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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Aug 26. 2016

<하버드 고전수업, 역사 ❷> 윌리엄 앨런 닐슨

-- 열린 인문학 강의 中

오늘은 하버드 고전수업 역사 이야기 2편을 해보려고 합니다. 서양문명의 시작인 메소포타미아, 이집트를 간단히 언급하고 바로 그리스부터 로마의 몰락까지 1편에서 이야기되었습니다.


오늘 이어서 로마의 몰락 이후 서양의 역사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의 몰락 이후 지중해 연안은 혼돈의 시대에 접어듭니다. 빠르게 북아프리카에 진출한 이슬람 세력은 스페인 지역까지 접수를 하였고, 마치 동양의 왜구와 같이 끊임없이 지중해 일대를 침략합니다. 이후 봉건제가 자리를 잡으며 어느 정도 유럽의 사회는 안정을 찾고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이어집니다.


한 번 보시겠습니다.







◉ 이슬람의 발흥


7세기에는 새롭고 훨씬 더 끔찍한 참화의 폭풍이 몰려왔습니다. 무함마드는 이슬람을 창조하고 일으켜 세웠으며 아랍 정복이라는 거대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무함마드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벌써 콘스탄티노플의 성문을 두드렸고, 남부 해안을 따라 거침없이 서쪽을 향해 나갔습니다. 그들은 스페인으로 방향을 틀어 서고트 왕국을 파괴한 후 피레네 산맥을 넘었으며, 갈리아의 중심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멈춰 섰습니다.


732년, 샤를 마르텔이 이끄는 프랑크 사람들이 투르에서 이슬람 사람들을 격퇴했는데, 아마도 이 승리가 기독교 세계를 구했을 것입니다. 만일 이 전투를 이슬람이 이겼다면 역사가 바뀌었을 것입니다. 샤를 마르텔의 후손들은 군주국을 세웠는데, 800년에 프랑크족의 지배자들 중 가장 위대한 샤를마뉴는 성베드로 성당에서 교황으로부터 서로마제국의 왕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재앙이 가까이 있었고 그들의 북쪽 바다에는 대담한 해적들의 배들이 출몰하기 시작합니다.



◉ 봉건제

약 2백 년에 걸쳐 유럽은 극도로 비참한 시대를 경험했습니다. 북서쪽에서는 덴마크인과 스칸디나비아인이, 남쪽에서는 사라센인이 유럽을 유린했던 까닭에 풍요로운 튜턴 문명을 간직한 라인 강과 다뉴브 강 상류만이 피해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봉건제가 등장해 쇠락하는 문명을 강화하고 안정시키지 않았다면 무한정 대혼란으로 치달았을 것입니다.


무력은 오직 무력으로만 제대로 막아낼 수 있었으며, 위협을 당하는 곳마다 지역적으로 무력 저항이 일어났습니다. 남자들은 공동체를 보호했으며, 그 대가로 일정한 편익을 얻었습니다. 머지않아 그들은 성을 짓고 영지와 권력을 상속자들에게 물려주기 시작했지요. 영주는 군역을 비롯한 다른 이익을 조건으로 다른 영주와 관계를 맺었습니다. 교회가 이 선례를 따랐고 11세기경 마침내 하나의 보편적 공식이 서유럽에 안착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의 계급에 속했고, 상층 계급에 다양한 편익을 제공하면서 일정한 권리를 누렸으며, 이 계급 사다리의 맨 위는 황제나 교황이었습니다.


이 시기의 봉건제가 거둔 최고의 성과는 보다 안정적으로 상황을 복구하고 북쪽과 남쪽의 해적질을 끝낸 것이었습니다. 이제 유럽은 시칠리아부터 스코틀랜드까지 작은 군사적 공국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덩어리였습니다. 이탈리아와 독일, 네덜란드에 거대한 교역 도시들이 생겨나 도시의 패권을 둘러싸고 시민들과 봉건 세도가들 사이에 격렬한 투쟁도 벌여집니다.


한편 교회는 교황 그레고리오 7세의 재위기에 유럽의 봉건적 왕권을 장악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손을 뻗었고 봉건 제국은 교회에 저항을 합니다. 교황파 구엘프와 황제파 기벨린이라는 거대 정파가 생겨나 긴 세월동안 패권 다툼을 벌입니다.



