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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Dec 01. 2020

평범하지만 평균은 아닙니다. #06

살갑다는 이름으로 #02

   

“언니, 나 그거 좀 빌려줘요.”

“언니, 이사 많이 다녀봤으니 아파트별 장단점 정리해서 알려줘요.”

“언니는 영어 못하잖아요. 할 수 있으면 영어로 말해봐요.”

“언니 가요?”     


원하지 않아도 모임의 중심이 되어버려 귀찮은 일을 떠안곤 한다. 다행히 내가 했던 모임에서는 부탁을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서로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안색을 살피고 살뜰하게 챙겨준다. 무례한 사람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철칙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무례한 상황에 대한 면역력이 떨어져도 한참 떨어진 것 같다. 인간관계도 감기처럼 걸리고 걸리다 보면 면역력이 생기는 것일까?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산모교실 엄마들과 함께 점심을 먹곤 했는데 나는 그 시간이 너무 힘들었다. 누군가 모이자고 화두를 던지면 되돌이표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답답해 장소랑 시간을 먼저 정하자 라고 말해버린 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 내 임무가 되어버렸다. 

“언니가 해주세요. 언니가 많이 알잖아요.”

 난 소모임을 좋아하는데 아이들까지 모두 모이면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예민한 녀석을 안고 달래다 집에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내가 여길 왜 왔나 싶은 후회만 한 가득이었다. 몇 번인가 약속 장소만 잡아주고 못 가겠다고 하자 그 만남은 불발이 되기도 했다.     

“언니가 모이자고 안 하니 못 모이잖아요.”

라는 원망이 내게 돌아왔다. 내가 먼저 모이자고 한 적은 결단코 없다.      


우리 아이는 말과 인지가 빠른 아이다. 어린이집에서 ‘apple'이라고 한 것을 두고 담임선생님이 벌써 영어를 하냐고 물었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엉뚱하게도     

“언니는 영어 못하잖아요. 여기서 영어로 말해봐요. 해봐요. 못하잖아요.     

아이가 겨우 ‘apple'이라는 단어를 말했다는 것과 내 영어회화 능력이 무슨 관계인지 알 수도 없었지만 따지듯 쏘아대는 그 무례함에 당황하고 말았다. 어느 포인트가 그 친구를 자극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순간 뭐라 답할지 몰라 바보같이

“응. 난 영어는 못하지.”

라고 상대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고야 말았다. 목적을 달성한 그녀는 ‘역시나’란 표정을 지었다. 며칠 동안이나 심장이 두근거렸다. 평소의 농담이었다면 영어 못한다는 대답이 그렇게 속상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그 친구들이 나에게 했던 부탁들이 떠올랐다. 

산모교실에서 알게 된 A와 B는 언제나 언니, 언니, 하며 궁금한 것 필요한 것들을 물어오곤 했는데 언니라면 응당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해 자잘한 부탁들을 들어주곤 했다. (이 부분이 가장 잘못된 판단이었다)

아이들이 한두 달 차이밖에 나지 않아 성장과정을 공유할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시골의 좁은 동네에서 다 사이좋게 지내고 싶었다. (도시와는 다른 시골만의 다정함을 상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A는 자질구레한 부탁을 자주 하는 편이었고 B는 앞 뒤 없이 용건에 대한 것을 정리해서 보내라거나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만 연락하는 편이었다.     

“언니가 살가워서 그렇죠. 어려서 그럴 수도 있어요.”

주변에서는 날 위로하거나 상황이 잘 풀리길 바랐다.     

왜 이런 기분이 도통 풀리지 않는지 느슨해졌던 마음을 힘껏 당겨 생각해보았다. 결혼 후에 만난 사람들의 특성은 전혀 달랐고 새로운 생태계에 적응하기 위해 늘 애써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들은 오랫동안 나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귀찮음을 해결해주는 사람 이상은 아니라고.  

다행히 그 일을 계기로 하찮은 부탁이나 요청은 거절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들을 제외한 시간은 꽤나 즐겁고 생산적이기까지 했다. 이제껏 모임이 힘들었던 이유는 그녀들의 신호를 모른 척하거나 어색해지기 싫었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걱정에서 벗어나자 나 때문에 못 만난다는 원망도 더 이상 거슬리지 않았다. 따로 시간을 내지 않으면 몇 달에 한번 길에서 스칠까 말까 한 사이였다. 아마도 처음부터 그런 관계였을 것이다. 마음의 상처는 있지만 흉터는 남지 않았다.     



언니라는 호칭은 살가운 척 하기에 딱 좋은 호칭이다.(부르는 쪽이나 불리는 쪽이나) 

아이를 내세워했던 사소한 부탁과 밤중의 긴급한 상담들을 신뢰관계의 증표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해결이 된 후에 이제 괜찮다는 연락은 한 번도 받지 못했다. 용건이 있을 때만 연락을 할 뿐 보고 싶다거나 궁금해서 연락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 사실은 관계를 정리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둔해도 너무 둔하다.) 게다가 일상이 궁금하지 않은 사이라니. 만나서 밥 먹고 수다 떨고 할 이유가 없는 사이다. 내 일방적인 배려들이 결국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다.     

나는 누가 부탁하면 쉽게 거절을 못하고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도와주려는 프로 오지라퍼다. 오지라퍼도 사람이다. 호의를 비웃는 사람에게까지 베풀어 줄 오지랖은 없다. 무례한 사람에게 나이, 성별, 국적 등을 이유로 측은해하지 말자. 그냥 무례한 또는 무식한 사람일 뿐임을 명심하자.     

누군가 나를 살갑게 불러줄 때 한번쯤 의심해보자. 용건 없이도 만날 수 있는 사이인지.

오지랖 넓은 나는 다시 한번 명심하기로 했다.     

무례한 사람을 곁에 둘 이유가 없다. 

모임에 집착하지 말자. 아니다 싶으면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내 관계는 내가 정의한다. 사람들 눈치 보지 말자

살가운 사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 좋은 사이만 있을 뿐이다. 

좋은 사이에는 서로 지켜야 할 선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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