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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블비치 Feb 13. 2018

우리 일상에서의 트레이드오프

영어 공부와 다이어트의 실패에 대한 경영학 전공자의 알고리즘적 해석

누군가에게서 언뜻 들었다. 영어교육과 다이어트는 절대 죽지 않는 시장이라고. 왜? 어차피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하니까. 강남의 노른자리 땅에는 YBM, 파고다 등 전통의 강호 명문 학원들이 자리하고 있고, 이들을 위협하는 영단기, 야나두 등의 영어교육 기업 역시 강남에 그럴싸한 빌딩과 함께 네이버 광고를 통한 온라인 교육을 확장하고 있다.각각의 학원들은 저마다 새롭고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하지만, 그렇다고 청년들의 영어 실력이 과거보다 월등히 나아진 것 같지 않다고 내가 느낀 것은 얼마전 회사에 들어온 신입 사원들이 얼마나 미국 출장을 두려워하는 지를 보고 나서였다. 다이어트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어렸을 때,즉 25년 전에 어머니가 다이어트를 하신다고 무슨 효소같은 것을 드시는 것을 봤다.그런 효소같은 것들은 시대가 지나면서 이름을 바꾸고, 거기에 첨가된 물질과 마케팅 메시지만 다를 뿐,한결같이 “식욕을 억제해서 살을 빼게 한다”,“지방을 태운다”, “낮은 칼로리로 포만감을 느끼게 한다” 등의 메시지로 소비자를 현혹한다. 하지만, 다이어트 해본 사람은 안다. 이런 메시지에 현혹되서 이런 것을 구입한다는 것이 실제 다이어트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를. 카드값이 나왔을 때 이런 소비에 대해 당신이 후회하고 있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는 걸까?아니 더 나아가 어떻게하면 진짜 영어로 된 미드를 자막없이 보고, 토익 점수를 걱정 안 해도 되고,외국인을 회사에서 만나도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을까? 어떻게하면 화면에서 나오는 아이돌들처럼 군살없는 몸매를 유지하면서도 먹방에서 보이는 것처럼 치즈와 설탕과 고추장 등 온갖 살찌는 재료가 가득한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을까? 좀 더 확장해서, 어떻게 하면 나는 성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좀 더 높은 연봉에, 더 적은 근무 시간에, 더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느 순간부터 페이스북에 “열정에 기름붇기”와 같은 글들과 영상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단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도 여기 저기 많이 보인다. 알리바바 창업자가 이야기하는 몇 번의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도전해서 성공을 이룬 경험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서로 연관성 없는 점들이 이어지는 순간이 온다는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도 있다. 잠을 줄여서 성공한 이야기도 있고, 지독한 가난을 겪고도 노력해서 성공한 사례들도 여기저기 보인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책의 제목처럼, 그저 아프게 살면서 노력하면 되는건가? 이처럼 죽을것같은 고통과 좌절을 참고 견디며 하루하루를 살면 성공하는 건가?인생은 이미 답정녀였던건가?


반대로 이렇게 페이스북과 서점의 온갖 책들이 뻔한 답을 이야기하는데, 왜 서점에 가고,SNS를 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이런 글에 감동하고, 공유하면서, “나도 이렇게 살아야하는데, 그러지 못해 부끄럽다”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걸까?왜 이런 글들을 보는 사람들은 알리바바의 잭 마나 스티브 잡스처럼 살지 못하는 걸까?단순히 게을러서였을까? 못나서였을까? 부모님의 경제력이 부족해서였을까? 머리가 나빠서일까?


난 비전공자로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한 분야인 정렬 (sorting) 알고리즘에 대해 배울 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제시해줄 수 있는 힌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트레이드오프 (trade-off)”이다.


네이버의 시사상식사전에는 이렇게 뜻이 설명되어 있다.


“'이율배반'의 의미를 가지는 용어로, 임금이나 물가의 안정과 완전고용을 동시에 실현시키는 것이 힘들며 양자가 서로 상충하는 관계에 있음을 설명한다.”


이게 뭔말인가? 경영학을 전공한 내가 봐도, 심오한 뜻이 담겨있는 경제학 용어로 보여 일단 이해하고 싶어지지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뜻이 컴퓨터 공학의 정렬 알고리즘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련 있는 분야를 골라보자면 바로 “양자가 서로 상충하는 관계”이다.


