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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Sep 07. 2016

<엄살과 공갈의 문화>

읽고 싶은 이어령 中

<엄살과 공갈의 문화>   이어령

-- 읽고 싶은 이어령 中


                         강 일 송


오늘은 지난 번 “한국어로 본 한국인”에 이어, 어어령박사의 두 번째 글을 한

번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어령박사는 고령임에도 왕성한 지적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모르는 한국인의 내면을 읽어내는 오늘 글도 그의 탁월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엄살과 공갈의 문화를 가지고 우리 사회를 들여다 보고 그만의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글입니다.


한 번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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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살 문화의 명암


보통 우리가 나쁜 뜻으로 쓰고 있는 말들이라 할지라도 자세히 뜯어보면 그

속에는 밝은 빛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령 ‘엄살’이라는 말을 생각해보자.  자기의 약점이나 고통을 감추지 않고

남에게 과장해 보이는 것이니 그것을 좋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미국인도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호소하여 상대방의 양보를 받아내려는 행동

심리를 “피타(PITA)의 원리”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피타의 원리가 잘 통하지 않고 역효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우는 아이 젖 준다’는 한국 사회에서는 ‘엄살’이 통하지

않는다 해도 심한 역습을 당하는 일은 아주 드물다.


옛날 우리 선비들의 편지를 보면, 첫줄부터가 심한 엄살로 시작되는 일이

많다.  자기 자신을 으레 ‘초야에 병들어 늙어가는 몸’이라고 표현하는

상투어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약자가 구사하는 백기전술같은 내용은 관점을 바꾸어 본다면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짐승들이 이빨과 발톱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아프리카에서는 ‘엄살’이라는 것이

없다.  엄살이 통하지 않는 사회는 바로 이 동물의 사회, 밀림의 비정한

사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엄살은 서로가 상대를 정이 있는 ‘인간’으로 믿고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엄살이 가장 잘 통하는 것은 어린아이와 부모 사이다.  힘의 논리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애정이 있기 때문에 효용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남녀 사이에도 효력이 있다.

만일 사랑하는 남녀가 숲 속을 거닐 때 송충이가 떨어졌는데, 현명한 여인

이라면 아마 혼자 있을 때보다 몇 배나 커다란 소리로 비명을 지를 것이다.

이 엄살은 당신의 사랑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살이 통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회의 인간관계가 깊은 정을 기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숲에서 늑대를 만났을 때 엄살을

부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고 보면 인간의 이상사회는 엄살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엄살이

큰 힘으로 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성취될 수 있다는 역설이 성립된다.


◉ 현대 사회와 “공갈”

엄살과 정반대되는 것이 ‘공갈’이다.

속된 말로 겁주는 일이다. 남에게 약한 점을 드러내 동정을 얻어내는 방법

과는 다르게 위협은 자기의 힘을 과시하여 동의를 강요하는 전술이다.


여성과 남성의 의상을 관찰해보자.  복식연구가들은 여성의 옷이 조금씩은

‘엄살의 미학’을 도입한 것이라고 풀이한다.  여성의 옷은 옷감부터가 섬세

하고 부드럽다.  금세 찢어질 것 같은 얇은 그 깁은 보기에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보는 사람의 심리에도 가냘픈 생각이 들게 하고 보호본능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성들의 옷은 전쟁터가 아니라도 조금씩은 갑옷을 닮은 데가 있다

는 것이다. 우선 그 넥타이를 보자면, 짐승들에게 있어 제일 약점이 되는

것은 목이다. 철갑같은 악어라 할지라도 목은 부드럽다. 말하자면 동물의

급소는 바로 목이기 때문에 대개의 짐승들은 싸울 때 목털을 세운다.

남성들은 목을 감추기 위해 칼라를 세우고 단추로 잔뜩 잠근다.

어깨에 힘준다는 말이 있듯이, 남성의 옷은 또한 어깨를 되도록 넒게 보이

려고 애써왔다.  솜뭉치를 넣기도 하고 심지를 박아 넣기도 했다.


“엄살의 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는 남성들의 복식이라 해도 목을 드러내

놓는 것이었다. 지금도 한복을 보면 유난히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이 그

목이다.  우리의 한복은 남성 것이라 해도 결코 공격적인 상징성을 담고

있지는 않는다.


의상 하나만 보더라도 이렇게 ‘엄살’과 ‘위협’의 대립적인 이미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사회가 지금 급변하고 있는 가장

상징적인 국면도 바로 ‘엄살’에서 ‘공갈’로 바뀌어가는 데서 찾아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현대의 우리 사회는 모든 교섭, 모든 설득, 모든 인간관계는  그 감정이

한 옥타브씩 높아져 있으며 그 표현과 행동의 밑바탕에는 공갈과 허세의

가시가 돋쳐 있는 것이다.

매일매일 보고 듣는 그 광고, 선전 하나를 보더라도 그것은 대개가 ‘이

약을 안 사먹으면 당신은 간장병이나 고혈압으로 곧 쓰러져 죽을 것‘

이라는 협박조에 가까운 공갈들이다.

‘엄살’로 살아가는 사회는 결코 행복한 사회라 할 수 없다. 그러나

공갈로 살아가는 사회는 더욱 불행한 사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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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엄살과 공갈의 사회상에 대해서 읽어 보았습니다.

이교수는 예리한 관찰력이 있습니다. 어떻게 엄살과 공갈을 가지고

우리 사회를 이렇게 멋지게 진단하고 분석할 수 있는지.


엄살이 통하는 사회는 여유가 있는 사회이고 인간에 대한 정이 아직도 남아

있는 사회라 합니다.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엄살이 있을 수 없지요.

아이들 진료 때, 유치원 다니는 아이가 유치원 선생님과 진료 왔을 때랑

엄마와 왔을 때는 천양지차입니다.  유치원 선생님과 함께 오면, 아~ 하고

입도 크게 벌리고 울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엄마와 오면, 발길질에 악을 쓰고

우는 경우가 많지요. 거기다 아빠나 할머니까지 같이 동반하면 진료실이 떠나

갑니다.  믿는 구석이 있음을 귀신같이 애들은 압니다.

저자는 엄살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통하는 사회가 이상사회에 가깝

다고 감히 이야기합니다.


반면에 공갈은 정이 없고 메마른, 여유없는 사회를 대변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모든 사회의 구성원들이 감정적으로 한 옥타브씩

올라가 있다고 합니다.

접촉사고에도 원수같이 싸우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한편 복식에서 여성의 옷은 보호본능을 일으키고 남성의 옷은 전투에

임하는 갑옷에 가깝다고 합니다. 가장 급소인 목을 보호하기 위해 칼라를

세우고 넥타이를 맵니다.

하지만 한복에서처럼 우리 선조들은 급소인 목을 보호하기는 커녕

훤하게 드러내는데, 이는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전쟁보다는 평화를

갈구하는 민족이었음을 반증합니다.


엄살보다는 공갈이 많아진 요즘 우리 사회가 보다 여유와 관용,

베품과 배려가 늘어나서 선조들의 그러한 전통이 되살아 났으면

하고 바래보는 하루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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