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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Aug 25. 2016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설민석

오늘은 대한민국에 한국사 붐을 일게 한 장본인, 대세의 스타강사인 설민석(1970~)이 최근 집필한 조선왕조실록을 보고자 합니다. 이 책도 발간되어 현재 3주 연속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역사 중 한국사는 대중의 관심을 받아온 적이 별로 없었던 분야입니다. 하지만 능력있는 스타강사 한 명이 전체적인 흐름을 바꾸었네요. 역사를 설명하는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귀에 쏙쏙 들어올 뿐 아니라 그에게 몰입되어 이야기속으로 끌려 들어갑니다.


오늘은 그중 한 임금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바로 “숙종”입니다. 스타강사의 구어체의 쉬운 설명, 재밌는 예화 등을 통해 보겠습니다. 한번 보시지요.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대한민국이 선택한 역사 이야기, 설민석 지음, 세계사.



[제19대 숙종] 휘; 이 순(李淳), 1661-1720

-- 장자 프리미엄의 끝판왕, 금수저 호랑이


조선의 제19대 임금, 숙종! 우리나라 사극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왕일 것입니다. 숙종과 그의 여인들인 인현황후와 장희빈의 이야기는 조선 최고의 스캔들이자 사극의 단골소재니깐요. 그런데 우리에게 친근한 숙종이 조선 최고의 금수저라는 건 알고 있나요? ‘왕이니까 당연히 금수저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같은 왕이라도 엄마가 흙수저인 경우도 있고, 세자 출신이 아닌 경우도 있잖아요. 하지만 숙종은 조선의 왕 중에서도 ‘순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임금이었답니다.


숙종의 아버지 현종은 아내가 한 명뿐이었던 임금입니다. 그러니 숙종에게는 이복동생이 있을리 없지요. 게다가 그는 1남 3녀 중의 아들, 외아들이었어요. 즉 현종의 유일한 아들이자 장남이었던 거지요. 1661년에 출생한 숙종은 6세(1667)에 세자에 책봉되고 14세의 나이로 아버지 현종의 뒤를 이어 왕위애 오릅니다. 모든 게 순조로웠지요.


숙종은 효종-현종-숙종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외아들이었고 46년동안 재위에 있어 조선에서 2번째로 긴 재위기간을 가지고 있답니다. 게다가 어머니 명성왕후 김씨는 세자빈-왕후-왕대비라는 3관왕 코스를 밟은 유일한 왕비였어요. 어머니 명성왕후는 한 성격하는 인물이었어요. 아니 왕이 얼마나 아내가 무서웠으면 단 한 명의 후궁도 들이지 않았을까요? 보통 20세 이전에 왕위에 오르면 왕실의 여자 어른(어머니, 혹은 할머니)이 수렴첨정을 하는데, 숙종은 수렴청정을 하지 않고 바로 직접 정치를 합니다. 그리고 잔뼈가 굵은 고단수의 신하들을 자기 뜻대로 주무르기 시작해요.


◉ 불같은 성격의 숙종 - 아버지와는 다르게


숙종은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어요. 온몸에 화증이 가득했고, 성격도 아주 괴팍했어요. 어머니인 명성왕후조차 이렇게 한탄할 정도였다니까요. “내가 낳은 아들이지만, 성질이 아침,점심,저녁 모두 다르니 애미인 나도 감당이 안 되는구나.“


사실 숙종의 아버지 현종은 성품이 부드러웠답니다. 아내인 명성왕후는 성격이 불같긴 했지요. 아마 숙종은 어머니의 성향을 닮았나봅니다. 현종은 안으로는 부인의 바가지에 시달리고 밖으로는 서인과 남인으로 갈린 신하들이 서로 으르렁대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 정치 고수 송시열을 누른 젊은 임금


순금수저 배경 덕분에 숙종은 어릴 때부터 자신감이 넘쳤어요. 숙종이 왕위에 오른 1674년 제 2차 예송이 있었던 해인데 상복 입는 기간으로 여당인 서인과 야당인 남인 사이에 다투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서인은 숙종의 할아버지인 효종을 왕으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거지요. 숙종은 서인의 영수인 송시열이 예를 잘못 해석했다고 주장하며 귀양을 보냅니다. 송시열이 누구냐하면 숙종의 증조할아버지인 인조대부터 인조-효종-현종-숙종 까지 4대에 걸친 서인의 영수이자 원로입니다. 그런데 왕이 된지 1년도 안 된 소년 군주가 정치 원로를 귀양 보내버린 거에요.


