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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Mar 12. 2021

<객관적인 역사는 가능할까>

“하루 10분 인문학 – 하루 한 줄, 인문학에게 나를 묻는다”

<객관적인 역사는 가능할까>
“하루 10분 인문학 – 하루 한 줄, 인문학에게 나를 묻는다”

                                                해 헌 (海軒)

오늘은 인문학의 상징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문제를 바탕으로 플라톤을 비롯한
동서양의 현자들의 철학과 사상 등을 통해 인문학 이야기를 풀어보는 책을 한번
더 보려고 합니다.

공동저자 중 한 명인 이준형은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이코노믹리뷰>에서
<숨은 철학 찾기>라는 칼럼을 연재하였고 현재는 유투브채널 및 온라인 강의,
출판까지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작가입니다.
또 지일주 작가는 서울예술대학 연극과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공연
영상학과에 재학중이며 다수의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하고, IQ156 멘사 회원이기도
하며 tvN <문제적 남자>에 출연해 ‘뇌섹남’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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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란

역사는 자주 뜨거운 감자가 되는 이슈 중 하나입니다. 특히 일제강점기를 거친 우리나라는
일본과 과거 청산 문제를 두고 자주 부딪쳐왔는데요, 독도를 둘러싼 오랜 영토 분쟁은 물론
이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투쟁 역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역사는 원래 동양에서는 사(史)라고 불렀고 서양에서는 그리스어 히스토리아(historia)에서
이후 영어의 히스토리(history)로 변형되었습니다. 근대 이후 일본은 이 ‘history’를
‘역사’로 번역해 사용했는데요, 한국과 중국이 이를 그대로 차용하면서 동아시아에서 역사
라는 단어가 일반화됩니다.

일반적으로 역사라는 단어는 두 가지 의미로 쓰입니다. 하나는 ‘과거에 있었던 일’이라는
뜻이고 또 다른 하나는 ‘과거의 사건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뜻이죠.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에게 주어진 질문인 ‘객관적인 역사는 가능할까’에서 ‘역사’는 후자에 가까워
보입니다. 다시 말해 ‘역사학이라는 학문이 객관성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사학이란 무엇일까요? 역사학은 지금이나 미래가 아닌 과거의 시간과 공간
에서 벌어진 일을 연구하는 학문을 말합니다. 과거의 사람들은 무슨 일을 했으며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어떤 사건이 벌어졌으며 어떻게 해결했는지 등을 살펴보는 것이죠.
더 간단히 말하면 과거 행위의 총체를 파악하려는 학문이 바로 역사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으로 역사를 살펴보고 연구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사료,史料’가
존재하기 때문에 다양한 연구가 가능합니다. 건축이나 도구 같은 물질을 살펴볼 수도
있고 그 시대를 경험한 사람들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또 기록을 연구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기록 연구는 특히 역사가들이 주목하는 방법
인데요, 오랜 세월을 거치며 과장되거나 삭제되어 불완전해질 수 있는 구전과 달리
정보가 변형될 위험이 적기 때문이죠. 역사 왜곡은 기록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생기기도 하지만 기록 자체가 어느 한쪽에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즉 사실과 다르게
작성되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 동양과 서양의 역사

동양의 역사 서술은 중국 최초의 국가로 알려지는 하(夏)나라와 은(殷)나라에서 시작되
었습니다. 당시에는 사(史)라는 명칭을 가진 관리가 존재했다고 알려지는데요, 이들의
역할은 기록을 남기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와 은을 이은 주(周)나라 이후부터
통치자의 말과 행동은 물론 당대에 발생한 천재지변까지도 폭넓게 기록되기 시작합니다.
사(史)는 춘추전국시대 철학자인 공자와 전한 시대 역사가인 사마천(BC145-86?)에 이르러 ‘과거의
사건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학문’이라는 의미로 확장됩니다. 사마천이 지은 <사기>는
동양 역사서의 근간으로 평가받고 있죠.

