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종 시선집(詩選集)
<섬> 정현종 시선집(詩選集)
강 일 송
오늘은 시집 한 권을 보려고 합니다.
정현종 시인(1939~)의 시선집입니다. 시인은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했고,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뒤, 첫 시집 “사물의 꿈” 이후
“나는 별아저씨”,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한 꽃송이” 등등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연세대 국문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한국문학작가상, 현대문학상, 만해문학대상,
이산문학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시인의 시 몇 편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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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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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섬”입니다.
짧은 시지만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어 강하게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시라고 하겠습니다. 가장 많이 읊여지는 시라고도 하지요.
인간은 누구나 혼자일 수밖에 없고, 고독한 섬 같은 존재입니다.
다가가고 싶어도 쉽게 닿을 수 없는.
시인은 그 섬에 가고 싶다 라고 하면서 타인과 소통하고 연결되고
싶다는 의지를 표현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이미 각 존재는 섬이 아니겠지요.
다가가고 싶을수록 혼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의 한계는 더욱 더
선명해집니다.
다음 시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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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부
도토리나무에서 도토리가
툭 떨어져 굴러간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도토리나무 안부가 궁금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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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엄마생각이 나지 않으세요?
도토리가 어느 정도 장성하여 새로운 세상으로 툭 하고
떨어져 나아갑니다.
시인은 순간 뒤를 돌아봅니다.
엄마 도토리나무의 표정과 심정이 가슴에 밀려듭니다.
시인은 이 짧은 시에
작은 도토리 하나에서 찰나의 감성을 자아냅니다.
시란 모름지기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동질감과 감정의 재현감, 동시성을
가지게 합니다.
이래야 시라고 할 수 있겠지요?
갑자기 내 도토리 생각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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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그래 살아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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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험난합니다.
세상은 나를 쓰러뜨릴 일을 늘 도모합니다.
시인은 우리에게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가르쳐줍니다.
둥글어라고 합니다. 마치 공처럼
둥글둥글 살라고 합니다.
또한 공처럼 탱탱한 탄력을 유지하라고 합니다.
늘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는 탱탱한 공처럼.
이 시집이 1984년에 출간되었으니 30년이 넘었군요.
시인은 지금에야 경영학에서 나오는 <회복탄력성> 이론을
어떻게 30년 전에 먼저 알고 표현했을까요.
다음 시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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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복
산에서 내려와서
아파트촌 벤치에 앉아
한 조각 남아 있는 육포 안주로
맥주 한 병을 마시고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아 행복하다!
나도 모르겠다
불행 중 다행일지
행복감은 늘 기습적으로
밑도 끝도 없이 와서
그 순간은
우주를 온통 한 깃털로 피어나게 하면서
그 순간은
시간의 궁핍을 치유하는 것이다.
시간의 기나긴 고통을
잡다한 욕망이 낳은 괴로움들을
완화하는 건 어떤 순간인데
그 순간 속에는 요컨대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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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대한 책이 서점에 가면 참 많습니다.
책을 보고 보아도 늘 행복은 아리송합니다.
시인은 막 등산을 하고 내려오는 참인가 봅니다.
금방 등산을 하고 난 뒤, 먹는 소박한 안주에
맥주 한 병.
지하철을 타러 가는 순간 행복감이 밀려왔나 봅니다.
이렇게 기습한 행복감은
온 우주를 깃털처럼 가볍게 만들면서
세상사의 무거움을 털어버리게 합니다.
힘든 세상사를 안고 있는 시간들을
그 시간조차 없애버리는 행복감을
시인은 한 순간 느끼고 있습니다.
행복은
소소하게 자주 느껴야 한다고 합니다.
일상의 작은 것 하나하나에서
행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