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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Jun 15. 2020

<벨라스케스 – 스페인 미술이야기>

“스페인 – 아트인문학 여행” 中

<벨라스케스 – 스페인 미술이야기>
“스페인 – 아트인문학 여행” 中

                                              해 헌 (海 軒)

오늘도 아트인문학 여행 책을 한번 더 보려고 합니다.
이전에도 여러 번 김태진 작가의 책을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이탈리아, 프랑스를 거쳐서 스페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태진 저자는 서울대 인문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시인이자 미술평론가인
보들레르를 전공한 미술애호가로 현재 서울시립대 겸임교수이며 기업인재연구소
대표이사를 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시대를 맞아 예술과 인문학을 접목해 선보인 <아트인문학>강연이
공전의 히트를 하였고 ‘베스트 티처상’을 수상할 만큼 흡인력 있는 강연은 유명
하다고 합니다.

지난 번은 돈키호테와 연결된 스페인의 문화와 무적함대 이야기를 하였고
오늘은 스페인의 미술, 화가 벨라스케스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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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미술의 보고 – 프라도 미술관

1819년 문을 연 프라도 미술관은 미술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꿈과 같은 곳이다.
역대 왕실에서 적극 수집한 거장들 작품들을 모태로 탄생한 이 미술관은
자국 미술과 해외 미술이 가장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유럽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컬렉션도 질과 양에서 매우 뛰어나지만, 다른 나라
에서는 볼 수 없는 스페인 회화의 황금시대 작품들과 고야의 대표작 컬렉션이
미술관의 절반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간판 작품의 명성도 대단하다. 루브르에 <모나리자>가 있듯이, 이곳
프라도에는 <시녀들>이 있는 것이다.

★ 스페인의 위대한 화가 벨라스케스

스페인의 위대한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는 스페인 세비야에서
태어났다. 그는 프란시스코 에레라의 공방을 거쳐 12살에는 화가 프란시스
파체코의 작업실과 아카데미에서 실력을 쌓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기회가 찾아왔다. 지인의 소개로
궁전에 불려 갔다가 젊은 국왕 펠리페 4세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던 것이다.
그의 뛰어난 기량과 성품에 매료된 펠리페 4세는 신참 화가를 궁정화가로
전격 발탁한다. 그런 다음 자신의 초상화는 오직 벨라스케스만 그릴 수
있도록 했다.

이때의 스페인은 국력이 약해지고 있던 시기라 연이은 참패를 당하며 왕은
정치에 의욕을 잃고 좋아하는 분야인 예술에만 빠져들게 된다. 당시 유럽
최고의 명성을 갖고 있던 루벤스를 초빙해 많은 그림을 의뢰하고 유럽 전역
에서 값비싼 그림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또한 아끼던 벨라스케스를 성장
시키기 위해 이탈리아에 유학을 보내기도 했다. 이 이탈리아 유학은 벨라
스케스의 그림을 획기적으로 변모시킨다. 이탈리아에서 그는 마치 마른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앞선 미술을 배웠다.

그는 국왕의 각별한 사랑을 받는 엘리트 화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아주
부유하지도 않았지만 특별히 부족할 것도 없는 안정적인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 역시 돈키호테의 심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가 추구한 가치는
새로움과 탁월함이었다. 그는 시간을 쪼개 새로운 기법과 구도를 실험했다.
그는 이런 과정에서 빨리 그리면서도 생생한 효과가 나오는 알라프리마
기법을 완성하게 되었다.
새로움을 향한 끝없는 모험들 그리고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쏟아 탁월함을
이루어내었다는 것, 이것이 바로 그를 서양미술사에 빛나는 위대한 화가로
만든 요인이다.

★ 명작 - <시녀들>

프라도 미술관에는 놓칠 수 없는 벨라스케스의 걸작이 다수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 대표작인 <시녀들>을 보자. 높이 3미터가 넘는 이 대작은 프라도 미술관
중앙 홀 정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바로 벨라스케스의 방이다. 이 그림 앞으로
가면 이미 많은 인파들로 인해 발 디딜 틈이 없다. 이 미술관에서 이들 모두가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이 그림의 명성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이 그림은 인간이 그린 미술작품 중에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선정된 바 있다. 30년 전 영국의 한 잡지가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 나온 결과인데 일반 대중이 아닌 미술계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했던 그
조사에서 <시녀들>은 <모나리자> 등을 제치고 당당히 1위에 올랐다.
피카소에 얽힌 일화도 이 그림의 명성을 높이는 데 한몫했다. 이 그림에서
받은 영감이 얼마나 컸던지 피카소는 이 그림을 테마로 무려 50여 점에
달하는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이 작품은 기법으로만 보더라도 이후 화가들에게 미친 영향이 대단하지만,
문화 전반에까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요인은 다른 곳에 있다.
그건 화가와 모델, 화가와 관객의 관계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비틀어버린
데 있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궁정의 귀염둥이 마르가리타 공주와 시녀들로
보인다. 그런데 왼편으로 큰 캔버스의 뒷면이 보이고 그 앞에 위치한 화가가
보인다. 하지만 이 그림에는 커다란 반전이 숨어 있다. 저 뒤로 정면에 작은
거울이 있는데 그 거울에 두 사람의 모습이 비친다. 바로 왕과 왕비다.
한참을 생각하고 다시 정리하면 화가는 왕과 왕비를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공주와 그 일행은 국왕 부부 초상화가 그려지는 현장을 찾아온 손님
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장면을 그림으로 구현한 화가는 이 모두를 뒤집어
재구성을 한다. 관람객의 시점과 국왕 부부의 시점이 일치하고 이는 다시
화가의 시점과 일치한다. 놀라운 발상이자 새겨볼수록 참으로 절묘한 구성
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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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스페인의 위대한 화가인 벨라스케스를 통해서 스페인의 문화와 미술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벨라스케스가 활동한 시기는 세계 최강의 국가 스페인이 저물어 가던 시기였고
이때의 국왕인 펠리페 4세는 시들어 가던 국력에 지쳐 예술에 관심을 집중하던
때였다고 합니다. 이때 눈에 든 이가 바로 벨라스케스였고, 그는 왕의 엄청난
지원을 받아 이탈리아 유학을 다녀오고 더욱 더 성장한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벨라스케스의 위대함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끝없는 새로운 시도와
모험을 감행한데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현대에 가장 위대한 그림이라고 선정까지
된 <시녀들>을 완성할 수 있었겠지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모나리자> 등을 제치고 미술 종사자들에게 최고의 작품
으로 인정을 받았고 피카소를 비롯한 프란시스코 고야, 마네, 휘슬러 등에 이르기
까지 후대의 미술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고 합니다.
특히 <시녀들>은 앞의 설명처럼 반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그림을 보는 순간
모든 등장인물들이 나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내가 그림 속
세계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그림 밖 세계를 궁금해 하여 구경
하고 있는 것 같은 역발상의 그림인 것이지요.

또 다른 걸작은 그를 수행했던 하인 파레하를 그린 그림과 당시의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화인데, 먼저 1650년에 그려진 <후안 데 파레하>는
1970년 영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역사상 최초로 100만 파운드가 넘는 금액으로
낙찰이 되었는데 231만파운드로 현재의 가치로 520억원이 넘는 금액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초상화 중 하나로
칭송받는 작품으로 그림이 완성된 후 초상화를 마주한 교황은 너무 생생하여
당황했다고 합니다. 교황은 이 생생함이 너무 부담스러워 외부에 공개하길
꺼렸고 19세기가 되어서야 대중에게 공개가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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