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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Sep 10. 2016

<하루 한시(漢詩)>

<하루 한시(漢詩)>

              강 일 송

오늘을 한시(漢詩)에 대한 책을 한 번 보겠습니다.

한자로 된 시라고 해서 중국의 문학이 아니라, 한시는 삼국시대 이후로 구한말
까지 우리 민족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우리의 문학이었다고 합니다.
수십만 편이 넘어 양적으로 단연 고전문학의 으뜸이지만, 한시를 읽은 사람은
드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시는 고상한 문학작품이 아니라 일상의 기록이었는데,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인생의 낭만, 불우한 인생에 대한 고민, 사회 부조리에
대한 비판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단연 으뜸은 일상의 한순간에서 얻은 빛나는 깨달음인데, 시대가
흘러도 이러한 깨달음은 여전히 가치를 지닌다고 합니다.
세월이 흘러도 인간과 사회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몇 편 골라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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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함 세계
           유언술 (1703-1773)

세상은 원래부터 결함투성이
인생이 어찌 어긋나지 않으랴


1741년 3월, 유언술은 친구 세 사람과 함께 개성 여행을 떠났다. 유언술의 친척 형
인 유언철은 마침 개성에서 멀지 않은 파주의 사또로 재직 중이었기에 여행에 동참
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유언철은 무슨 사정이 있는지 끝내 오지 않았다.   신나는 여행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하지만 유언술은 덤덤했다.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세상은 원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고 계획한 일은 늘 어긋나기 마련이라는 것을.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불교에서는 결함세계라고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결함투성이 세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어쨌든 이 결함세계에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다.  결함투성이 세상에서 모든 일이 뜻대로 되기를 바랄 수는 없다.

착한 사람이 복을 받는 것도 아니고, 노력하는 사람이 반드시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니다.
악한 사람이 복을 받기도 하고, 노력이라곤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엄청난 보상을
받기도 한다.   부당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도 한번쯤은 결함투성이의 세상에서 덕을 본 일이 있지 않은가.
뜻밖의 행운, 노력없이 이룬 성취, 이 모두가 결함세계 덕택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결함투성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인생의 굴곡에서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저절로 깨닫게 될 것이다.

“원래 세상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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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맛 나는 인생
마음을 알아주는 데 있다

한나라 은혜는 앝고 오랑캐 은혜는 깊으니
인생의 낙은 서로 마음 알아주는 것
                왕안석(1021-1086)

한(漢)나라 원제때 궁녀였던 왕소군,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 위엔 점 하나가 크게 
찍힌다. 궁정화가 모연수는 금품을 받은 궁녀는 아름답게 그림을 그려주고 그렇지 않은
궁녀는 아름답지 못하게 그렸다. 
흉노의 공격에 궁녀를 보내야했던 황제는 그림을 보고 왕소군을 흉노의 호한야선우에게
보낸다.  후대 사람들의 마음속엔 왕소군은 마치 지켜주지 못한 누이와 같은 아련함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송대(宋代)의 문인 왕안석은 그녀의 진심을 다르게 생각했다. 한 황실은 그녀를
교활한 화가에게서 지켜주지 못했지만 호한야선우는 왕비로서 극진한 예우를 해주지 
않았던가.  결국 인생의 낙이란 것은 서로를 알아주는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왕안석의 눈에 포착된 왕소군과 호한야선우의 진심이다.

