고스톱판을 벌였고, 부엌에서는 아빠와 고모부들이 술잔을 기울였다. 수현은 방에서 사촌언니와 수다를 떨다가 잠깐 물을 마시러 나왔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지나가는 수현의 다리를 툭 치며 말을 걸었다.


"수현아, 너 잠깐만 이리 와서 앉아봐."


"네? 저요?"


"그래, 고모가 너한테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평소에도 워낙 말이 많고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큰고모였다. 잘못 걸렸다는 생각에 몰래 한숨을 내쉬고선 그 앞에 가서 앉았다. 이번엔 또 무슨 얘기를 쉬지 않고 하려나 걱정하던 차에 고모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나왔다.


"수현이 너, 너희 엄마, 아빠한테 그러면 안 돼."


"네...?"


"너희 엄마, 아빠가 너를 얼마나 애지중지하면서 키웠는데, 네가 너희 부모 가슴에 그렇게 대못을 박으면 안 되지."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고모가 턱을 까딱까딱거리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술을 좀 많이 드셨는지, 고모의 입에서 알코올향이 풀풀 풍겨 나왔다.


"너 말이야, 시집갔으면 알콩달콩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결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혼을 해? 내가 솔직히 너 이혼했다는 소식 들었을 때부터 한마디 하고 싶었는데, 그래도 너 힘들까 봐 여태까지 참다가 얘기하는 거야. 네 엄마한테 얘기 들어보니까 네가 먼저 정서방한테 이혼하자고 했다며?"


"네? 아, 그건요... 제가 참다 참다가 안 되겠어서..."


"도대체 뭘 얼마나 참았는데? 아무리 요즘 젊은 애들이 이혼을 쉽게 한다지만, 그래도 넌 그러면 안 되지. 여태까지 말썽 한 번 안 부리고 착하게 자랐으면서, 이제 머리 좀 컸다고 막 나가기로 작정한 거야?"


다그치듯이 말하는 고모의 말에 말문이 막혀 어버버 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엄마가 조그만 목소리로 고모를 말리기 시작했다.


"형님, 그만하세요. 애들끼리 살다 보면 안 맞아서 이혼할 수도 있는 거지 왜 그러세요."


"안 맞는다고 다 이혼해? 원래 다 안 맞아도 맞춰가면서 사는 거지, 그거 뭐 힘들다고 홀라당 이혼을 해? 세상에 싸우지도 않고 100% 잘 맞는 부부가 정말로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 "


"형님, 수현이가 오죽했으면 먼저 이혼하자고 말을 했겠어요? 그러니까 그 얘기는 이제 그만하세요."


"그만 하긴 뭘 그만해? 수현 엄마가 그렇게 성격이 무르니까 수현이 얘가 제멋대로 나가는 거잖아. 난 만약에 우리 혜진이가 이혼한다고 했으면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면서라도 말렸을 거야! 세상에 내 딸이 이혼녀 꼬리표 다는 걸 어떤 부모가 가만히 두고 봐? 안 그래? 안 그러냐고!"


큰고모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거실과 부엌에 있던 어른들이 전부 다 수현과 고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른들이 나서서 말리긴 했지만, 워낙 막무가내인 큰고모의 입을 다물게 할 순 없었다.


"여보, 좀 조용히 좀 해. 오늘 같이 좋은 날 왜 또 술주정이야?"


"그래, 언니. 괜히 가만히 있는 수현이한테 시비 걸지 말고 술 취했으면 들어가서 자. 언니 때문에 분위기가 이게 뭐야?"


"참나, 내가 뭘 어쨌다고? 솔직히 내가 뭐 틀린 말 한 건 아니잖아?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지만, 30대 초반에 벌써 이혼녀가 된 여자를 누가 좋게 봐?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손가락질하고, 뒤에서 수군거리는 거 뻔히 아는데, 내가 고모로서 조카한테 쓴소리 한 번 못해? 그러니까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성급하게 이혼을 하지 말았어야지. 누구는 뭐 바보라서 이혼 안 하고 참고 사냐고, 안 그래?"


고모의 계속된 막말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런데 고모의 저 못된 말보다 수현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하는 건 고개를 떨군 채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과, 잔뜩 구겨진 얼굴로 연거푸 소주를 들이켜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었다. 다른 어른들이 계속 수현의 편을 들면서 큰고모를 말렸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습들이 가식으로 느껴졌다. 어쩌면 다들 속으로는 큰고모랑 똑같이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수치심과 죄책감이 들었다. 정말 내가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은 걸까? 남들처럼 그냥 참고 살면 되는데, 내가 인내심이 부족한 탓에 성급한 결정을 내렸던 걸까...?


도저히 이 상황을 견딜 수가 없어서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었다. 그래서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있는데, 갑자기 부엌에 있던 아빠가 주먹으로 식탁을 쾅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거 참, 적당히 좀 하쇼! 내가 아버지 생신이라 참아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네!"


그 순간 분위기가 싸해지고, 큰고모도 놀랐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평소에 화를 거의 내지 않는 사람이 큰 소리를 내니 아무리 술에 취한 사람이라도 당황할만했다.


