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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Sep 13. 2016

<사람, 장소, 환대>

김 현 경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강 일 송

오늘은 사람, 장소, 환대 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사회에서 어떻게 사람이
사람으로 인정되며, 사회적 성원으로 받아들여지는지, 철학적 고찰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저자는 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을 공부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사회과학고등
연구원에서 ‘역사와 문명’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에 돌아와
서울대, 연세대, 덕성여대 등에서 인류학을 가르쳤습니다.

오늘은 그 중 “사람”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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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보이지 않는 공동체 - 도덕적 공동체 - 안에서 
성원권을 갖는다는 뜻이다.  즉 사람임은 일종의 자격이며, 타인의 인정
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사람과 인간의 다른 점이다.

이 두 단어는 종종 혼용되지만, 그 외연과 내포가 결코 같지 않다. 
인간이라는 것은 자연적 사실의 문제이지, 사회적 인정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개체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회”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며, 그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 태아
태아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인간의 태아는 분명히 인간이지만, 사회
안에 들어오지 않았기에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이는 법적으로나
관습적으로나 그러하다.  법은 인간 생명이 출생과 더불어 사람의 지위를
얻는다고 명시한다. 

출생이란 태아가 어머니의 자궁 바깥으로 나와서 모체와 분리되는 것을
말한다.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출생과 사회적 환대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었고, 그 기간 동안 아기는 아직 사람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었다.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는다든가 배내옷을 입히는 것 등은 아기가
이 세상에 들어오지 못하고 문지방 단계에 있음을 표시한다.

이 기간이 끝나면 통과의례(세례, 백일잔치)를 거쳐 사회의 일원, 즉 
사람이 되는데, 그 전에 죽을 경우 태아와 마찬가지로 장례식을 치르지
않고 매장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아기기 태어나는 것과 즉시 국가가 개입한다.
아기는 출생과 동시에 사람으로 인지되며, 사람으로서 보호된다.
말하자면 출생이라는 사건이 통과의례를 대신하는 것이다. 
이전의 문지방 단계는 사라지며, 과거의 의례들은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다. 

여전히 백일이나 세례 같은 의식들이 중시되지만, 가족적 행사로서
그러할 뿐 통과의례로서 그러한 것은 아니다.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사실 태아와 신생아 사이에 어떤 불연속성
도 존재하지 않기에 “낙태는 살인이다” 같은 구호가 나오기도 한다.

◉ 노예
통과의례는 의례를 통과한 집단과 아직 통과하지 못한 집단을 갈라놓는
게 아니라, 의례를 거치는 집단과 거치지 않는 집단을 갈라놓는다.
노예는 일생동안 사회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비유하자면 태아의
상태로 머무르기 때문이다.  노예는 한번도 태어나지 않은 것과 마찬가
지이다. 그런 까닭에 죽었을 때도 아무런 의례를 거치지 않고 다만
그 장소에서 치워진다.

노예가 사회 바깥에 있다는 것은, 노예의 대다수가 실제로 포로로 잡히
거나 납치되어 고향과 친족을 잃어버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노예는 그가 원래 있었던 사회에서 보면 실종자이다. 실종자는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법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간주된다. 

노예는 온전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얼굴을 가질 수 없고, 온전한 이름을
가질 수 없으며,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노예에게 얼굴이 없다는 것은 그에게 지켜야 할 체면 또는 명예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노예는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노예는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사회 안에 들어와 있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눈앞에 동등한 사람으로서 현상하지 않는다.

◉ 군인
다음 예는 전쟁터의 병사이다.  현대전에서 병사는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다.
이는 전시에 적군을 죽이는 것이 인권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인권담론은 전쟁에 관해서만큼은 예외를 인정한다. 이것이 개입하는 것은
군대가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을 공격했을 때처럼, 전쟁의 규칙을 위반했
을 경우에 한한다. 하지만 군인에게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전장을
벗어날 권리가 없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군인은 예외이다.

무기를 버린 적이 더 이상 적이 아닌 이유는 전쟁의 주체가 개인이 아닌
국가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인간 대 인간의 관계가 아니라 국가 대 국가
의 관계이고, 전쟁에서 개인이 적이 되는 것은 우발적이며, 이 때 개인은
인간도 아니고 심지어 시민도 아니며 단순한 병사일 뿐이다.

병사가 되는 순간 개인은 시민권의 정지를 경험한다. 그는 헌법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예외지대로 들어가며, 형법이 아닌 군법에 의해 처벌받는다.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두 국가는 각각 인구의 일정 부분을 차출하여 사람의
지위를 빼앗고, 총알이나 포탄과 같은 소모품으로 만들어 버린다.

사실 군인이 적에 의해 죽는 것은 이미 자기 편에 의해서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존재로, 아니 어떤 의미로 이미 죽어 있는 존재로 강등되었기
때문이다. 

현대전이 총체전을 띠는 것은 명예의 관념이 사라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전근대 비유럽 사회의 전쟁들, 특히 소규모 부족 간의 전쟁들은 전사들의
명예가 중시되고, 전투가 의식화된 양상을 보였다. 따라서 전쟁이 의식화
되었기에 인명 손실이 적었다.  상대에게 겁을 주어 신의 힘이 자기편에
있다는 것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서구열강이 비유럽 세계를 손쉽게 식민지화 할 수 있었던 것은
총포의 힘도 있겠지만, 전쟁에 대한 사고방식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한다.
유럽인들의 특징은 더럽게 싸우고(즉 의식을 지키면서 싸우지 않고),
더 나쁜 것은 죽이기 위해 싸운다는 것이다.

인디언들은 백인들의 대포가 아무런 극적 요소 없이 전사나 민간인이나
그냥 죽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드라마틱한 싸움에 익숙해 있던 인디언들은
그들이 보기에는 전투가 아니라 학살에 가까운 유럽인들의 폭력 앞에서
패배를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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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글을 보다 보면, 김춘수시인의 “꽃” 이 떠오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누군가가 이름을 불러 준 이후부터 비로소 그는 사회의 일원이 된다고 
합니다. 이름을 불러 준 후 장소를 제공해야 성원권을 가지게 됩니다.
태아, 노예, 군인의 예를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이 세 가지 분류의 사람은
사람이 아닙니다. 인간이지만 사람이 아닌 존재.

출생과 함께 비로소 국가가 인정하는 사람이 되는 태아는 이전에는 백일이나
세례를 받기 전에는 이름도 없고 아직 사람으로 보호받지 못했습니다.
또한 영아사망률이 높았을 때는, 일부러 출생신고도 늦게 합니다. 언제 생명을
다할지 모르니, 미리 신고했다가 취소하는 수고를 덜려고 한 것이지요.

노예는 이름도 없고 얼굴도 없기에 체면도 없고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라는 것이 강하게 어필되네요. 군인도 이미 시민권의 정지와 함께 죽어있는 상
태로 강등되어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이구요.

인간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이 모인 사회에서는 사람으로서 늘 인정받기 위한 인정투쟁이 연속된다고
합니다. 생존을 하는게 최우선 목표이고, 이게 이루어지면 다음 단계로
인정받고 더 나은 사회적 위치를 추구합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면서 불러주고, 서로에게 의미 
있는 꽃처럼, 진정한 자존의 사람으로 우뚝 서서 조화롭게 어울리면서 
살아가는 그런 사회였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에 이번 책의 진정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시를 좀 더 보면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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