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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받으면 왜 '뚜껑 열린다'고 할까

내 몸을 살리는 말 글 공부_06

by 박성동

안녕하세요, 말건강 한의사 박성동입니다.

2023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에는 소망하는 일들이 손에 잡히는 좋은 기운이 늘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뚜껑 열린다'는 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사회가 고도화되고 경쟁이 심해질수록 스트레스가 많아집니다. 손 안에서 수시로 뉴스를 보고 다른 사람이 올린 '짤'을 보면서 눈과 뇌는 쉴 틈이 없습니다. 쉴 새 없이 뇌를 가동해야 하므로 에너지가 머리로 몰리게 됩니다. 정보량이 많아질수록 화(火)날 일도 많고, 사회적 관계가 복잡해질수록 열(熱) 받을 일도 많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때 쓰게 되는 火, 熱은 모두 몸(특히 머리)이 뜨거워지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뚜껑 열린다'는 표현에 이르면 임계점을 넘어 뻥하고 터지는 그림이 연상됩니다. 그런데 왜 뚜껑이 열린다고 했는지 생각해 보셨나요?


열 받는 상황에서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두뇌는 빠른 상황 판단을 해야하고 근육은 언제라도 싸울 수 잇는 준비를 해야 하니까요. 동공이 확장되고 온 몸의 털은 쭈뼛 섭니다. 워밍업을 위해 열이 달아 오릅니다. 이 모든 준비를 위해서는 혈액과 산소가 신속하게 공급되어야 하므로 심장이 빨리 뛰고 호흡이 가빠지지요. 실제로 열받을 때 심장이 두근거리고 체온이 오르면서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지어 정수리가 뜨거운 느낌도 듭니다. 정수리를 속된 말로 뚜껑이라고 하니 뚜껑 열린다는 말은 열이 치받아서 머리 뚜껑이 열리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힌의학에서 폐는 숙강기능이 있다고 힙니다. 숙강은 가라앉히고 아래로 내려보내는 것입니다. 자동차에 비유하면 냉각장치이며, 인체의 덮개로서 솥뚜껑과 같습니다. 오장육부 중 폐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면서 열을 식히고 다시 아래로 내려보내는 기능을 하고 있답니다. 아래 그림은 옛사람들이 그린 폐의 모습인데 뚜껑과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나요? 솥에서 팔팔 끓어오른 수증기는 솥뚜껑에 맺혔다가 떨어지고, 그렇게 물은 솥단지 안에서 순환하면서 찰진 밥을 만들고 시원한 국물을 만드는 것입니다. 끓어오르는 수증기의 힘은 엄청 세서 가벼운 냄비나 주전자 뚜껑은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들썩이거나 열리고 맙니다. 폐가 약하면 작은 일에도 자꾸 뚜껑이 들썩거리고 아주 격렬히 끓어 오를 때는 무거운 솥뚜껑도 열리게 합니다. 아무튼 폐는 인체의 뚜껑으로서 열을 식히고 넘치지 않게 기를 간직하는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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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열받으면 산소요구량이 많아지면서 호흡이 불안정해집니다. 콧구멍이 넓어지고 급기야 입을 벌리고 씩씩거리는 상황, 드디어 폐가 열기를 식히고 다시 아래로 순환시키는 수준을 넘어 뚜껑이 열려 열기가 솟구치고 맙니다. 얼굴이 벌개지고 땀 이나면서 머리가 뜨거워집니다. 심보가 폭발하여 뚜껑이 열린 상태입니다. 뚜껑이 열리면 기가 흩어지므로 손이 벌벌 떨리고 심한 경우 기운이 급격히 소모되어 혼절하기도 합니다.


요리 할 때 끓어 넘칠 것 같으면 불을 줄이거나 뚜껑을 살짝 열어서 뜨거운 김을 내보내지요. 마찬가지로 열 받고 화날 때, 그 에너지를 차곡차곡 쌓아두지 마세요. 갈등 수위를 줄이는 노력(화해, 조정)을 하거나, 담아두지 말고 그때 그때 표출(표현)하면 뚜껑 열리는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화와 열, 키우지 말고 잘 해소하여 뚜껑 열리지 않도록 관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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