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을 살리는 말 글 공부_05
간은 몸속 피로물질을 제거하고 독성물질을 해독하며, 영양소와 호르몬 대사에 관여하는 인체의 화학공장입니다. 간에 문제가 생기면 대사가 원활하지 않고 해독력이 떨어지므로 피로, 면역 저하, 소화 불량, 부종 등 여러 증상과 질병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간 때문이야, 피로는 간 때문이야'라는 광고 음악이 뇌리에 딱 박혀 있는지도 모릅니다. 간이 지치면 지방간이 생기거나 붓고 딱딱해지면서 기능에 문제가 생깁니다. 간에 문제가 새기면 실제로 부어서 주위 장기를 압박하기도 합니다. 일상에서 '간뎅이가 부었냐', '간이 배밖으로 튀어 나왔냐'와 같은 표현을 쓰는데, 이 말이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의학서에는 “간(肝)은 장군의 기관으로 모려(謀慮)가 나온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심장을 군주로 해서 오장육부가 그 특성과 기능에 따라 지위가 부여되어 있는데, 간은 장군에 해당한다고 한 것입니다. 장군은 용감하고 통솔력을 가지며 무예과 지략에 뛰어난 사람입니다. 모(謀)는 도모, 공모, 음모, 모략과 같이 계획하고 전략을 세운다는 뜻입니다. 려(慮)는 사려, 고려, 숙려와 같이 쓰여 깊이 생각하는 것을 뜻합니다. 즉 장군은 지혜롭게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머리를 써서 일을 조리있게 계획함 또는 그런 속마음'이라는 뜻을 가진 배포(排布)라는 말이 있는데, 배포가 커야(think on large scale) 많은 군대를 통솔하고 냉철한 판단으로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겠지요. 예전에 KOEI社에서 나온 삼국지 게임을 참 열심히 했는데요, 장수가 아무리 무력이 높아고 지력이 낮으면 맨날 함정에 빠져서 몰살 당하기 일쑤입니다. 그만큼 장군의 덕목에서 지략과 모략은 필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단력과 추진력을 평가할 때 간이 작다, 간이 크다고 말합니다. 또는 배포가 작다, 배포가 크다고 합니다. 지혜로운 장군은 모려가 있기에 웬만한 일에는 겁을 내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지혜롭게 살피고 계획을 세워두었기 때문입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기에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알고 무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듯 준비가 허술하고 의욕만 앞서는 못난 장수는 무리한 일을 벌여 군대를 잃고 전투에 패배합니다. 아무리 결단력과 추진력이 중요하다지만 능력 이상으로 일을 벌이면 화를 당하고 맙니다. 이런 경우를 빗대에 '간뎅이가 부었다',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다'고 하는 것이지요. 분수를 모르고 날뛰거나 상식 밖의 일을 저지르는 행위를 할 때, 주제 넘게 무모한 언행을 하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간 큰 남자 시리즈가 유행한 적이 있었죠.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져 가는데 물정을 모르고 아내에게 대드는 남자를 비유했던 우스갯소리였습니다. 웃자고 하는 얘기였지만 고추 달고 나왔다는 이유로 우월감을 가지고 여자를 무시했던 남자들 뼈때리는 이야기지요.
▷ 20대 밥상 앞에서 반찬 투정하는 남자 | 30대 아침밥 달라는 남자 | 40대 아내가 외출할 때 어디 가냐고 묻는 남자 | 50대 아내가 야단칠 때 말 대답을 하거나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보는 남자 | 60대 퇴직금 어디 썼는지 물어보는 남자 | 70대 아내가 외출할 때 같이 나가자고 하는 남자 | 80대 아침에 눈떴다고...
한의학에서는 소설(疏泄)을 간의 중요한 기능으로 인식했습니다. 소설이란 소통시키고 배설하는 기능을 말합니다. 인체는 순환계, 림프계, 경락계를 통해 원활히 순환함으로써 생명을 유지하는데, 순환과 배설이 막히면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간의 소설기능에 문제가 생기면 다음과 같은 질병이 발생합니다.
▷ 정서 장애 : 우울, 분노
▷ 소화기능에 문제 발생 : 비위 기능 저해, 담즙 배설 장애
▷ 기혈 순환의 장애, 근육 젖산 대사 장애 → 통증
▷ 월경 곤란
▷ 고지혈증, 고혈압, 당뇨, 비만
한의학 병명으로는 간기울결(肝氣鬱結) 또는 간울기체(肝鬱氣滯)라고 합니다. 초기에는 질병으로 진단되지 않는 기능상의 문제이지만, 심해지면 간경화, 황달, 뇌졸중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정체되어 뭉친 것을 풀어주면 낫기 때문에 어혈이나 담을 제거하고 잘 흐르게 하여 치료합니다. 스트레스나 정서적 긴장이 일차적 원인이라면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치료도 병행되어야 하겠지요. 간은 사려 깊어서 엄살 부리지 않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는 장기입니다. 웬만하면 잘 버티기 때문에 이상을 느낄 때에는 이미 문제가 심각해진 상황입니다. 그러니 일 잘한다고 너무 부려먹지 마시고, 군말 없다고 너무 방치하지 마세요. 훌륭한 장군을 두어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겠죠. 그보다는 싸우지 않고 이기거나 싸울 필요가 없게끔 만드는 것이 더 상책입니다. 우리 몸을 호위하는 장군 肝, 문제가 생기기 전에 잘 챙겨 주세요. 과로, 스트레스, 약물, 음주는 간을 지치게 하니 주의하시고, 혹시 주변에 간이 배 밖으로 나와 걱정되거나 짜증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신고해 주세요. 치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