정렬 알고리즘은 (여기에 있는 모든 정의는 제가 이해한 범위에 한정된 것이며, 혹시 부정확한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데이터를 일정한 규칙에 따라 재배열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1부터 10까지의 숫자가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상태에서, 정렬 알고리즘은 이를1부터 10까지 작은 수부터 나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엑셀이 익숙한 분들은 이 정렬이라는 것이 얼마나 일을 하는데 중요한 지 아실 것이라 생각한다. 알고리즘에 대해 배울 때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 이 정렬 알고리즘을 구현하는 것이다. 난 이 정렬 알고리즘이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게 가장 도움되었던 부분은 이 과정에서 “트레이드오프”를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이다.


가장 먼저 배운 알고리즘은 선택 정렬 (selection sort) 이었다. 이치는 간단하다. 나열되있는 숫자를 차례대로 보고, 하나씩 빼서 새로운 곳에 적절하게 배열하는 방식이다. 나이가 어린 아이 (자식, 조카, 어쩌다 같이 놀게된 랜덤한 아이 등)에게 설명하기 가장 쉬운 알고리즘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1부터 10까지의 카드를 막 섞어 놓고, 이를 순서에 맞게 배열하는 놀이를 한다고 하면, 카드를 쭉 보면서 1을 빼서 맨 앞에 놓고, 그 다음 2를 빼서 1 다음에 놓고,이렇게 하는 것이 선택 정렬 방식이다. 아마 이런 놀이를 처음 해보는 아이라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이런 방법으로 카드를 배열하지 않을까.


여기까지는 사실 꼭 배워야 아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좀 더 공부를 하다가 “앗! 이런 방법이!” 라는 생각이 든 알고리즘이 바로 합치기 정렬 (merge sort) 이었다. 이 알고리즘은 아무렇게나 나열되어 있는 숫자들을 먼저 둘로 갈라 놓는다. 그리고 이를 또 반으로 나눈다. 그렇게 반으로 나누는 일을 계속하다 보면,어느새 숫자가 하나 또는 두 개씩 남게 된다. 숫자가 하나일땐 그냥 놔두고, 두 개일 땐 이를 비교해서 정렬한다. 그렇게 각각의 짝이정렬이 되면,짝들을 비교하면서 반대로 합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1과 3, 2와 8, 이렇게 이미 정렬이 되어 있는 두 짝이 있다면, 이를 합칠 땐 1과 2를 비교해서 1을 가장 앞에 두고,그 다음 3과 2를 비교한 후 2를 그 다음에 두고,3과 8을 비교한 다음 3을 그 다음에 두고, 마지막으로 8을 두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합치기 시작하면, 어느새 모든 숫자가 정렬이 된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나와 비슷한 지식 수준으로 이 알고리즘을 처음 배우셨다면, 아마 이 쯤에서 “이거 좀 복잡한데 신기하네” 라고 느끼셨으리라 생각한다. 즉 이 알고리즘은 이제 막 어린이집을 가기 시작한 아이에게 설명하기 참 쉽지 않다.그래서 위키피디아에서는 선택 정렬을 간단한 정렬 (simple sort) 으로, 합치기 정렬을 효율적인 정렬 (efficientsort) 으로 구분한다.


합치기 정렬이 효율적인 정렬로 구분되는 이유는, 아무리 많은 숫자들이라도 숫자 정렬을 상당히 빠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숫자가 n 개가 있다고 할 때, 이를 정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n * (log n) 으로 표현한다. 즉,숫자의 갯수와 숫자의 갯수의 로그를 곱한 만큼 연산을 해야한다는 이야기이다. 이에 반해 선택 정렬은 n 개의 숫자를 정렬하는 데 n 제곱의 연산을 해야 한다.이게 무슨 소리인가? 간단하게 말해 1024개의 숫자를 정렬한다고 할 때, 합치기 정렬은 컴퓨터가 1024 * 10, 즉 10,240 번 연산을 한다는 이야기이고, 선택 정렬은 1024 * 1024, 즉 1,048,576 번 연산을 한다는 것이다. 숫자가 커질 수록 이 차이는 더 벌어진다.


그러면, 어떤 정렬이 더 좋은건가? 당연히 효율성이 중시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효율적인 정렬인 합치기 정렬이 좋은 것 아닌가? 그러나 사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여기서 바로 “트레이드오프”가 나온다.


예를 들어 당신이 친한 친구들과 플레잉 카드를 가지고 놀기 위해 카드들을 차례대로 정렬한다고 할 때,효율성을 위해 합치기 정렬을 할 것인가? 난 살면서 단 한번도 합치기 정렬을 이용해서 플레잉 카드를 정렬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대부분 선택 정렬과 같은 간단한 방법을 이용한다. 이처럼 선택 정렬과 같이 간단한 방식은 이해가 쉽기 때문에, 우리가 살면서 엄청난 효율이 필요하지 않는 경우에 쉽게 쓰일 수 있다.이 밖에도 선택 정렬은 공간 (컴퓨터에서는 메모리)의 제약이 있을 때 유용하다. 예를 들어 카드가 1부터 10까지 10개인데, 테이블 위에는 카드를 딱 11개까지만놓을 수 있다면, 당신은 합치기 정렬을 할 수 있겠는가? 이에 반해 선택 정렬은 카드를 놓을 자리가 여분의 한 자리 (즉 11개의 자리) 만 있어도 가능하다.


