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rying + Laughing
오늘은 “감정”에 대한 책을 한 권 보겠습니다.
먼저 책 제목을 살펴보면, 두 가지 단어의 합성 단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 Crying + Laughing , 즉 울음과 웃음, 슬픔과 기쁨의 감정을 한데 묶어놓은 합성어이네요. 슬픔과 기쁨은 반대되는 감정같지만 사실은 하나의 세트로 움직인다고 합니다. 우리가 감동을 받으면 울다가 웃고 그러지 않습니까?
오늘 저자인 강동화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에서 신경과에서 전공의, 전임의를 마치고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리서치 펠로우, 하버드 의대 매사추세츠종합병웜에서 방문교수를 하였고 현재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로 재직 중인 의사입니다. 또 다른 저자인 박현찬은 서울대학교에서 문학과 언어학,철학을 공부하고 서강대학교에서 인공지능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미국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에서 IT기업가 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스트리로직의 대표로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은 예전에 비해 확실히 윤택하고 편리해졌지만, 살아가는 속사정은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일고여덟은 ‘회사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회사 밖에서는 활기차 있다가도 출근만 하면 무기력해지는 증상이다. 과도한 업무와 불편한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이다.
비단 직장인들만 그런게 아니라, 성적 최고주의에 몰려있는 중고교생들, 심각한 취업난에 불안한 청춘들, 가정을 내조하느라 정작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주부들, 은퇴 후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노년들도 그러하다.
사람들이 욕망하는 삶의 모습과 실제로 살고 있는 현실에는 항상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그 차이가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면 스트레스는 감내할 만 하고 기쁨이나 즐거움 같은 긍정적 감정이 생기겠지만, 그 격차가 너무 커서 도저히 극복할 수 없다고 한다면 슬픔이나 분노와 같은 부정적 감정이 생기고 스트레스도 견디기 힘들어진다.
지난 7-8년 동안 온라인 공간에 표출된 한국인의 감정 중 가장 높은 빈도수를 차지한 감정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었다. 현실의 나와 이상의 나 사이의 틈은 벌어지고 그 틈을 메우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갈등과 충돌은 일상이 되고, 억울함과 좌절감, 무기력감 등의 부정적 정서들이 뇌속에 쌓여간다. 그리하여 어느새 슬픔, 불안, 분노 두려움, 혐오와 같은 부정적 감정들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우울감이 현대인의 삶을 지배할수록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더욱 안간힘을 쓴다. 과연 행복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은 흔히 행복을 즐겁고 기쁜 감정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행복해지기 위해 부정적인 감정들을 최대한 억누르고 기쁨과 즐거움과 같은 착한 감정만을 좇는 우리는 ‘착한 감정 콤플렉스’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을 의도적으로 억누르고 긍정적인 감정에 대해 편향적으로 집착하여 얻는 행복은 ‘왜곡된 행복’일 뿐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오래전부터 사람의 감정에 대하여 깊은 연구가 있어왔다. 서구심리학과는 다르지만 감정을 체계를 칠정(七情)이라 하여, 희(기쁨). 노(분노), 애(슬픔), 구(두려움), 애(사랑), 오(미움), 욕(욕망)으로 표현하며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잘 다루고 온전히 느낌으로써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동아시아 유학 전통에서 행복을 다룬 담론의 으뜸은 <중용>이다. 중용이라는 가치는 양극단의 산술적 평균이나 어설픈 중간 상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중용 1장에서는 중화의 미덕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기뻐하고 성내고 슬프거나 즐거워하는 감정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을 ‘중(中)’이라 하고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을 ‘화(和)’라고 한다."
중용은 감정을 긍정적인 감정이나 부정적인 감정으로 나누어 차별하지 않는다. 오히려 슬프고 화나는 감정들까지 포함하여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고, 제때에 알맞게 느끼고 드러내는 데서 진정한 행복이 온다고 한다. 슬프고 화나고 두려운 정서에도 제각각 행복을 위한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뇌과학의 놀라운 발달로 생각과 감정, 행동의 메커니즘이 밝혀지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감정에 관한 뇌과학의 최근 연구 결과들은 중용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유학의 감정론에 맞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슬픔은 행복과는 정반대의 상태같아서 뇌 활동도 뚜렷이 다를 것 같지만 슬픔과 행복의 뇌 활동은 놀랍게도 아주 닮아 있다. 행복할 때나 슬플 때나 활성화되는 뇌 부위는 시상과 전전두엽으로 두 경우가 비슷했다.
