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모퉁이 뜨개방, 마음을 짜는 사람들
모든 건 아주 사소한 문제로부터 시작되었다. 결혼하고 나면 치약을 짜는 방법 같은 걸로도 싸운다던 어른들의 말씀이 옳았다. 형준과의 트러블도 그런 식이 었으니까.
"여보, 다 먹은 커피 컵은 좀 버리면 안 돼? 내가 며칠 전부터 치우라고 얘기했는데 알겠다고 대답만 하고선 오히려 개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잖아."
"알았어, 치우면 되잖아. 내가 알아서 치울 건데 왜 이렇게 사람을 들들 볶아?"
"치운다고 얘기해 놓고 안 치우니까 그렇지. 지금 당신 책상에 쌓여있는 컵이 도대체 몇 개인줄 알아? 누가 보면 일회용 플라스틱 컵 모으는 사람인 줄 알겠어!"
"어휴, 알았으니까 제발 그만 좀 얘기해. 이거 여기 좀 놔둔다고 뭐 큰일 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 때 되면 내가 알아서 치운다니까?"
형준과 9년이나 연애했는데도 치우기를 귀찮아하는 사람이란 걸 몰랐다. 같이 여행도 자주 다녀봤지만 그때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형준이 아주 더러운 사람인 건 아니었다. 그저 정리를 재깍재깍 하지 않는 부분이 깔끔한 성격의 수현과 맞지 않았을 뿐. 그런데 이 정도로 끝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소한 생활 습관의 차이에서 시작된 그와의 갈등은 무한히 증식하는 가지처럼 여러 갈래로 수없이 뻗어나갔다. 결혼 전 수현이 좋아했던 그의 장점은 단점이 되어 버렸고, 항상 긍정적이던 그의 성격이 이제는 답답하게 느껴졌다. 수현의 부모님께 살갑게 굴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은 애교 많은 사위라고 좋아하셨지만, 수현에게는 거슬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장모님, 저 장모님이 만들어주시는 동치미가 너~무 먹고 싶은데 좀 해주시면 안 돼요? 우와, 진짜 해주신다고요? 역시 우리 장모님이 최고! 장모님, 그럼 이왕 해주시는 김에 좀 많이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친구들한테 우리 장모님 표 동치미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자랑했거든요. 그래서 친구들도 다들 먹어보고 싶다고 난리예요."
"어유, 우리 정서방이 해달라는데 해줘야지. 정서방 친구들이 먹는다니까 재료도 좋은 걸로 잘 골라서 해줘야겠다!"
애교 부리며 뭘 해달라는 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부모님 건강은 신경도 안 쓰고 철부지 같이 구는 게 짜증이 났다. 그래서 결국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여보, 우리 엄마 요새 허리 안 좋아서 물리치료받으러 다니시는데 동치미를 해달라고 하면 어떡해? 거기다가 당신 먹을 것만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친구들 것까지 해달라고? 그러다가 우리 엄마 허리 더 안 좋아지면 어떡할 거야?"
"아니, 왜 또 잔소리야? 장모님도 내가 해달라고 하니까 좋아하시는 거 못 봤어? 진짜로 허리가 아프셨으면 싫다고 하셨겠지."
"그럼 사위가 해달라고 하는데 싫다고 해? 그리고 친구들한테까지 우리 엄마가 만든 동치미를 갖다주고 싶으면 당신이 재료비라도 좀 드리던가, 아니면 무를 사다가 나르기라도 하던가, 하다 못해 재료 손질이라도 좀 도와 드려야 될 거 아냐! 우리 엄마가 당신 부탁 때문에 안 좋은 허리로 고생하셔야겠어?"
"내가 맛있게 먹으면 그게 다 장모님한테 보답해 드리는 거야. 그리고 장모님 음식 솜씨 좋은 거 주변에 자랑하는 게 뭐가 어때서? 혹시 알아? 나중에 장모님이 식당이라도 차리실지? 그럼 그때 내 덕에 장모님 표 음식 먹어본 내 주변 사람들이 가서 팔아줄 거 아냐."
항상 그렇게 능구렁이처럼 넘어가는 게 형준의 특기였다. 매번 그럴듯한 이유를 가져다 붙이는데, 계속 반박해 봐야 서로 말이 안 통해 싸움만 길어질 뿐이었다. 그래서 수현은 최대한 참고 참았다. 그래도 내가 선택한 남자고, 어디 큰 하자가 있는 건 아니니까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가자고 몇 번이나 속으로 되뇌었다. 하지만 열 번 중에 한 번 정도는 꾹꾹 눌러 담은 잔소리가 터져 나올 때가 있었다. 사람의 인내심이 무한한 것은 아니니까.
"어휴, 이 술냄새! 당신 지금이 몇 시인 줄 알아? 그냥 적당히 마시고 오면 되지 왜 매일같이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거야? 다음날 출근도 해야 되는 사람이 좀 자제해야 되는 거 아냐?"