내가 본 알고리즘 강의를 진행한 프린스턴 컴퓨터 공대의 로버트 세즈윅 (Robert Sedgewick) 교수는, 정렬 알고리즘 강의에서 "트레이드오프"를 이해하는 것이 알고리즘 강의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즉 각기 다른 정렬 알고리즘의 장단점과 상충관계를 이해하고, 각각의 상황에서 적절한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것이 컴퓨터 공학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가서, 왜 많은 사람들이 영어 공부에 실패할까? 나의 시각에서 이 문제는 근본적인 “트레이드오프”문제이다. 타임 캡슐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한, 사람은 시간을 되돌릴 수 없고, 주어진 시간에 할 수 있는 것은 유한하다. 즉,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시간에는 영어 공부를 할 수 없다.잠을 자는 동안에도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멀티 태스킹이 가능하다고 주장할수도 있다. 밥 먹으면서 영어 공부하고, TV 를 보면서도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해본 사람은 안다. 집중력이 분산되었을 때 실제로 각각의 일에 대한 효과가 어떠한지를. 생전 처음가는 곳을 네비게이션으로 찾기 위해 골목 골목을 찾아다닐 때,운전자가 하던 말을 멈추고 조용해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멀티 태스킹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결국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지에 대한 근본적인 “트레이드오프”를 이해하기 전까지, 기존에 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시작해서 성공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예를 들어 당신이 주말에 영어 공부를 하겠다고 결심을 했다고 하자. 그래서 당신은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2시까지 영어 공부를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여기까지는 매우 순조로울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이 결심을 하기 전의 주말 아침 10시부터 오후 12시까지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일요일 이 시간에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를 하는 시간이다. 당신은 단 한 번도 본방사수를 놓친적이 없다.그렇다면 토요일은? 당신에게 불금은 주중의 야근과 업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삶의 활력소이다. 밤 늦게까지 소주, 맥주, 삼겹살, 치킨 등으로 살아있음을 느낀 당신에게 토요일 아침의 휴식은 너무나도 꿀같은 시간이다. 물론 집에서 사랑받는 너무나도 예쁜 딸 또는 아들이거나, 집안을 책임지는 믿음직한 가장이기 때문에 토요일 아침에 가족과 함께 청소와 집안일을 할 수도 있다. 아니면, 외국에서 오랜만에 들어온 10년 지기 친구와의 점심약속을 위해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만져야 할수도 있다.


당신은 지금까지 누렸던 이러한 주말 아침의 여유로움과 설레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살면서 해야하는 의무와 책임을 버리고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는가? 지난주에 페이스북에서 본 “열정의 기름붇기” 영상을 보고 결심을 했다고 쳐도,그 결심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인간관계의 축소, 비난 등을 견딜 수 있는가? 견디려고 마음을 먹는다 해도, 과연 지속할 수 있는가? 더 나아가 이렇게 많은 것을 포기할 만큼 영어 공부가 당신의 인생에 소중한 것인가?


다이어트는 더욱더 극단적인 “트레이드오프” 문제를 야기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인간의 3대 욕구 중 하나이자, 삶의 행복과 관련된 일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일이 있는 친구에게 “한 턱 쏴라”라고 말하는가? 왜 미디어에서는 먹방이 성행하고,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맛집들이 존재하는가? 왜 사람들은 미쉘린 3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에 열광을 하고, 원조 우동을 먹기 위해 일본까지 날아가는가? 왜 많은 내 주위의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조금이라도 더 맛있는 음식을 먹기위해 긴 줄을 마다하고 기다리는가? 왜 사람들은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사람들에게 “밥한번 먹자”라고 이야기하고,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내가 맛있는 거 한 번 쏠게”라고 말하는 것인가?


