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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김의 미학(美學)> 이남호

한국적 지혜와 미학의 탐구

by 해헌 서재


<남김의 미학(美學)> 이남호
- 한국적 지혜와 미학의 탐구

강 일 송

오늘은 우리 문화의 특징과 한국미에 대한 책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우리 문화는 동양문화의 일부로 전반적으로 서양문화와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고, 동양문화 중에서도 중국과 일본의 문화와는 또 다른 차이
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저자인 이남호(1956~)는 고려대학교에서 한국문학을 공부했고, 198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가에 당선되어 문학평론가로 오래 활동하였으며
현재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저서로는 <한심한 영혼아>, <녹색을 위한 문학>, <문학에는 무엇이 필요
한가> 등을 비롯한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한번 내용을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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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 풍요롭고 발전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너그럽지 못하고 강퍅하다. 한때 ‘풍요 속의 빈곤’이
문제가 되었지만 지금은 ‘풍요 속의 불행’이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심한 불행과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이것은 쉽게 ‘끝장’
과 ‘막장’의 심리로 나타나기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변에서 ‘끝장’과 ‘막장’이란 말이 자주 들린다.
‘끝장내다’는 상황을 극단적으로 종료시킨다는 것을 나쁘게 이르는 말이다.
또한 최근 막장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끝장 토론이 벌어진다.
막장은 탄광 갱도의 막다른 곳을 이르는 말인데, 비유적으로 아주 잘못
되어 거의 희망이 없는 상황을 뜻한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서 일상적 긴장이 높아지고 사람들의 심성이 거칠어졌음
을 보여주는 징후이다. 사회 곳곳에서 극단적인 태도와 방법으로 자신의
이익을 구하고 주장을 관철하려고 한다. 거친 말들은 거친 세상의 표현
이기도 하다.
막장 드라마는 말과 마음의 폭력물이다. 벌어져서는 안 될 일들이 거침없이
벌어지고 지켜야 할 도리를 쉽게 무시함으로써 사람의 마음에 폭력을
행사한다. 막장까지 간다는 것은 선을 넘어서 인간이기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끝장이나 막장이라는 말은 철저, 악착, 극단, 완벽 등의 단어들과 상관성이
높다. 어떤 면에서 우리 시대는 철저함과 완전함, 효율성의 신화에 갇혀 있다.
이를 위해 맹목적인 질주를 하다 보니 극단과 막장과 끝장이 나날의 삶에서
범람하고 있는 듯하다. 목표를 향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밀어붙이는
저돌성과 악착스러움이 미덕처럼 되었다.
1등만이 살아남는 사회에 모두 동의한 것처럼 보이고 죽기 살기로 1등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일상이 되었다.
극단에 익숙해진 우리는 사랑에서도 완전한 사랑을 꿈꾸고 교육이나 육아, 복지
같은 데서도 끝없이 완벽을 추구하느라 세상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전쟁터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지속되는 한, ‘끝장’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며 있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완벽이나 완전 또한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완벽은 존재하지 않거나 찰나에만
존재한다. 완벽은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며, 도달한 순간 다시 불완전해지기
시작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산 정상에 오른 사람에게는 내려갈 일만 남았
으며, 1등 한 사람에게는 퇴보할 가능성만 남아 있다. 활짝 핀 꽃은 질 일만
남았으며, 아주 잘 익은 참외는 썩기 시작하는 참외이다.
완벽한 균형은 깃털 하나에도 무너져버린다. 극도의 빠름과 효율성을 추구했지만
오히려 더 늦어져 버리는 경우가 많다.
완전함이란 엔트로피가 최고조로 달하여 더 이상 변화가 없는, 죽음의 평정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의 전통적인 삶과 문화는 결코 끝장이나 막장과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한국 문화는 적당히 하는 것에 익숙했으며, 다하는 것보다 남기는
것에 익숙했고, 완전한 것보다 모자라는 것에 익숙했다.
적당히 하고, 어지간히 하고, 완벽에 매달리지 않고, 다하지 않고, 남기는 것은
그동안 잘 주목받지 못했지만 한국 문화의 주요한 특성이라 말할 수 있다.
즉 ‘남김의 미학’이라고 다르게 표현할 수 있겠다.

가령 우리의 전통 이야기 속에는 철저한 복수극이 거의 없다. 철저한 악인도
찾기 힘들다. 비교적 잘 알려진 나쁜 사람은 <춘향전>의 변학도나 <흥보전>의
놀보 같은 인물이다. 이들은 나쁜 짓을 하기는 하나 ‘끝장’에 이르지는 않는다.
춘향전의 결말은 이몽룡과 춘향이가 결혼해서 잘 사는 것일 뿐, 변학도가
어떻게 되었는가에는 관심이 없다. 아마도 변학도는 관직을 박탈당하고 감옥에
갔을 것이다. 흥보전의 많은 판본에서는 놀보는 흥보의 도움을 받아 다시 잘
살게 된다는 것으로 끝이 난다.

