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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Aug 01. 2020

<21세기에 만나는 노자철학>

“철학, 역사를 만나다”中

<21세기에 만나는 노자철학>
“철학, 역사를 만나다”中

                                                     해 헌 (海 軒)

오늘은 세계사에서 포착한 철학의 명장면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편하고 흥미롭게
철학을 이야기해주는 책을 한 번 보려고 합니다.

안광복(1970~)저자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철학교사로 고교에서
근무하면서 다양한 책을 저술했습니다.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교과서에서 만나는 사상>, <서툰 인생을 위한 철학수업>,
<도서관 옆 철학카페>, <철학자의 설득법> 등 다양한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지난 시간에 헤겔의 철학, 그리고 스토아 철학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였고 오늘은
노자의 철학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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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과 함께 시작된 위대한 철학

인류 문명은 전쟁을 거치면서 발전했다. 비행기와 자동차가 일반화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때 군사용으로 널리 쓰이고 나서부터이며, 인터넷도 원래는
미국 국방성의 연락 체계로 개발된 것이었다. 이보다 훨씬 이전에도 큰 전쟁이
한번 일어나면 획기적인 발명품들이 속속 탄생했다.
전쟁은 죽느냐 사느냐의 게임이다. 그야말로 ‘목숨 걸고’ 살 방도를 찾게
마련이고, 그중에서 평화로울 때는 꿈도 못 꿨던 엄청난 발전이 이루어지곤 했다.

이 점은 철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위대한 사상은 보통 혼란한
시기에 생겨났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활발하게 철학 논의가 이루어졌던 시대는
대륙 전체가 갈라져 싸웠던 춘추 전국 시대다. 이 혼란기에 유가, 법가, 묵가,
도가 등 수많은 학파가 생겨나 목소리를 높였다.
이른바 백가쟁명 시대였던 것이다.

이들이 주장했던 것은 결국 전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다. 생존을 건
싸움의 해법이니만큼 절실하고 치밀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나 삶의 정곡을 정확히
찌르며 정교한 논변을 폈던지, 이 시대에 생겨난 학파들은 지금까지도 동양 문명을
지탱하는 사상의 기초가 되고 있을 정도다.
유교가 우리 사회의 바탕을 이루는 문화로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있듯이 말이다.

★ 최고의 선은 흐르는 물과 같다

우리가 살펴볼 노자 사상도 이 시대에 뿌리내린 철학이다. 백가쟁명 가운데
탄생한 사상 중 중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컸던 사상이라면 공자가 창시한
유가와 노자에서 비롯된 도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둘의 성격은 라이벌이라 할 만큼 다르다.

유가는 원래부터 지배층의 사상이었다. 지금도 유학자라 하면 우리는 흔히
대궐 같은 집에서 팔자걸음을 걷던 선비를 떠올린다. 반면, 도가는 민중의
사상이라 할 만하다. 도교(道敎)로 세속화된 도가의 사상은 지금은 우리
생활 속에서 뒷골목에 자리 잡고 있는 점(占)집 문화로 남아 있다.

하지만 원래 노자의 사상은 지극히 ‘자연 친화적’이었다. 전통 농경 사회를
떠올려 보자. 자신이 태어난 마을에서 살다가 죽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던 그
시절만 해도, 동리 사람들 모두가 친척이거나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이웃이라
법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의 문제는 조상 대대로 해 왔던
것처럼 ‘도리’에 맞게 조정하고 해결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특별한 사건이 없는 한, 사람들의 생활은 봄이 되면 씨 뿌리고 여름이 오면
김을 매고 가을이면 거두는 식으로 자연에 따라 물 흐르듯 흘러갔다.

노자 철학의 핵심인 ‘도(道)’도 이런 자연스런 생활 방식과 다르지 않다.
도는 곧 자연의 길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새는 하늘을 날고 물고기는 바다를 헤엄치듯이 자연은 가만히 놔두면
원래 주어진 길을 따라 움직이게 되어 있다.
이는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다. 억지로 자연을 거스르려 하지 않고 순리대로
산다면 모든 일이 순조로울 수밖에 없다.
덕(德)이 있는 사람이란 이렇듯 자연의 길, 곧 도에 따라 사는 사람을 말한다.
‘최고의 선은 흐르는 물과 같고.... 억지로 하지 말고 흘러가듯 살라’는
노자의 가르침은 태고의 평화로왔던 시골 마을의 정서를 그대로 담고 있다.

그러나 혼란한 시대는 평온한 마을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다른 나라와 싸우려면
군사와 물자가 필요한 법, 국가는 시골 마을의 젊은이들을 잡아가고 세금을
매기기 시작했다. ‘보호’해 준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실 그들은 깡패에
지나지 않았다. 국가 자체가 없었다면 애초에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국가는 군사 요지라는 이유로 개인의 땅을 빼앗아
억지로 사람을 끌어다 요새를 만들었다.

노자가 ‘나라는 작고 백성은 적은 소국(小國)’ 상태를 가장 이상적인 세상의
모습이라고 본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노자가 살았던 것으로 추측되는 주나라
시기의 마을이란 ‘폭과 넓이가 300걸음 정도에 스물다섯 남짓의 가구가 모여
사는 곳’을 말했다. 노자가 말하는 ‘국(國)’은 이런 자연 취락을 의미했던
것이다.