나는 다이어트를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타고난 마른 체질이거나 먹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내 상식 선에서 그들이 체중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지금보다 먹는 것을 줄이거나, 운동을 더 많이하거나, 둘 다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 근본적인 “트레이드오프”에 직면하게 된다. 행복의 원천인 “맛있는 음식”을 줄이거나,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게으름을 포기하지 않는 한 다이어트는 실패한다. 식욕을 억제하는 효소가 얼마나 맛이 없는 지는 먹어본 사람은 안다. 그리고 그 효소를 먹고 식욕이 저하되었을 때 (실제로 효과가 있는 경우에) 삶의 낙이 하나 없어지는 것이다. 맛있는 것을 먹고 행복해하며, 그동안 회사에서, 집에서, 길에서, 인간관계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잊어버릴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운동을 꾸준히 지속적으로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에게 있어 너무나도 귀중한 시간을 다른 데 쓰지 못하고 운동을 해야 하는 것인데, 그만큼 내가 그동안 좋아하던 TV 보는 시간이나, 휴대전화로 게임하는 시간은 없어지는 것이다. 당신은 과연 그러한 희생을 할만큼 다이어트로 얻을 수 있는 행복이 큰 건가?


난 더 나아가 나이든 세대와 젊은 세대의 소비 및 저축 문화의 차이점도 결국 무의식적인 “트레이드오프”에 대한 이해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80년대와 90년대의 우리나라는 고성장의 시기였다. 성장률이 10%가까이 되던 경우도 있었으며, 이자율이 높고, 부동산 등 다양한 투자 자산의 수익률도 높은 시기였다. 일자리도 넘쳐났다. 내 주변에도 이 시기에 부동산 등으로 굉장히 많은 수익을 낸 어르신들이 있다.이 시기는 ‘오늘의 소비를 참고 내일을 위해 투자’하면 훨씬 더 얻는 게 많은 시기였다. 그리고 개천에서 용난 케이스가 상대적으로 많은 시기였다.


이에 반해 지금은 대한민국의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성장률은 낮아지고, 상대적으로 내일에 대한 기대가 줄 수 밖에 없는 시기이다. 내가 얼마전에 개설한 시중 은행보다 높은 금리를 주는 카카오뱅크의 1년만기 정기 예금의 이자는 2.2%였다. 강남의 집값은 10억이 훌쩍 넘어섰다. 1년에 5천만원씩을 모은다 해도,강남 집값을 모으는데 20년이 걸린다. 이렇게 모을 수 있는 사람들도 사실상 많지 않다. 1억 이상의 연봉을 받는 직장인은 전국에 4%에 불과하고, 이들도 모두 젊은 청년이라고 보기 어렵다. 내가 죽도록 노력해서 돈을 모아봤자, 부모님보다 내가 더 좋은 집을 사는 것은 거의 물건너 간 것 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는 나의 경제력에 기대는 것보다는, 부모나 부모의 혜택을 받은 배우자의 경제력에 기대는 것이 더 가능성 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내 주변의 한 지인은 내 연봉의 반 정도를 버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재산이 많은 부모의 자녀와 결혼해서 6억짜리 전세집에서 살고 벤츠 E 클래스를 몰고 다닌다. 내 차는 2009년식 SM5 이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청년들이 내일을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트레이드오프”가 과연 의미가 있을까?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다 포기하고 그냥 살던데로 살아야 할까?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슬프지 않을까? 어떻게해야 우리는 이 무지막지한 “트레이드오프”속에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나름의 해답을 정렬 알고리즘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합치기 정렬은 대부분의 경우 더 효율적이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 선택 정렬은 많은 경우 비효율적이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유용하게 쓸 수 있다. 결국 다양한 정렬 방식을 상황에 맞게 선택을 한다면, 모든 상황에서 정렬을 실행할 수 있되, 조건이 갖춰질 때에는 굉장한 효율을 달성할 수 있다.


영어 공부와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를 비교해볼 때 어떤 것이 나에게 더 행복을 가져다 줄까?그 답이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라면 다른 시간 대에는 어떨까? 나는 정말 ‘섹션 TV 연예통신’을 보면서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내가 지금 ‘집사부일채’를 보는 것이 정말 재밌어서 보는 것일까? 차라리 이 시간에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이 조금 더 가치있고, 보람차고, 재미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다이어트 역시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내가 정말 포기 못하는 음식은 무엇일까? 그리고 내가 항상 그것을 먹고 있는가? 난 지금까지 단 한 명도 매 끼니 정말 맛있는 것을 먹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때때로, 이렇게 맛없는 음식을 먹을 바에야, 다이어트나 하지 하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스트레스를 반드시 먹는 것으로만 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정말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마주앉아 그 사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면, 앞에 놓여있는 파스타 그릇을 깨끗이 비우지 않더라도, 오늘 상사에게 들었던 잔소리가 자취도 없이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미래에 그런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지금의 잠깐의 식욕은 억제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치열하게 주어진 옵션들의 “트레이드오프”를 이해하고, 상황에 맞게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선택을 한다면, 내 삶이 내가 바라는 모습에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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