적당히 하고 남기려는 태도는 한국 문화 전반에서 나타난다. 아랫사람들을
위해서 음식을 남기며, 날짐승들을 위해 까치밥을 남기고, 잔치가 끝나면
들짐승이나 길짐승을 위해 음식을 밖에다 내어놓기도 한다. 그림을 그릴 때도
모든 것을 다 그리기보다는 그리다 만 것처럼 대충 그린 부분들이 많다.
정원이라는 것도 삶의 공간 한쪽 곁에 자연을 남겨두는 것이지 인공적인
공간을 따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우리 문학의 대표적인 정형시는 시조다. 문화가 발달한 나라들은 여러
종류의 정형시들을 가지고 있으며, 그 형식은 엄격하게 지켜진다.
우리나라 시조는 정형시지만 허술한 정형시이다. 글자 수만 정해져 있는
양식인데 그마저도 허용 범위가 넓어서 형식적 구속력이 상당히 약하다.
심지어 시조창을 할 때 시조의 마지막 구절을 노래하지 않고 남겨둔 채
노래를 끝낸다는 점이다. 가사를 다 부를 필요가 없다는 이 대담하고
자유롭고 여유 있는 발상은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전통적인 생활 속에는 ‘남김’과 관련된 많은 문화가 있다. 물론
이러한 전통은 ‘불철저함’이나 ‘대충대충 함’과 같은 부정적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때때로 끝마무리가 꼼꼼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고, 정성과 책임감이 부족하다는 핀잔을 듣기도 하였다.
이러한 남김의 부정적 측면은 합리적이고 근대적이고 서양적인 관점에서
더욱 강조되어온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대충주의와 같은 태도는
근대적 합리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관점과 쓰임과 문맥을 달리하면 ‘남김’은 오늘날 우리에게 소중한
지혜와 미학이 될 수 있다.

남기는 것은 여유롭고 아름답다. 이제 많이, 자주 남기자. 자식 사랑도
모든 것을 다 바치지 말고 좀 남기고, 할 말도 다 하지 말고 좀 남기고,
미움도 남기고, 욕심도 다 추구하지 말고 남기자. 그린벨트도 남기고,
빈 땅도 다 개발하지 말고 좀 남기고, 1등도 다 갖지 말고 2등뿐만
아니라 꼴찌를 위해서도 좀 남기자. 편리함만 추구하지 말고 불편함도
좀 남겨두고, 오래된 것들도 누추해도 좀 남겨두자. 조금 못하는 일도
남기고, 맛있는 음식도 다 먹지 말고 좀 남기고, 술도 취하도록 먹지
말고 좀 남기자. 시간도 너무 알뜰하게 쓰지 말고 좀 남겨두자.
사랑한다는 말도 다 하지 말고 마음속에 조금은 남겨두자. 일하는 시간
을 조금 남겨서 한가하게 하늘의 구름이라도 쳐다보며 남김에 대해
생각해보자.

오늘 우리가 남김의 미학을 찾는 것은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문화와
더욱 가까워지는 것이 되며, 또한 우리가 바라는 여유 있고 아름다운
삶에 보다 가까워지는 것이 될 것이다.
또한 오늘날 우리 문명세계가 겪고 있는 생태파괴, 물질주의, 무한
경쟁의 비인간화에 대항할 수 있는 대체 가치로의 의의도 크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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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문화의 한 특징을 살펴보았습니다. 서두에서도 이야기했듯이
현대에서는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채우고, 더 철저함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동양에서도 특히 우리나라 문화는 여백의 미, 빔의 미학을 내포하고
왔습니다.

특히 최근의 우리나라를 보면 극단주의에 물들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막장 드라마와 끝장 토론 등 용어만 보아도 살벌합니다. 마음이 강퍅하여
바늘 하나 들어갈 여유가 없고, 마음밭이 거칠어져 있습니다.
오로지 1등만을 추구하고 1등만이 모든 것을 독식합니다. 그렇다고 1등이 마냥
편하지도 않습니다. 언제 내려앉을지 모르는 불안과 두려움을 늘 안고 살지요.
결국 모두가 불행한 세태입니다.

완벽주의를 추구하지만 완벽함이란 원래 인간사에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주 일시적으로 잠깐 머무른 찰나의 순간에만 존재할 뿐이지요.
완벽한 균형은 깃털 하나에도 무너진다는 말이 아주 가슴에 와닿습니다.

이런 세태에 우리의 선조들은 한없이 지혜로웠습니다. 정형 시조에서조차
파격을 즐기고, 시조창에서는 아예 마무리 부분을 부르지도 않습니다.
나눔을 알고 여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랫사람들을 위해 먹을 것을 남기
고, 들짐승을 위해 음식을 밖에 내어 놓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완벽하고 꼼꼼한 정원을 가지지만 우리 선조들은 삶의 공간
한쪽 옆에 자연을 조금 둘 뿐입니다.

혹자는 이런 대충주의, 적당주의로 인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있다
고도 합니다. 일의 끝마무리가 엉성해서 건물도 무너지기도 하며 상품의
완성도도 떨어진다고 말이지요.
하지만 이전에 도자기의 미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때 언급했듯이, 너무 인공
적이고 철저한 비례에 맞춘 일본의 도자기보다, 자연스러움과 여유로움이
넘치는 한국의 막사발이 훨씬 더 가치를 가지고 국보급의 대접을 받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여유로워져야 할 때입니다. 1등이 아닌 나머지도
충분히 가치가 있고 존중받아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고 빨리 가야하고
너무 철저함을 추구함도 이제는 좀 내려놓아야 합니다. 산에 가서도 정상을
향해 전투같이 올라가는 등산이 아니라, 쉬엄쉬엄 가면서 경치도 보고
발아래 피어 있는 조그마한 들꽃도 눈을 맞추면서 올라가야 합니다.

오늘은 잊혀졌던 우리 전통문화의 한 특징을 살펴보았고, 이러한 남김의 미학
이자 철학이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삶의 대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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