★ 무위자연의 가르침

노자가 말했다. “가장 좋은 것은 백성들이 통치자가 있다는 사실만을 아는
것이고, 그 다음은 통치자를 가깝게 여기는 것이고, 그 다음은 통치자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통치자는 공을 세우고 일을 이루지만 백성들은 모두
자신이 한 일이라 말한다.”

잘사는 나라일수록 국민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 태평성대였다는 요순시대
에도 그랬다. 그 당시 사람들은 임금이 누구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노자도 정치가들에게 백성들이 통치자가 있다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다스리라고 충고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하라’, 통제와 착취가 적은 곳에는
백성들이 모여들고, 충분한 자유가 주어지면 자율이 지배하는 법이다.
현대 민주주의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자발성’의 진리를 노자는 이미 그
시대에 설파했던 것이다.

★ 21세기에 부활한 노자

그러나 역사상 노자의 사상은 항상 마이너(minor) 철학이었다. 동양사회
에서 메이저(major)는 당연히 공자의 가르침, ‘유가’였다.
한 무제 시대는 이 둘의 승패가 갈린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나라를 황제가 중심이 된 강력한 중앙집권국가, 제국으로 만들려 했던
무제는 유학을 국교로 삼았다. 공자는 나라를 가정과 같다고 생각했다.
백성은 아버지를 따르듯 임금을 따라야 하고, 임금은 자식을 돌보듯 백성을
돌봐야 한다는 뜻이다. 이때부터 임금은 아버지와 동등한 지위에 있는
강력한 지도자로 변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방에 있는 귀족들이 이런 임금의 독재 음모(?)를 고분고분 받아들일
리 없었다. 유가에 대항하는 그네들의 사상적 배경은 노자에 뿌리를 두고
있는 “황로 학파”였다. 이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한다.’
는 노자의 주장을 좇아, 임금은 억지로 나서지 말고 귀족들의 지배를 그대로
내버려 두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역사는 강력한 중앙집권 군주였던
무제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때부터 노자의 사상은 장자의 가르침과 섞여
노장(老莊)철학, 도가라는 이름으로 마이너들의 삶 속에 철학으로 흘러들었다.

그러나 역사는 돌고 돌게 마련이다. 동북아시아의 주류 사상이었던 유가는 이제
학자들 사이에서 ‘바이러스’ 수준의 취급을 종종 받곤 한다. 유가 특유의 위계
강조와 경직된 도덕 윤리가 역사 발전을 가로막고 정체를 가져왔다는 논리에서다.
반대로 노장의 가르침은 지금 동서양을 막론하고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과거 2500년의 인류 역사가 자연을 개척하며 문명을 억지로 끌고 가는
인위의 역사였다면, 새로운 시대는 자연을 따라가는 ‘친환경적인’ 문명을
요청하고 있다. 선진화된 국가일수록 강제가 먹히지 않고 시민의 자발성을
존중하는 현상, 근엄한 조직의 논리보다 소규모의 인간적인 커뮤니티가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모습 등은 노자가 꿈꾸었던 무위자연, 소국과민
의 이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디 노자의 자연스러움이 억지 주장으로 물든 이 세상을 ‘부드럽게 흐르는
물처럼’ 바꾸어 주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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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려운 철학을 너무나 쉽게 풀어주는 안광복 저자의 노자
사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흔히 동북아시아는 유교, 도교, 불교, 토속신앙 등이 주류를 이루어 흘러왔지요.
그중 국가 철학으로 오랫동안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어 온 것은 유교였습니다.
고려시대까지는 불교가 우세했지만, 성리학이 대세가 되었던 조선시대에는
유가의 영향력이 막대했습니다.
유가의 철학은 국가의 토대를 튼튼하게 하고 백성들 사이의 윤리의식을 높여서
사회가 안정되게 하는 큰 역할을 하였지만, 반대로 수많은 당파의 등장으로
당파 싸움이 수백 년간 지속되게 하였고, 실생활과 관계없이 이상적인 사상으로
이끌어 서양과의 경쟁에서 뒤떨어져 침략을 당하는 수모를 겪게도 하였습니다.

저자는 2500년 전에 등장했던 수많은 백가쟁명의 철학들이 결국은 엄청난
혼란과 생존위협의 상존에 의해 나타나고 발전했다고 합니다.
평화의 시대에는 너무나 평온하고 간절함이 없기에 발전도 더디고 사회가 성숙
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당장 하루의 생존도 보장할 수 없는 시대에는 엄청난
사고의 발전과 사상의 성장이 있었지요.
또한 철학이나 사상 뿐아니라 과학기술도 발전하여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나면
엄청난 인명이나 재산의 손실도 있었지만 획기적인 기술 발전으로 인류의 삶도
한층 나아졌습니다.

오늘 저자는 현대에는 과거의 인위적인 개척, 개발, 자연훼손, 국가의 강력한 통제, 경직된
윤리도덕 등으로부터 이제는 좀 벗어나서 노자가 말하는 친자연적인, 친환경적인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2500년전에 유가와의 경쟁에서 밀린 마이너 사상인 노장의 사상이 이제는
현대에 있어 더욱 더 적합하고 꼭 필요한 사상이라고 강조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덕(德), 인(仁), 성(省) 등을 강조한 유교의 사상이 결코 모자라거나
문제가 있는 사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물처럼 흐르는 자연스러움, 자연을 보존
하고 자연의 가치를 늘 가까이 하는 노장 사상이 더 우세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두 사상이 조화가 이루어질 때 진정으로 균형잡힌
아름다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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