이후에 종교적이고 기사도적이며 경제적인 요소가 합쳐진 십자군 전쟁이 펼쳐집니다. 봉건 군인들이 풍부하게 충원되면서 이교도들이 차지하고 있던 성지를 되찾으려 했던 것입니다. 종교전쟁과 그에 따른 살육으로 깊은 상처를 입게 되었고 결실은 별로 없었습니다. 십자군 덕분에 번창하던 제노바 공국과 베네치아 공국은 대규모 운송과 무역을 하였고, 그러면서 동방과의 무역이 엄청나게 늘어납니다. 서방은 또 한 번 동방을 통해 배우면서, 신앙심은 약해지고 회의주의는 강화되었습니다.



◉ 르네상스


11세기와 12세기에 너무 큰 힘을 소진한 까닭에 교황권은 한동안 힘을 잃었습니다. 교황권을 뒷받침했던 라틴어로 된 사상들은 단테가 1300년에 이탈리아어를 새롭고 창조하고, 그다음 2백 년 사이에 프랑스어와 영어, 독일어가 명확한 형태를 갖추어가면서 빠르게 토대를 잃어갔습니다.


종교 교리를 새로운 언어 양식에 맞추려는 욕구, 특히 자국어로 된 성서를 갖고자 하는 욕구가 생겨났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로마 카톨릭은 신학 연구를 촉진하고 중세대학의 설립을 도왔으나 백약이 무효했습니다. 인도와 아메리카를 발견하기 위한 항해는 처음에는 상상력을 자극했지만 나중에는 야심 찬 정치가와 군인, 예술가의 탐욕스러운 손으로 막대한 양의 황금이 흘러들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수립된 지 1천 년이 넘어서면서 콘스탄티노플은 투르크인의 손에 넘어 갔고, 이 도시가 간직하고 있던 필사본과 예술품, 장인은 이탈리아로 밀려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발명가, 개혁가, 예술가, 혁명가가 되었지요. 체사레 보르자는 이탈리아 제국을 세우려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가톨릭교회에서 독립하여 했고, 결국 성공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인간은 신의 은총으로만 자기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로 인해 유럽은 다시 한번 전쟁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됩니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이 맺어졌고, 대체로 유럽 북부는 프로테스탄트가 되고 남부는 가톨릭으로 남게 되었지요.





오늘은 서양역사의 2편을 보았습니다. 전편에서는 그리스로마 시대에서 시작되어 로마의 멸망까지 보았었지요.  오늘은 연이어 서로마 멸망 이후 이슬람의 발흥, 봉건제의 대두, 르네상스의 발현 등까지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사실 이슬람교는 그 뿌리가 유대교, 기독교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전의 종교는 거의 다 다신교였지만 유일신의 종교로 세 종교는 동일하게 등장합니다. 로마의 지배력이 약해진 후 지중해 연안은 무법천지가 되어버립니다. 북아프리카로 진출한 이슬람세력은 끊임없이 이탈리아와 프랑스 해안지대를 약탈하지요. 약해진 정부는 자국민들을 전혀 보호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봉건제가 등장하면서 어느 정도 사회는 안정이 되어 갑니다.


이후 잃어버린 성지를 탈환한다는 목표아래 십자군전쟁이 이어집니다. 처음의 성스러운 목적과 달리, 전쟁이 이어질수록 십자군이 마을을 약탈하기도 하고, 같은 기독교 국가인 비잔틴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을 침략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말하기를 신앙심은 약해지고 회의주의는 더 강화되었다고 표현하네요.


다음에 일어난 일은 르네상스입니다. 콘스탄티노플이 무너지면서 유입된 엄청난 양의 문화유산이 이탈리아로 들어오면서 르네상스의 바탕이 이루어집니다.  신대륙의 발견, 지동설의 등장, 봉건제의 몰락이 이어집니다.

이후 발생한 중요한 사건은 종교개혁입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에 힘입어 새로운 사상은 널리 퍼지게 되고 민중의 힘을 얻게 됩니다. 라틴어로 되어 독점되어 있던 성경이 자국어로 번역이 되고 로마 카톨릭은 약화되기 시작하였고 구교와 신교의 극심한 갈등이 있은 후 유럽은 다시 안정되게 됩니다.


다음 기회에 3편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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