또한 슬플 때는 전전두엽이 활성화되는데, 우울증의 경우에는 전전두엽의 활동이 멈추고 오히려 슬픔의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한다 한다. 슬픔의 뇌는 우울한 뇌보다 행복한 뇌와 훨씬 더 가깝다. 미움과 사랑의 뇌도 서로 닮아 있다고 한다. 우울증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 찬 상태가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이 제대로 분출되지 못해 생기는 것이다
슬픔, 기쁨, 분노, 두려움, 미움, 사랑, 욕망, 이 일곱 감정들은 마치 형형색색 무지개처럼 저마다 자기 색을 뽐내며 우리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 서로 다른 감정은 서로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슬픔이 없는 기쁨, 미움이 없는 사랑, 두려움이 없는 용기는 제대로 존재할 수가 없다. 감정의 기복이 너무 커서 불안정한 것도 문제지만, 한 가지 감정에만 빠져있는 것도 건강한 상태는 아니다.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은 함께 짝을 이루며 서로를 통해 더 완전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감정이 고양되면 흔히 울다가 웃다가, 웃다가 울다가도 한다.
우리의 마음은 긍정적 감정들과 부정적 감정들이 서로 대립하면서도, 다른 차원에서는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시스템으로 공존하게 되어 있다. 마치 심장박동에서 수축과 이완이 생명을 지속하는 하나의 리듬을 구성하듯이 기쁨과 슬픔도 하나의 세트로서 우리의 삶을 움직이게 하는 기본 감정이다.
감동적인 공연은 관객들을 울렸다 웃겼다 들었다 놓았다 쥐락펴락한다. 우리는 울다 웃고 웃다 우는 순환 속에서 응어리가 풀리고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쾌감은 울음과 웃음의 교차점에서 더 크게 오는 법이다. 슬플 때 목놓아 울 수 있고 기쁠 때 크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또 잘 웃어야 잘 울 수 있고, 잘 울어야 잘 웃을 수 있다. 행복은 그 속에 있다.
우리의 마음은 한쪽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반대되는 감정들이 역동적으로 함께 살아 움직일 때 한층 더 큰 에너지를 갖게 된다. 생각해보면 기쁘거나 슬픈 모든 감정들이 우리에게 살아가는 에너지가 되고 곤경을 이겨내는 힘을 준다. 무엇보다도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을 느낀다는 자체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징표다.
오늘 살펴본 책은 울다와 웃다의 합성어인 크래핑이란 제목의 책이었습니다. 슬픔과 기쁨은 한 세트로 묶여져 있고, 실제로 뇌과학의 견지에서 보아도 두 감정이 활성화되는 뇌부위가 거의 같다고 합니다. 슬픔의 뇌와 기쁨의 뇌는 거의 같지만 우울의 뇌는 감정이 말라버린 상태라 슬픔도 느끼지 못한다고 하지요.
현대인의 감기라 할 정도로 빈번한 우울증은 현대인들을 누르고 있습니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 학교생활이나 학원에서 받는 스트레스, 가정의 집안일, 경제적 상황으로 받는 스트레스 등으로 잠시도 편안할 날이 없는 것이 우리네 삶입니다.
저자는 막연하게 부정적인 감정을 누르고 긍정적인 감정만 부각하는 방식으로는 진정한 해결이 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동양사상에서 조언하는대로 슬프고 외롭고 두려운 부정적인 감정들도 그들의 역할이 있기에,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발산하라고 합니다. 억지로 누를 때 오히려 더욱 우리 감정의 밭은 황폐해지는 것이지요.
특히 중용에서 나온대로,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을 ‘화(和)’라고 한다" 라는 표현은 참으로 현대 정신의학에서 보아도 적절하다고 보입니다. 슬플 때 크게 울고, 화날 때 적절하게 화를 낼 수 있는 사람이 기쁠 때 제대로 웃을 수 있고 행복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약간의 부담감과 함께 시작할 월요일 아침. 중용에서 알려준 내용처럼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현실을 벤틸레이션 잘 하여 건강한 마음밭을 가꾸는 한 주가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