"아 진짜, 또 잔소리하네. 아니, 민수가 이번에 주식하다가 돈을 좀 잃었다길래 위로해 주려고 좀 마셨다, 왜! 그럼 너는 친구가 돈 잃고 우울해하는데 그냥 모른 척하냐?"
"아, 그러셔? 며칠 전에는 동준 씨가 여자친구랑 헤어져서 슬퍼한다고 새벽 4시까지 술 먹고 들어오더니, 이번에는 민수 씨야? 그래서, 이번에는 얼마 썼는데? 설마 또 저번처럼 혼자 몇십만 원 결제하고 들어온 건 아니겠지?"
"그래, 했다! 민수가 소고기가 먹고 싶다길래 소고기도 사주고 비싼 술도 잔뜩 마셨다!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 내 소중한 친구가 우울하다는데, 그깟 몇십만 원이 그렇게 중요해? 솔직히 말해서 돈이야 또 벌면 그만이잖아! 친구 위로하는데 그깟 몇 푼 쓰지도 못하냐고!"
연애시절, 뭐든 아깝지 않다는 듯이 다 퍼주던 그의 성격이 자신에게만 한정된 것이라고 생각했던 건 수현의 큰 착각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라면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다 내어주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좋게 말하면 정이 많다고 할 수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경제관념도 없는 호구였다. 그런 와중에 또 어찌나 효자이고 싶어 하는지,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는 그 때문에 수현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뭐라고? 이번에 어머님이랑 아버님 해외여행을 보내드리자고? 거기에 아가씨도 같이?"
"응, 이번에 우리 엄마 친구분이 베트남 다낭에 여행을 다녀오셨는데 엄청 좋았다고 자랑을 하셨나 봐. 그래서 우리 엄마가 부러워하시는 것 같길래 보내드리려고. 내가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까 패키지로 가면 3박 4일에 1인당 120만 원 정도 하는 것 같던데? 그 정도면 괜찮지 않아?"
"뭐? 1인당 120만 원? 당신, 지금 우리 통장에 얼마 있는지는 알고 하는 소리야? 안 그래도 아파트 대출 갚느라 남는 돈도 별로 없는데, 거기다가 당신이 요새 계속 친구들 만나면서 돈 팡팡 써대느라 적금 넣을 돈도 모자라단 말이야!"
"아 그래? 그럼 차라리 잘 됐네. 그냥 이참에 적금 깨서 그걸로 혜진이랑 우리 부모님이랑 셋이 다낭으로 여행 보내드리자. 혜진이도 대학교 때 친구들이랑 유럽여행 한 번 다녀온 이후로 해외여행 한 번도 못 갔다고 얼마나 아쉬워하는데."
"뭐라고? 아니, 지금 우리가 뭐 때문에 적금 넣고 있는지 몰라서 그래? 나중에 태어나게 될 우리 아이를 위해서 미리 모으고 있는 거였잖아. 그런데 이 적금을 굳이 깨서 여행을 보내 드리자고? 여보, 그런 건 우리가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을 때 해드리는 거지, 지금 상황에서 이건 좀 아니잖아. 그리고 아버님이랑 어머님은 그렇다 쳐도 왜 아가씨까지 보내드려야 되는 건데? 아가씨는 그냥 본인이 돈 벌어서 다녀와도 되는 거 아냐?"
"어휴, 당신 진짜 말 섭섭하게 한다. 남도 아니고 가족인데 그 정도도 못 해줘?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아직 당신이 임신한 것도 아니잖아? 그런데 돈 모으는 것 좀 나중으로 미루면 어때서 그래? 나중에 애 태어나고 나면 다 알아서 아껴 쓰게 되어있다니까?"
"아껴 쓰기는 무슨? 당신 지금도 맨날 주변 사람들한테 생각 없이 돈 퍼주고 다니는데, 그때 가서 퍽이나 아껴 쓰겠다! 아무튼 난 적금 못 깨니까 그렇게 알아. 그렇게 여행을 보내드리고 싶으면 당신이 투잡이라도 뛰어서 보내드리던가!"
미래를 위해 대비를 하고 싶었던 수현의 눈에는 형준의 대책 없는 행동이 너무 철부지같이 느껴졌다. 친구들에게는 의리 있는 친구이고 싶고, 부모님에게는 착한 아들, 여동생에게는 멋진 오빠가 되고 싶은 그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뭐든지 적당히 해야 하는데, 형준은 너무 과해서 탈이었다. 물론 총각 때야 본인 혼자만의 인생이니 상관없지만, 결혼을 하고 난 후에는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수현이 형준을 이해하지 못하는 만큼, 형준도 수현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에게 수현은 인정머리 없고 이기적이고 억척스러운 여자로 비추어졌으니까. 그래서 그는 수현에게서 점점 더 멀어졌다. 예전의 그 다정하던 남자가, 이제는 지나가는 행인보다도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문제의 그날은 수현이 유난히 아팠던 날이었다. 전날부터 머리가 아프고 몸이 으슬으슬 추웠는데, 새벽부터 몸살기가 심해지더니 열까지 펄펄 끓었다. 예전 같으면 수현의 상태를 먼저 알아챈 그가 수현을 들처업고 응급실부터 갔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던 수현이 거실에서 따로 자고 있는 그에게 겨우 기어가 팔을 툭툭 치며 깨우자, 그가 눈도 안 뜨고 소리를 버럭 질렀기 때문이다.
