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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Aug 27. 2016

<말하지 않는 세계사>❶ 최성락

-- 1789년 대흉년이 없었다면 프랑스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오늘은 세계사에 대한 책 중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시각이 아닌 다른 방면의 프레임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책을 한 번 보려고 합니다. 역사는 역사관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성격의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습니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지식도 어느 정도는 분명히 우리를 이끌고 있는 사관에 의해 겅도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오늘 책의 저자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역사를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온 바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은 그중 프랑스혁명과 관련된 내용을 한번 보겠습니다.







조선은 영조, 정조 때 중흥기를 맞는다. 그 까닭은 영조와 정조가 영민했기 때문이다. 영조는 탕평책을 쓰면서 중흥책을 마련했고, 정조도 각종 개혁을 하면서 사회의 발전을 꾀했다. 하지만 정조의 개혁정치는 기득권자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곧 사회의 혼란이 발생했고, 정조는 병으로 죽고 만다. 정조가 죽은 뒤 소위 세도정치가 시작된다. 19세기부터 삼정의 문란이 본격화되었고, 1811년에는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다. 이후에도 삼남(충청도,전라도,경상도)에서 민란이 계속 발생하여 혼란기가 이어진다.


조선에서 18세기인 영조, 정조 때 성공적으로 정치가 이루어지다가 18세기 말부터 개혁에 실패하고, 19세기에는 민란이 발생하는 등 사회가 혼란스러웠다. 우리는 이것을 세도정치 등 정치적 문제였던 것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18세기 초에 중흥기를 이루었던 것은 조선만이 아니다. 중국도 이 당시가 중흥기였다. 청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황제였다고 하는 강희제,옹정제, 건륭제가 재위한 시기가 바로 18세기 초이다. 그리고 건륭제 말기부터 사회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한다. 18세기 말, 백련교도의 난이 일어나고 이후 19세기부터 청나라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유럽도 18세기 초까지는 전성기를 이루다가 18세기 말부터 혼란에 빠진다. ‘태양왕’이라 불리는 루이 14세가 활동한 시기도 18세기 초다. 루이 14세의 치적을 루이 15세가 물려받으면서 유럽은 전성기를 이룬다. 그리고 루이 16세의 통치 시기인 18세기 말에는 혼란이 발생하고, 결국 1789년에는 프랑스혁명이 일어난다. 이런 유럽의 혁명은 19세기 초까지 이어진다. 1830년 7월 혁명, 1848년 2월 혁명 등 전 유럽에서 민중들이 끊임없이 들고 일어나는 혁명이 이어진다.


동양사회와 서양사회는 모두 같은 시기에 중흥기를 이루었다. 이렇게 같은 시기에 위대한 왕들이 나와서 중흥기를 이끌었다는 것은 단지 우연일까? 그리고 두 사회는 18세기 말부터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각종 개혁 정책이 실패했고 폭동이 일어났다.


현대과학은 과거의 날씨가 어땠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몇백 년 전, 몇천 년 전에 지구의 온도가 어땠는지 알아낼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나무의 나이테를 확인하는 것이다. 더 오랜 시간의 지구 온도를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얼음이다.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지구의 연도별 평균온도, 심지어 계절별 온도까지 추정하는 자료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지구의 온도 자료를 보면 16세기 말부터 지구 온도가 크게 상승하기 시작한다. 이 온도 상승은 18세기 중반까지 이어진다. 그러다가 18세기 말에는 온도가 하강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20세기 중반부터 지구 온도는 급속도로 상승한다. 지구의 온도는 항상 오르락내리락 했다. 지구의 온도변화가 세계 각지에 영향을 미쳤다. 산업 혁명 이전에는 전 세계가 모두 농사를 짓고 살았다. 날씨가 좋으면 경제가 성장했고, 추워서 농사가 잘 안되면 경제가 어려워졌다.


온도가 상승하면 똑같이 농사를 짓는데도 산출량이 많아져서 농부의 소득이 늘어나고 사회 전체의 소득도 증가한다. 이 당시 왕의 자리에 앉아 있었던 왕은 모두 중흥을 이끈 왕이 되었다. 하지만 18세기 말이 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구의 평균 온도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온도 하강 추세가 백년 정도 지속된다. 농가의 소득도 감소하고 국내 총생산량이 하락하고 경제가 쇠퇴되었다. 국민들의 실질 소득이 떨어지자 불만이 늘어났다.


그 당시에도 기후 때문에 우리가 못살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정치를 잘 못해서 못 살게 된 것이고, 양반과 귀족처럼 잘사는 사람들이 제 욕심만 채워서 국민들이 못살게 된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동양, 서양 할 것 없이 민란, 혁명이 발생한다.


특히 1789년 프랑스혁명이 발생하기 전에 프랑스의 대흉년은 유명하다. 1788년 프랑스의 봄은 매우 건조하고, 여름에는 우박이 내리고 폭풍이 몰아쳤다. 그해 밀 수확량은 이십 퍼센트 이상 감소했다. 이는 국내 총생산이 이십 퍼센트 하락한 것이다. 밀이 부족하자 빵 값이 폭등했다. 1789년 3월부터 이미 지방에서는 폭동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공식적인 프랑스 혁명은 파리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파괴한 1789년 7월 14일부터 시작된다. 그 원인으로 프랑스의 재정 적자, 귀족의 횡포, 시민계급의 성장 등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18세기 말부터 계속 이어지는 기온 하강으로 인한 흉년이 아니었다면, 특히 1788년 대흉년이 아니었다면 근대 역사를 바꾼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농업에 의해 인류가 살아가던 근대 이전에는 날씨가 정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역대 왕조의 성군과 폭군의 구별, 정치 개혁의 성공과 실패는 실제 그 당시 기후가 좋았는지 나빴는지에 따라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오늘은 세계사를 좀 다른 시각으로, 다른 관점에서 보고 있는 책 한 권을 보았습니다.  역사의 한 사건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져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 내용에서도 프랑스 혁명이 일반적인 발생 원인이 아닌 당시 기후 조건에 의한 대흉년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가정을 하고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과거의 날씨를 알수 있게 되어 날씨를 변수로 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졌습니다.


조선의 영,정조 시대의 중흥, 청나라 강건성세의 시대, 프랑스의 루이 14세 시대의 부흥 등, 때마침 거의 같은 시기에 대륙을 달리한 나라들이 모두 전성기를 달립니다. 그러다가 약속이나 한듯이 함께 민란, 혁명 등을 겪으며 가라앉게 됩니다.  여기에서 저자는 이 당시 기후의 변화에 집중합니다.


기후가 따뜻하여 수확량이 많아지면 온 나라가 잘 살게 되지요. GNP가 올라가고 성장 시기에는 국가나 사회의 문제가 덮여지게 됩니다. 그러다가 기후의 변화로 수확량이 줄고 흉년이 반복되면 GNP가 감소하면서, 먹고 살기 힘들어지면 마음의 여유도 없어지고 사회적 구조적 문제점들이 일거에 수면위로 상승합니다.


물론 역사의 사건이 하나의 요인에 의해서만 일어나지는 않는다고 초입에 말씀드렸지요.  여러 가지 팩터들이 어우러져 상황이 성숙되었을 때, 큰 사건이 발생한다고 생각됩니다.  그중 아주 중요한 요인이 기후인 것입니다.


역사는 이렇게 다양한 관점과 다양한 요소들을 대입해 봄으로써 아주 색다르고 재미있는 고찰이 가능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서서히 뜨거웠던 대지가 식기 시작하고 가장 무더웠던 여름도 살짝 꺾이는 느낌이 듭니다.

행복한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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