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에서 보낸 시간들
날씨가 부쩍 차가워졌다. 버스에서 내려 몸을 움츠린 채 종종걸음으로 저 멀리 노란 불빛이 등대처럼 보이는 책방을 향해 걸어간다. 책방 주변엔 별다른 상가가 없어 그곳만 눈부시게 환한 느낌이다. 책방 문손잡이를 잡아당기니 딸랑, 하고 경쾌한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테이블에 앉아 책을 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동시에 나를 향한다. 그 시선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어느덧 이 모임도 한 달이 지났다. 일주일에 한 번, 월요일 저녁마다 만나고 있다. 책방 주인이자 모임 진행자분이 선정한 책을 정해진 범위까지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모임은 두 시간으로 시간이 정해져 있고, 진행자분이 대화를 이끌어주니 독서 모임이란 틀 안에서 안전하게 물속을 누비는 기분이다.
생각보다 두 시간은 짧다. 책의 같은 부분을 읽고 저마다의 생각이 달라서 오가는 이야기가 늘 넘쳐난다. 책에 대한 관심사로 모인 공통분모를 지닌 사람들이자 서로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 책에 대한 자신의 견해에 스며있는 그 사람의 조각을 통해 그를 가늠해보곤 한다.
온종일 회사에서 업무 전화와 고객 응대로 원치 않는 대화를 나누다가 이곳에서 책을 매개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시공간을 벗어난 세계로 진입한 기분마저 든다. 똑같은 언어를 사용하는데도 몇 시간 전에 쌀쌀맞고 시큰둥하던 말투의 나와 눈을 반짝이며 환하게 맞장구치며 이야기하는 내가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이곳을 알게 된 지도 어느덧 3년 차가 지났다. 책방은 책만 파는 곳이라는 인식을 바꿔준 이곳. 책방은 학창 시절 문제집을 사러 들락날락하던 곳이 아니던가. 그렇게만 알고 있던 내게 책방 벽면에 적혀있던 독서 모임에 대한 안내 글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모임을 시작했다.
독서 모임으로 시작된 책방과의 인연은 그 뒤로 점차 다양해졌다. 글쓰기를 배우고, 썼던 글로 책방 문예지에 투고했고, 한 달에 한 번 모여 함께 산을 올랐다. 또 마라톤 신청을 하고 같이 달리기도 했으며, 연말엔 <별별 하우스 콘서트>란 이름으로 수줍게 공연에 참여하기도 했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건 나와의 오랜 시간을 공유한 사람의 전유물이라 생각한 적이 있다. 타인을 만나 나를 소개하고 서로를 차츰 알아가야 하는 그 시간이 나이가 들면서 설렘보단 피곤함이 더 크게 느껴지는 날이 많았다. 오랜 시간 동안 서로를 알아가고 거기에 맞추었다고 생각했지만, 또다시 시간이 흐르면 서로는 서로를 해하기도 했던 나날들. 점점 버거워지던 관계 속에서 그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었다. 그래서 모임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인간관계로 더는 상처 받지 않겠다고 몰래 다짐했다. 적당히 호응하고 맞장구를 친다면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통해 우리가 나눈 것은 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책에 투영된 자신의 이야기였다. 책 속 인물에 빗대어진 이야기는 우리 모두 비슷한 고민과 마음을 지닌 존재임을 깨닫게 해 줬다. 책방에 스민 시간으로 타인에 대해 다시금 알아가고, 또 함께함으로써 나는 조금씩 변해갔다.
코로나가 터진 이후로 모임으로 함께하던 시간이 사라졌다. 출퇴근하면서, 거리를 오가면서 수많은 사람과 마주치지만 정작 거기엔 사람이 없었다. 서로 눈을 맞추며 상대방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타인에게서 흘러나온 이야기에 마음이 동하게 해 준 사람들은 사라졌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우리는 외적 거리만큼 마음의 거리도 멀어졌다. 뉴스에서 접하는 흉흉한 사건들로 마스크에 가려진 사람들에게 불신의 마음이 나날이 커져갔다. 코로나가 끝나면 우린 서로 눈을 맞추고 서로에게 귀 기울일 수 있을까.
그 작은 책방에서 보낸 시간은 과거 어느 시대의 이야기처럼 멀고 아득하게 느껴진다. 어두운 내 마음속을 밝혀준 환한 보름달 같았던 책방에서 그들과 함께 보낸 날들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