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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Sep 19. 2016

<처음 읽는 로마사>

모토무라 료지

<처음 읽는 로마사> 모토무라 료지


                        강 일 송


오늘은 로마이야기를 한 번 해보겠습니다.


“로마의 역사에는 인류의 모든 경험이 들어있다.”라고 저자는 서두에서

말합니다.   이탈리아 반도의 조그만 도시국가가 지중해를 차지하더니

거대한 제국이 됩니다.


‘팍스 로마나’를 구가했던 로마, 천 이백년을 유지하다가 사라져 갔지만

아직까지도 수많은 이야기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그들로 인해 유럽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책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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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황제는 빵과 서커스를 제공했을까?


18세기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이 “인류 역사상 가장 행복했던 시대”라고

지목한 때가 바로 팍스 로마나의 황금기로 불리는 로마 오현제 시대

입니다.


오현제란 능력 있는 양자가 황위를 계승하게 하여 로마 제국에 최대의

영토와 번영, 평화를 가져다준 다섯 명의 어진 황제를 총칭하는

말입니다.


선제(善帝) 네르바(96~98)

지고(至高)한 황제 트라야누스(98~117)

영제(英帝) 하드리아누스(117~138)

자비로운 황제 안토니우스 피우스(138~161)

철인(哲人)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61~180)


그들이 다스렸던 85년간이야말로 많은 사람들이 로마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풍요롭고 활기 넘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죽음에서 오현제에 이르기까지 대략

80년 동안 로마는 평온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세 명의 나쁜 황제

즉 삼악제 시대를 경험했습니다.


어리석은 황제 칼리굴라(37~41)

폭군 네로(54~68)

악한 황제 도미티아누스(81~96)


세 명의 나쁜 황제도 처음부터 악행을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재위 초기에는 선정을 베풀다가 돌변하여 마구잡이로 주위 사람들을

처형하고 선거권을 가진 시민들에게 볼거리나 오락 등을 제공하면서

국가 재정이 파탄나게 됩니다.


이들 황제는 후에 원로원에 의해서 공식 기록에서 이름을 말살하는

‘기억의 단죄’에 처해집니다.   하지만 그들을 ‘악’으로 재단한 것은

어디까지나 원로원이지 시민은 아니었습니다.


세 명의 황제는 시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화려한 오락, 즉

전차경주나 검투사 시합 등의 볼거리를 제공했습니다.

그 당시 로마시민들은 나라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곡물에 의지하여

게으름을 피우고 구경거리 오락만 낙으로 삼으며 정치에 흥미를

잃고 지냈다합니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서커스’는 곡예가 아닙니다. 전차 경주에 사용

된 타원형 코스를 의미하는 ‘키르쿠스(circus)를 영어식으로 읽은

것입니다.


로마는 기원전 146년 숙적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후 무서운 기세로

세계 제국으로 성장해갔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커지고 풍요로워지자

빈부의 격차도 확대되었습니다.  로마시에는 수많은 무산시민이

유입되었습니다.


곡물의 제공은 힘있는 원로원 귀족들이 값싼 곡물을 제공하는 것에서

시작하였고, ‘표’를 갖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아챈 농민들은 더

좋은 대우를 해주는 쪽을 지지하게 됩니다. 그 결과 서로 경쟁이

되면서 마지막에는 곡물을 무료로 나누어주게 됩니다.


그렇다면 빵과 서커스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중시되었을까요?

세 사람의 악한 황제가 하나같이 화려한 볼거리를 원형 경기장에서

개최한 데서도 알 수가 있듯이 그것은 바로 서커스였습니다.

빵은 개인의 욕구를 만족시키지만 무료함을 느끼는 시민들에게

오락을 제공하는 서커스는 집단으로서의 인간을 만족시킵니다.


다양한 서커스(볼거리) 중에서 로마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매료시킨

것이 검투사 시합이었습니다.  이 시합은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공인된 ‘살인 경기’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고대인이라 해도 마치 투우처럼 사람끼리 싸우게 만들어 이를

볼거리로 삼는다는 것은 감각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러한 감각의 경계를 넘어서게 하였을까요?


한 자기 분명한 것은 ‘노예는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 감각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전쟁포로나 대역죄를 저지른 사람은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검투사 시합이 한창 성행시에는 시합에서 이긴 강한 자가 지금의 스타와

같은 대우를 받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자유민 가운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은 자원해서 검투사 경기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노예는 시합을 해도 보수를 받을 수 없지만, 자유민은 대전료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나오듯이 코모두스 황제가 직접 검투사로

나서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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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로마에서 황제들이 시민들에게 왜 빵과 서커스를 제공했을까

하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보았습니다.


특히 나쁜 세 명의 황제 시기에 더욱 이러한 일들이 성행한 것을

본다면, 자기의 악행이나 잘못된 정치적인 일들을 무마하고 시민들의

인심을 얻기 위해서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곡물과

집단으로서의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서커스를 제공한 것입니다.


이 시기 로마시민들은 일하지 않고 놀고 먹는 부류가 많았습니다.

제국의 팽창과 더불어, 식민지에서 오는 막대한 부와 노예들이 있어

로마시민들은 서커스를 즐기고 대형 목욕탕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시간이 차면 계절이 바뀌고, 달도 차면 점차 작아지듯이, 대제국의

번영과 영화도 점차 빛을 잃어 갑니다.

쾌락은 점점 더 강한 자극으로 인간을 이끌어 갑니다.

정상적인 노동과 경제활동 없이 국가에서 모든 것을 제공하고 오락에

만 집중했던 로마는 필연적으로 스러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대제국 내에서 전쟁, 홍수, 기아 등으로 로마는 점점 더 힘을 잃어

갔고, 특히 만연된 전염병의 유행으로 나라는 피폐해집니다.

설상가상으로 용병으로 치부되었던 게르만족이 로마를 침입해 들어와

결국 게르만용병 황제까지 등장합니다.


현재 세계의 넘버원인 미국과 로마를 비교하는 일이 많습니다.

모든 것이 다 같을 순 없지만, 이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규칙과

원칙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합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법칙 중 가장 정확한 것은 “모든 것은 변한다”

라는 것이겠지요.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스스로 절제를 잃어버린 로마시민들은 향후 이민족들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고 몰락합니다.


오늘은 로마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았습니다.

역사는 늘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스스로를 경계하여

살피고, 도가 지나치지 않게 자기를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

한가를 생각해 보면서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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