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담>

by Lynn

영웅(英雄) :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


누구나 영웅을 꿈꾸는 세상. 어쩌면, 영웅이 되어야 살아남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어릴 때부터 각종 영웅담을 들으며 자랐다. 끝내 영웅이 되고 싶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과연 영웅인가.


영웅. 탈 학교를 선택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볼 때마다 내게 자연히 떠오르는 단어이다. 그들의 탈학교 서사(과정, 스토리)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그들이 다니던 학교라는 그릇에서는 담지 못 한 특별한 사람들. 확고하고 올곧은 사람들. 유일무이한, 당당한, 진취적인, 독립적인, 자신감 있는, 그리고 꿈이 있는 사람들. 영웅.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공유받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그들과 비교하여 나의 이야기는 너무 초라한 것 같고, 나는 그들보다 비교적 쉬운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아무래도 난 영웅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나는 상당히 수동적인 사람이니까. 모부의 그늘 아래 무럭무럭 자라난 온실 속 화초 즈음이라고. 외모로도 성격으로도 재능으로도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분명 나는 열등감을 느끼기 싫어 학교를 나왔지만 학교 밖에서 또 다른 열등감으로 나를 인정하지 못 한 채 살았다. 하지만 나름의 부담(흔하지 않은 선택을 했기 때문에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과 의문의 죄책감(내가 뭐라고 이런 호사를 누리고 있지.)으로 잠 못 이루던 때도 많다. ‘학교를 안 다니며 힘든 건 없어?’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자신 있게 힘들고, 고민 있다고 말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나 정도가 뭐라고. (사실 지금도 이런 글을 쓰며 배부른 소리라고, 복에 겨운 소리라는 반발을 들을 것 같아 심히 쫄린다.)


내가 엄청난 서사를 가진 탈 학교 청소년들을 영웅으로 바라보는 것은 학교라는 곳 자체를 ‘문제 있는 곳, 탈출해야 하는 곳, 이겨내야 하는 곳’처럼 생각해서가 아니다. 나에게 있어 영웅이란, 스스로 정말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는, 단단하고 유연하고 무엇보다 용감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학교는 학교고, 주어진 환경에서 ‘나’라는 사람이 그곳과 잘 맞는지 안 맞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 잘 맞는다면 그 속에서 치열히 살아가는 사람. 하지만 만약 잘 맞지 않다면 ‘나’를 위해 스스로 길을 만들어 치열히 사는 사람. 그들 모두를 영웅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오직 한 가지 길(방향)만 존재하는 건 건강하지 않다고 본다. 이미 이 세상은 수십억 명 이상의 생명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고, 모두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다를 수밖에 없다!) 청소년을 기준으로 봤을 때 학교라는 환경이 잘 맞는 사람도 잘 맞지 않는 사람도 모두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곧 다양성이니까. 하지만 이 사회는 여전히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어떤 근거로) 한 가지 길 만을 고집한다. 다양성이 존중되지 못하는 사회 속에선, 그런 사회가 그어둔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순간, 그저 내가 틀린 사람이고 문제 있는 사람으로 정의되어버리곤 한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고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을 기본으로, 다양함이 동시에 존재할 때 그 경계에서 피어날 수 있는 발랄함과 무모함을 사회는 안전하게 보장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모두가 더 넓고 깊은 세계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영웅’ 일 필요 없지만, 사람들이 어느 정도 직접 살면 좋겠다.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스스로 정의할) 영웅들이 더 많이, 더 당연하게 등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그런 영웅으로 기억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2023, 9, 11 여름/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