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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Sep 17. 2016

<자본주의의 기원은 무엇인가>

---“시사에 훤해지는 역사” 中


<자본주의의 기원은 무엇인가>  남경태
---“시사에 훤해지는 역사” 中

                                            강 일 송

오늘은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해보겠습니다.
이전에 올렸던 “시사에 훤해지는 역사” 내용 중 한 파트의 내용인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가장 주요 관심사인 “경제”를 알려면 그 본질인 자본주의와
금융에 대한 이야기를 빠뜨릴 순 없겠지요.

저자는 역사를 통해서 사회 전반의 넓은 분야를 깊이 있게 다루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입니다. 그리고 그의 글은 폭넓고 깊이 있지만 재미도 놓치지 않습니다.

한 번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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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란 무엇일까?
이론적으로 복잡하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상식적으로 간단하게 정의해보자.
일단 물건을 싸게 만들어서 비싸게, 이윤을 얹어 파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또한 물건을 싼 곳에서 사서 비싼 곳에 가져다 파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이를 개념어로 말하면 앞의 것은 “산업 자본주의”이고 뒤의 것은 “상업 자본주의”
이다.  또 직종으로 말하면 앞의 것은 “제조업”이고, 뒤의 것은 “유통업”이다.

그런데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런 논리는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왜일까? 자본주의가 시작되기 전에도 고대에 목수가 의자를 만들어 팔 때도
이윤이 있었고, 소금장수가 산지에서 소금을 가져다 도시에 팔 때도 마진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시대를 자본주의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더 따져 들어가 보자. 상품의 제조와 유통은 자본주의의 현상일 뿐
자본주의의 본질은 아니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바로 <금융>에 있다.
이 점은 금융의 역사를 보면 알기 쉽다.  금융은 사실 18세기에 출범한 자본주의
보다 역사가 오래다.  그러므로 금융은 자본주의의 기원이 된다.
금융이 싹튼 것은 수백 년 전인 15세기였다.  

15세기에 이베리아 반도는 역사적 전환점을 맞고 있었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있는 이 지역은 8세기부터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다. 800년 동안이나 레콘키스타를
벌인 끝에 이베리아는 드디어 1492년 봄, 아랍 세력을 아프리카로 완전히 몰아
내는 데 성공했다.   이를 기념해 에스파냐 여왕 이사벨은 이탈리아 출신 선원
콜럼버스에게 대서양 항해에 필요한 지원을 약속했고, 바로 그해 가을 콜럼버스
가 “본의 아니게”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다.

바둑에서 불리하면 묘수를 내야한다. 이슬람의 지배를 받다가 막내로 편입한
이베리아는 서유럽 국가들에 한참 뒤졌다고 판단하고 역전을 위한 승부수를
띄우기로 한다.
먼저 치고 나간 것은 포르투갈이다.  15세기 초, 포르투갈 왕자 엔리케는
사재를 털어 아프리카 서해안을 남하하는 항로 개발에 주력했다.
지중해를 통한 동방무역은 북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엔리케는 아프리카 서단의 베르데 곶과 대서양 항해의 기점인 아조레스 제도
를 개척해 신항로 개발의 토대를 닦았다.

그는 결과를 보지 못하고 죽었으나, 결국 1488년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발견했고, 다시 10년 뒤 드디어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에 가는 데 성공했다.
이제 이탈리아의 무역 독점은 포르투갈이라는 새내기에 의해 무너졌다.
게다가 아프리카에서 얻은 노예와 상아는 항로 개척의 짭짤한 부산물이었다.

향료 무역은 배 여섯 척을 보내 다섯 척이 난파하고 한 척만 돌아와도 떼돈을
벌 정도로 수익성이 좋았다. 말 그대로 “벤처 사업”이었다.
오늘날의 벤처는 목숨을 걸지는 않지만 초창기의 벤처는 실제로 목숨을 걸어야
했다. 바로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맹아가 탄생한다.

서양 문명의 두 가지 결실은 정치적으로 <의회민주주의>이고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다.  싫든 좋든 이 두 가지가 유럽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퍼진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서양의 경우
그 두 가지가 발달한 과정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수백 년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향료선단을 보내려면 엄청난 비용이 드는 사업이었다. 왕이나 부호들은 몰라도
중소 상인들은 자연스럽게 몇 명이 모여 돈을 모아 공동으로 투자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창업투자”의 원조다.

서로 투자액을 모으고 그 몫만큼 증서를 발행했다. 장거리 무역인 만큼 금방
수익이 나지는 않았고 여러 가지 변수가 있을 수 있었다. 투자자가 그 전에
급전이 필요할 수도 있었고, 도중에 사망할 수도 있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투자증서를 매매하거나 자식에게 상속시킬 수 있어야 했다.
여기서 “증권”이라는 제도가 생겨났다.