인생을 살며 가장 “살맛 난다” 느낄 때가 언제인가 생각해 본다. 시인은 이것을 상지심
(相知心) 이라 명쾌하게 말한다. 서로 알아주는 마음. 
참으로 단순하면서도 익숙한 이 말은 사회와 개인, 혹은 사회와 사회 등에서 교감하고
소통하는 존재들이 느끼는 만족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연인들의 사랑을 유지시키고, 부모 자식간의 세대를 초월한 이해를 돕는 데 이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두보는 출정하는 병사들의 호기로움보다 그들의 두려움과 가족들의 통곡에 귀를 기울였다.
이는 분명 상지심이다. 다산이 한가한 농어촌 풍경의 행간에서 민중의 질곡을 읽어낸 
동력도 역시 상지심이다.
인생의 즐거움은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데 있다는 이 말은 일종의 주문이며
위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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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붉을 홍” 한 글자만 가지고
눈에 띄는 온갖 꽃을 말하지 말라
꽃술도 많고 적음 있는 법이니
세심하게 하나하나 살펴들 보라
             박제가(1750-1805)

박제가는 양반 가문의 서자로 태어나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으나, 서얼 출신이라
는 제약 때문에 출세하지 못했다.  그런 그의 삶에 있어서 새로운 돌파구는 중국체험,
곧 청나라 연행(燕行)이었다.   서얼이라는 두 글자를 이름 앞에 다는 순간 사람에 대한
평가가 뒤바뀌곤 하던 조선과 달리 청나라의 많은 문사들은 박제가의 인품과 학식만으로
그를 평가했다.  넓은 세상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와 그들의 인정은 박제가를
트인 시야와 국제적 안목을 가진 지식인으로 자리할 수 있게 하였다.

이 시는 박제가가 고갯마루 위에 핀 꽃을 보면서 지은 것이다.
“붉다”라는 개념 하나만을 가지고 세상의 모든 꽃들을 표현하는 사람들에게 “자세히 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다. 200여년을 사이에 두고 나태주의 시와 박제가의 시는 
하나로 통한다.

“꽃이 붉다”는 선입견은 붉지 않은 꽃을 외면하게 한다. 꽃 하나에도 꽃술이 훤히 보이는
꽃, 깊숙이 숨어있는 꽃이 있고 꽃술 자체가 없는 꽃도 있다. 이렇게 꽃 하나도 천태만상
인데 하물며 사람이야.

사물의 설명서, 사양 정도를 지칭하는 스페시피케이션(specification)이 언젠가부터 사람을
대상으로 삼고는 “스펙”이라는 신어로 재탄생했다.
학벌, 학점,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을 지칭하는 “취업 5대스펙”이 만들어졌고, 봉사활동,
인턴 경험, 수상 경력까지 더해진 “취업 8대스펙”도 공공연하다.
이렇게 대상의 일반화, 규격화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박제가는 말한다.

“세심하게 하나하나 살펴들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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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시(漢詩) 수십 편이 실린 책에서 3편 정도를 개인적으로 추려서 옮겨 보았
습니다.  평소에 접하기도 쉽지 않고, 고리타분한 양반들의 놀음이라 치부되기 쉬운
한시이지만 일상에 담긴 번뜩이는 지혜를 엿보고 나니 새롭게 보입니다.

어차피 세상은 결함투성이라 때로 뜻대로 되지 않고 어긋나는 일이 많아도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을 첫 번째 시를 읽고 얻게 됩니다.  늘 되는 일이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에게 뜻밖의 행운이나 이익을 살면서 보게 된 것도 결함투성이 세상이기 
때문이라는 역설도 이야기합니다.

두 번째 시에서는 한나라의 미인인 왕소군이 흉노의 선우에게 바쳐져서, 처음엔
불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한나라 황실보다 흉노의 선우에게서
극진한 사랑을 받으면서 세간의 생각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 거라는 시인의 글을
보았습니다.
나를 알아주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인생을 살면서 가장 큰 복 중
하나이지 싶습니다.
또한 반대로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된다면 내 주위의 사람들이
큰 복을 받은 사람들이 될 수 있겠지요?

세 번째 시에서는 편견이나 선입견이라는 안경을 벗어던지고, 하나하나 자세히
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세상의 스펙에 대한 비판도 예리한데요, 규격화된 스펙보다
사람 그 자체를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키우는 법을 알아야겠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마지막 나태주 시인의 글이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하루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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