"아, 진짜! 왜 사람 자는데 건드리고 난리야?"
"여보... 나 지금 몸이 너무 아파... 아까 약을 먹었는데도 열이 안 내려가... 나 아무래도 응급실에 좀 가야 할 것 같은데..."
응급실이라는 말에 실눈을 뜬 그는 수현을 힐끗 바라보고선 다시 눈을 감았다. 그 표정에서 온기라고는 단 1g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응급실은 개뿔. 그냥 푹 자고 일어나면 낫는 걸 가지고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떨어? 지난번에 내가 아파서 골골댈 땐 그냥 물 마시고 잠이나 자라고 했으면서. 당신 이러는 거 완전히 내로남불이야, 알아?"
"뭐라고? 그땐 당신이 친구들이랑 아침까지 술 퍼마시고 술병난 거였잖아! 지금 그거랑 이거랑 똑같아?"
"술병이든 뭐든 아픈 건 똑같거든? 너 평소에 내가 주변 사람들 챙기면 맨날 계산기 두들겨가면서 인정머리 없이 굴더니, 네가 아프니까 이제는 내가 널 챙겨주길 바라나 보지? 그런데 이거 어쩌냐? 난 너처럼 이기적인 여자한테는 더 이상 잘해주고 싶지 않거든. 그러게 돈돈 거리면서 이기적으로 굴지 말았어야지."
"뭐...? 당신 그게 아픈 사람한테 할 소리야? 당신이 돈 낭비하는 거 지적한 게, 내가 이기적으로 군 거라고...?"
"그래! 넌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말도 못 들어봤어? 사람이 너처럼 살면 나중에 외톨이로 늙어 죽는 거야. 넌 네가 되게 똑똑한 줄 알지만, 사실 그거 되게 멍청한 거라고! 그러니까 정 응급실이 가고 싶으면 그렇게 잘난 네가 혼자 운전해서 가. 너 운전할 줄 알잖아!"
형준은 그렇게 말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식탁으로 걸어갔다. 그러더니 귀찮다는 표정으로 식탁 위에 있던 차키를 집어 들고선 수현에게 휙 하고 던졌다. 무심하게 날아간 차키는 수현의 어깨를 맞고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나뒹굴고 있는 차키를 바라보자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했던 결혼생활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난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일상을 나누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싶었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큰 욕심이었나...?
지난 몇 달간의 생활을 떠올려보자 행복했던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혼 후 처음 두세 달을 빼고는, 항상 짜증과 스트레스뿐이었다. 그래도 참다 보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눈앞에 던져진 차키를 보자 그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가 자신에게 애정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아픈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수현은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방금 전까지는 너무 화가 나서 돌아버릴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이제는 화를 낼 기분까지 사라져 버렸다.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이제 정확히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래, 나 운전할 줄 아니까 내가 알아서 다녀올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뭐? 나 다시 잘 거니까 빨리빨리 얘기해."
"그러니까, 서류는 나 병원 갔다 온 다음에 쓰자."
"무슨 서류? 열난다더니 머리까지 어떻게 됐나 보네. 뜬금없이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수현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되묻는 그에게 결국 그 말을 하고 말았다. 그동안 마음속 깊은 곳에서 슬금슬금 올라오고 있었지만, 차마 꺼낼 용기가 없던 그 말을.
"이혼 서류 말이야. 우리, 이혼하자."
"뭐? 갑자기 이혼이라니? 지금 내가 응급실 같이 안 가준다고 삐져서 이러는 거야? 참나, 무슨 이혼을 그렇게 쉽게 해? 당신 설마 미치기라도 한 거야?"
"쉽게 하는 것도 아니고 미친 것도 아니야. 응급실 같이 안 가준 것 때문만도 아니고. 그냥, 내가 당신이랑 계속 살면 정말로 미칠 것 같아서 그래. 그러니까 더 이상 싸우지 말고 이혼하자. 당신한테도 나한테도 그게 최선이라는 거 알잖아."
정말 허무하게도 9년 간의 연애와 1년 간의 결혼생활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처음에는 이혼을 못하겠다고 하던 그도 얼마 안 가 받아들이고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게 되었다. 그에게도 이 결혼생활이 그리 행복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이혼한 지 이제 겨우 8개월이 지났다. 그 괴로웠던 기억을 깨끗이 잊기에는 아직 부족한 시간이었다. 수현은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진 기분 때문에 괜히 눈에 눈물이 고였다. 책상 위에 놓여있는 목도리를 보자 그 엉성한 모습이 마치 자신의 실패한 결혼생활처럼 보여서 짜증이 났다. 그래서 목도리가 눈에 보이지 않도록 책상 서랍 속에 처박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