또한 워낙 위험성이 큰 사업이라 또 다른 제도가 만들어졌다. 심한 풍랑이나
암초를 만나 선단이 몽땅 침몰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래서 무역 선단이
출발하기 전에 일정한 금액을 내면 난파할 경우 투자금을 돌려주겠다는
아이디어가 등장한다. 이것이 바로 “보험”이다.
(보험의 원조가 해상보험인 것은 이 대항해시대에 뿌리를 두었기 때문이다.)

증권과 보험같은 자본주의적 장치의 기원은 거기에 있었다. 은행도 마찬
가지다. 은행은 그보다 조금 먼저 북이탈리아에서 생겼는데, 정부에서
제도로 시행한 게 아니라 민간에서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은
증권이나 보험과 똑같다.
베네치아, 제노바, 피사 등 북이탈리아 항구 도시에서 지중해 무역에 뛰어
들자, 일부 상인들은 무역에서 손을 떼고 동료 상인들의 돈을 관리해 주는
역할을 담당했는데, 이것이 “은행”의 기원이다.

이렇듯 벤처, 창업투자, 증권, 보험, 은행 등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시스템은
서구에서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모든 제도가 정부의 시행령이나 개인의 치밀한 계획으로 고안된 게 아니라
그때그때의 필요성에 의해 탄생하고 숙성되었다.  바로 그것이 오랜
왕조시대를 거치면서 늘 지배층의 의식적인 계획으로 국가 중대사가 결정
되어온 동양 사회와 크게 다른 점이다.

물론 동양 사회의 제도와 관습도 유구한 전통과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서양과
비교해 열등하다고 할 수 없다. 다만 문제는 지금 우리가 서양에서 유래한
제도, 특히, 정치적 의회민주주의와 경제적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양의 경우와 달리 오랜 역사에 걸쳐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숙성
되어온 게 아니라 외부의 제도가 단기간에 이식된 것이다.

우리의 자본주의는 길게 잡아야 일제 강점기부터이고, 우리의 의회민주주의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렇게 연혁이 짧은 만큼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다. 1897년 한성은행이 최초의 은행으로 설립된 지
수십 년이 지나도록 사람들은 “내 피붙이도 없는 은행에 어떻게 돈을 맡기냐”
며 장롱 속의 돈궤를 버리지 않았다.

자본주의의 제도를 바깥에서 따 쓰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금융이 발달하는 데는
역사적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 과정이 생략된 데다 자본주의라고는 산업,상업
자본주의 밖에 알지 못하는 정권이 국가 주도형 발전 전략을 구사한 탓에
지금까지도 우리는 천민자본주의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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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역사 중에서 “자본주의”와 “금융”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서양에서 먼저 시작된, 자본주의가 어떤 식으로 싹을 틔워 현재까지 이어져
왔는지 저자는 알기 쉽게 설명해 줍니다.

벤처와 창업투자, 증권, 보험, 은행 등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생겨났는지
이베리아 반도의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대항해와 신대륙 발견 등을 예를 들어
풀어 줍니다.
저자는 수백 년에 걸쳐서 자연스럽게 민간 주도로 필요에 의해 생겨나고
시행착오를 무수히 거치면서 안착되어 온 자본주의의 여러 분야가 완전
다른 문화의 우리 땅에 들어오면서 많은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동양사회가 왕조시대로 국가의 지배층에 의해 의식적인 계획으로
모든 사업이 진행되었다고 설명하는 것은 의미의 과도한 확장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사람 사는 사회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비슷합니다.
동양이라고 해서 민간 부문의 상업이나 산업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동양사회가 과연 모든사업이 지배층의 의식적인 계획으로만
진행이 되었을까요?  
또한 국가 주도형의 강한 동력 없이, 민간의 주도만으로 현재 우리가
이 정도의 자본주의의 단계와 풍요로움을 누릴 수 없었겠지요.

저자의 말처럼 국가 주도형 발전 과정으로 우리가 천민 자본주의가 되었다
기보다는, 자본주의나 민주주의가 서양에서 발아하였기에 우리나라에서
현지화하고 우리 실정에 맞게끔 적응과 변용이 필요한 데, 그것이 이루어질
시간이 부족하였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점으로 생각이 됩니다.

단순히 민간주도형만이 최선은 아니고, 국가 주도형과 민간
주도형의 두 가지 갈래의 방법이 서로 받쳐주고 조화를 이루어야 가장
이상적인 사회발전과 경제발전이 가능한 것이 아닌가 말씀 드리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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