◉ 조선 최고의 스캔들


숙종의 첫 번째 왕비인 인경왕후가 20세에 천연두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681년 서인 민유중의 딸인 인현왕후가 궁에 들어와요. 하지만 아이가 없었어요. 이때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조선 최고의 미녀인 장희빈(장옥정)입니다. 장희빈은 숙종보다 2살 많은 연상녀였지요. 그녀는 조선왕조실록마저 인정한 절세미녀였습니다. 장희빈은 역관 집안의 딸로서 신분은 중인이었습니다. 5촌 당숙 장현은 당대 유명한 역관으로 청나라와의 관계를 통해 많은 부를 쌓은 인물이었지요. 장현은 권세를 갖고 싶었기에 조카인 장희빈을 궁궐로 보냅니다. 장희빈은 아름다운 미모와 함께 남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습니다.


숙종은 14세에 왕위에 올랐고 13년 동안 아들을 얻지 못했는데, 이 와중에 내 사랑 옥정이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은 겁니다. 숙종이 얼마나 기뻤을까요? 태어난 지 두달 밖에 안 된 아들을 원자로 삼겠다고 선언합니다. 이때 송시열이 이를 반대하자 노발대발하여 83세의 송시열을 제주도로 귀양 보내고 결국 사약을 내렸습니다. 이때 서인들은 줄줄이 귀양가고 남인 세력이 복직합니다. 이것이 “기사환국”입니다. 이로 인해 인현왕후는 폐비가 되어 궁궐 밖으로 쫓겨나고 장희빈이 중전이 되지요.


◉ 갑술환국과 장희빈의 최후


궁궐에서 쫓겨난 인현왕후는 친정집이었던 안국동에 거주하게 됩니다. 임금이 계신 창덕궁을 늘 바라보면서 살지요. 여기서 새로운 숙종의 여인이 등장하니 무수리 최씨입니다. 무수리는 궁궐의 최하층 천민이에요. 궁녀들의 옷을 빨아주는 일을 하였지요. 하지만 무수리 최씨는 숙종의 환심을 사서 아들을 낳고 숙빈이 됩니다. 이때 낳은 아들이 연잉군, 훗날 조선의 21대 임금이 되는 영조입니다. 이렇게 숙종의 마음은 서서히 장희빈에게서 멀어지고 있었고 이것을 눈치챈 서인들은 재빨리 인현왕후 복위 운동을 하여 다시 왕비의 자리에 오르니 이것이 바로 갑술환국입니다. 자연히 장희빈은 왕비에서 내려와 다시 후궁 희빈이 되었구요.


하지만, 장희빈은 물러나지 않습니다. 숙종의 총애를 되찾기 위해 인현왕후의 죽음을 바라는 저주를 내렸는데, 마침 인현왕후는 시름시름 앓더니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결국 장희빈이 저주를 한 것이 밝혀져 세자의 어미이기는 하나 사약을 내리게 됩니다. 장희빈의 죽음은 그녀를 소재로 한 사극의 백미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장희빈의 최후는 악녀 이미지를 바탕으로 극적인 요소를 위해 각색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조선왕조실록을 스타강사인 설민석의 설명으로 들어 보았습니다. 그중 가장 극적인 요소를 많이 품어서 사극에 단골로 출연을 한 숙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숙종은 금수저 중의 금수저였군요.  친동생이나 이복동생이 없어서 자기 왕위를 위협할 존재가 없었고, 이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타고난 불같은 성격으로 일찍부터 왕권을 강화합니다.  연상의 장희빈을 만나 수많은 야사를 만들어 내고 여야가 바뀌는 환국이 연이어 나타납니다.  할아버지뻘의 정치 고수이자 집권 여당의 당수인 송시열을 어린 왕이 귀양도 보내고 사약도 내립니다. 엄청난 배짱이지요. 당파싸움을 줄이기 위해 나름의 탕평책도 시행하였지만
큰 효과를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궐안의 가장 천민인 무수리 최씨를 통해 훗날 영조인 연잉군을 낳게 되고 그로 인해, 영,정조 시대의 중흥이 일어나게 됩니다.


참으로 역사는 사소한 사건들이 모여 큰 줄기를 형성해가고 새로운 역사가 창출이 됩니다.  역사에서 가정(If)을 대입하면 수많은 경우의 수가 등장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숙종이 무수리 최씨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면, 영조가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가 익히 아는 사도세자의 이야기, 정조의 탄생이 없었겠지요. 그러면 우리의 조선 역사가 어떻게 흘러 갔을지 예측이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역사의 재미는 스스로 If 를 넣어서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 보는 것도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어체로 최신 감각으로 재미나게 풀어쓴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한 번 일독을 권유해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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