"어휴, 알았어. 그만하면 되잖아. 지 딸이라고 거 더럽게 감싸주네."


즐거웠던 할아버지의 생신 모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고모는 술이 올라온다며 방에 들어가서 누워버렸다.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방 안에서는 코 고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친척들이 분위기를 풀어보려 화제를 돌렸지만, 수현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한 번 굳어버린 부모님의 얼굴도 좀체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엄마, 아빠,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아니야, 네 잘못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엄마가 나중에 큰고모한테 따로 연락해서 다음에는 그러지 마시라고 정중히 부탁할게."


집에 돌아오는 길, 애써 웃으며 말하는 엄마의 얼굴을 보고 가슴에 무언가 얹힌 듯 답답했다. 자취방에 도착해서 조용한 방 안에 앉아있으니 자꾸만 아까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나 때문에 엄마가 눈치를 보고, 듣기 싫은 소리를 듣고, 아빠는 평소답지 않게 화를 내고... 이 모든 게 자신 때문인 것 같아 스스로가 너무 한심했다. 남들은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해서 알콩달콩 잘 사는데, 예쁜 손주도 낳아 부모님께 재롱을 보여드리며 효도도 하는데, 왜 난 그러지 못했을까? 정말 내가 모자란 사람이라서 이렇게 된 걸까...?


사실 생각해 보면 더 못 참을 것도 없었다. 수현이 조금만 더 양보하고 희생했다면, 이혼까지는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형준이 잘 치우지 않는 게 불만이라면 깔끔한 수현이 조금 더 치우면 되는 거였고, 친구들에게 돈을 좀 펑펑 쓰더라도 자기가 번 돈 자기가 쓰는 거니 그냥 내버려두었어도 됐을 거다. 철이 없긴 해도 부모님께 살갑게 구니 무뚝뚝한 사위보다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고, 그의 말처럼 아직 임신도 안 했으니 시부모님과 시누이에게 통 크게 여행 한 번 보내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에 그랬다면, 그를 조금만 더 이해하고 참아줬다면, 어쩌면 그도 수현에게서 마음이 떠나는 일이 없지 않았을까? 그리고 언젠가는 수현의 인내에 보답하기 위해 달라지지 않았을까?


물론 아니었을 수도 있다. 겪어보지 않은 미래는 알 수 없으니 상상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 중요한 건, 수현은 이미 이혼을 했고, 부모님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으며, 이제 이혼하기 전으로 돌이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수현은 안개 낀 듯 뿌연 머릿속을 비워내고 싶어서 냉장고에서 냉수를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하지만 여전히 머릿속은 복잡하게 엉켜있었다. 크게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민원이 들어올 게 뻔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달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갑자기 책상 한쪽 구석에 놔둔 목도리가 생각났다. 그래, 리나 쌤이 뜨개질로 힐링하라고 했잖아. 이거라도 하면 마음이 차분해질 거야.


냉수를 한 잔 더 떠온 후 책상 앞에 앉아 대바늘을 잡았다. 그리고 크게 심호흡을 한 후 뜨개질을 시작했다. 한 코, 한 코 뜨면서 잡생각을 없애보려고 노력했다. 처음 대바늘을 잡았던 그때처럼 잔잔한 음악도 틀어놓고 숲 속에 앉아 뜨개질하는 기분을 느껴보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엔 무리였을까? 자꾸만 눈에 거슬리는 무언가가 수현의 감상을 방해했다.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밉게만 보이는 과거의 실수가, 도저히 감춰지지 않는 것이다.


"아, 짜증 나. 벌써 이만큼이나 떴는데 왜 아직도 틀린 부분이 눈에 띄냐고! 여기는 좁고, 여기는 넓고, 무늬는 다 삐뚤어지고, 진짜 짜증 나서 못 해 먹겠네!"


수현은 뜨다 만 목도리를 침대 위에 휙 집어던지고서는 무릎을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도대체 내 인생은 왜 이러냐고. 왜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냐고. 겨우 이런 목도리 하나조차도 왜 나를 열받게 하냐고.


그 후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벌써 커튼 사이로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의자에 아무렇게나 구겨진 채로 잠들어서 그런지 온몸이 뻐근했다. 수현은 시간을 확인하려고 휴대폰 화면을 켰다. 그런데 그때, 새로운 메시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불과 30분 전에 도착한 메시지였다.


- 수현 님, 혹시 오늘 시간 괜찮으시면 공방에 잠깐 오실래요? 생각해 보니 제가 수현 님한테 깜빡하고 안 알려드린 게 하나 있어서요. 가능하시다면 꼭 오셨으면 좋겠어요.


이미 목도리에 대한 의욕은 떨어졌지만 그래도 가보기로 했다. 어차피 할 일도 없었고 우울하던 참이라 편하게 수다라도 떨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수현의 상황을 아무것도 모르는 리나하고는 분명히 이혼의 이 자도 꺼내지 않고 즐겁게 얘기하고 올 수 있을 것이다. 수현은 지금 바로 가겠다고 대답한 뒤 구겨진 몸을 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도리부터 가방에 챙기고, 대충 씻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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