반면 서양의 역사 서술은 그리스의 헤로도토스(BC484-425)로부터 시작합니다. 키케로는
헤로도토스를 ‘역사의 아버지’라 부르기도 했는데요. 그는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을
기록한 책을 쓰고 여기에 <역사>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스어로 역사를 뜻하는
‘historia’는 연구를 뜻하는 그리스어 ‘이스토리아’에서 유래한 말로 ‘과거에 관한 탐구와
그 서술’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사건에 대한 해석과
비판, 교훈 등을 포괄적으로 다룬다는 뜻입니다. <사기>와 <역사>를 통해 생각해보면
동서양의 역사 모두 사건 기록 차원을 넘어 이를 평가하고 비판하면서 나름의 교훈을
찾아갔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 근대 이후 역사학

근대 이후 역사학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이와 함께 사람들은 고민에
빠졌는데요, ‘도대체 역사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그것이었습니다.
얼핏 단순해 보이는 질문이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논쟁거리가 담겨 있습니다.
특히 역사학을 ‘과거에 벌어진 사실 자체를 인식하는 것’으로 볼 것인지,
‘과거의 사실을 토대로 역사가가 이를 조사하고 연구해 주관적으로 재구성한 것’
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역사학자들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였죠.

만약 역사학의 정의가 전자와 같다면 이는 ‘역사적 사건 자체를 탐구하는 객관적
사실(事實) 연구’에 해당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사실로서의 역사’라고 부르죠.
대표적으로 독일의 역사가인 레오폴드 폰 랑케(1795-1886)는 원래의 역사적 자료에
충실하면서 사료의 개념을 편견이나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서술해야 하며 역사가는 그 사실을 알리는 역할만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후자의 입장을 따른다면 ‘사실 자체가 아닌 선택된 과거의 사실이 중요하다’고
보는 입장이 될 텐데요, ‘기록으로서의 역사’라고 불리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영국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1892-1982)는 역사의 주관적 재구성을 강조한 대표적
학자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며 역사가는 자신의 생각으로 자신의
사실을 만든다.’고 했죠.

이제 다시 한 번 질문을 살펴보도록 하죠. ‘객관적인 역사는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역사학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으로 바꿔본다면 어떤 질문이 될 수 있을까요?
아마도 ‘사실로서의 역사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이런 역사나 역사학은 가능할까요? 만약 그렇다면 또는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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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루 10분 인문학"의 두 번째 시간으로 <역사>라는 주제를 가지고 담론을
펼쳐보았습니다.  먼저 저자는 역사의 용어부터 살펴보는데, 동양에서는 사(史)라고
불렀고, 서양에서는 그리스어 히스토리아(historia)에서 영어의 히스토리(history)가
나왔다고 하지요.

역사는 두 가지 정의로 나뉘는데, 첫번째는 '과거에 일어난 일'을 의미하고 두번째는
'과거의 사건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일만 역사라고 한다면 오늘 논의하고자 하는 객관적인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도 성립하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는 단순히 그 시기에 일어난 사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비판
과 평가가 함께 하여야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영국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며 역사가는 자신의 생각으로 자신의
사실을 만든다.’고 했고요.
역사를 'If' 라는 전제를 붙이면 수많은 경우가 수가 발생할 것이라 현재와는 전혀
다른 역사물이 생겨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역사를 살펴 볼때 눈여겨 봐야 할 점은 어느 한쪽만의 관점으로 역사가 쓰여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농경민과 유목민의 끊임 없는 대립이 이어졌던
아시아 북쪽 평원의 역사는 문자를 가졌던 농경민에 의해서 기록이 되었기에
일방적 관점만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전쟁이 일어나서 승자가 되면 그 승자의 입장에서 역사를 기록하게 되고
패자는 말이 없게 됩니다.

이러하기에 역사는 기록으로서의 역사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역사가들의
주관적 재구성이 필요하기도 한 것이지요. 그게 가능해야 현재와 과거의 소통과
대화를 통해 에드워드 카가 설파한 주장이 완전해집니다.
또한 이를 통해서 주관적임을 벗어나기 힘들지만, 나름의 '객관적' 역사의 서술이
가능해지지 않나 생각합니다.

오늘도 평안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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