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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예술

<예술 수업1>

예술과 창의성

by 해헌 서재

오늘은 예술에 대한 강의를 한 번 책으로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자인 오종우 교수는 성균관대학교 최고의 명강으로 꼽히는 “예술의 말과 생각“이라는 강의를 하였으며, 성균관대 티칭어워드(SKKU Teaching Award)를 수상한 명교수입니다.


그의 강의를 책으로 엮었는데, 오교수의 강의실에는 도스토옙스키와 체호프의 소설, 피카소와 샤갈의 그림,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타르콥스키의 영화, 베토벤의 교향곡과 피아졸라의 탱고가 흘러 넘친다고 합니다.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영화 한 편을 보고 극장을 나섰는데 거리의 풍경이 달라 보인 적이 있을 겁니다. 한 곡의 음악을 듣고 세상의 색깔이 변한 적도 있을 겁니다. 미술관에 걸린 그림 한 점에 이끌려 한동안 바라보았던 감흥은 긴 여운을 남깁니다.


이처럼 예술작품에 흠뻑 젖는 일, 참으로 귀한 경험입니다. 예술작품이 주는 울림은 어디에서 비롯될까요?


예술은 사람들의 고뇌와 고통을 이해하고 인간의 가치를 해석해 삶의 전망을 밝히는 인문학의 전위(前衛)에 있습니다. 예술은 인문학적 사유의 출발점을 놓지요.



◉ 진정한 창의성의 비밀


요즈음 창의성이라는 말을 참으로 많이 씁니다. 그런데 과연 이 말 뜻을 제대로 알고 쓰는지 의문입니다. 우리가 창의력, 창의성이라고 할 때는 보통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기존에 없던 것을 창조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진짜 창의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꼭 필요합니다.


먼저 “전문성”입니다. 피카소가 대상을 보이는 대로 정밀하게 그리다가 대상의 진실을 확보하기 위해 자기 예술 세계를 열었듯이, 우선 이전부터 축적된 능력을 학습하고 익혀서 전문적인 단계에 이르러야 합니다.


다음으로 “대상에 대한 애정”입니다. 애정 없이는 어떠한 대상도 제대로 볼 수 없으며, 그 일을 발전시킬 수도 없습니다.


무엇이든 제대로 알고 난 뒤에야 창의성이 나오는 법입니다. 전문성과 대상에 대한 애정은 창의력의 기반인 셈이지요.


예술은 늘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 세상을 열어내지만, 그러기 위해서 모든 예술가는 언제나 기존에 확립된 규범을 학습하고 수련합니다. 예술이 문화를 형성하는 근본 동력이면서도 문화에 갇히지 않고 문화를 새롭게 일궈내는 핵심이 되는 원리가 이러한 이치에서 나옵니다.


인터넷에서 클릭 한번으로 순식간에 얻은 지식은 살아가는 힘이 되지 못합니다. 남에게 들은 정보도 마찬가지지요. 오래 걸려도 궁금한 점을 풀어내고 알아가는 희열이 진짜 지식을 만듭니다. 머리뿐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는 과정이기도 하구요.


진정한 예술작품은 현실과 직접 부딪쳐 탄생합니다. 그렇게 태어난 뛰어난 예술 작품은 인류에게 인식의 전환을 가져다줍니다. 예술을 통해서 우리는 인식하는 능력, 해석하는 능력을 키우고 창의성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예술작품은 그 자체가 창의적이면서 동시에 예술작품을 대하는 사람들을 창의적으로 만듭니다.



◉ 예술은 어떻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가


예술을 맨 처음으로 규정한 사람은 철학자 플라톤(BC 428-347)입니다. 그는 실제를 모방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가치에서 동떨어져 있다는 거죠. 이 언급은 지금까지 가장 영향력이 있는 예술에 관한 이론을 낳았습니다. 모방이론, 즉 미메시스(mimesis), 예술이 현실을 반영한다느니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느니 하는 관점이 여기에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플라톤의 미메시스 이론은 예술에 대해 첫 기초를 닦았지만 예술의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복잡한 현대미술을 보면 이제 더 이상 예술을 모방이론으로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오랫동안 예술을 규정한 미학의 개념인 미메시스는 더 이상 완벽한 예술에 대한 관점이 되지 못하는 것이지요. 하긴 어떤 이론도 예술을 완벽하게 정의하지 못합니다. 예술작품이 하나의 정의에 남김없이 포착되는 순간 예술성은 사라지기 때문이죠.


철학자 리처드 로티(1931-2007)는 문화사를 거시적으로 해석했는데, 여기에는 현대의 경제기반을 예견한 흥미로운 관점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인류의 문화가 “신화”의 시대, “철학”의 시대, “종교”의 시대, “과학”의 시대를 거쳐 “예술”의 시대로 움직인다고 봤습니다.


로티는 상상력에 기반을 둔 새로운 어휘를 창안하는 것이 곧 실재의 생산이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창출하는 예술적 창의성이 경제의 토대를 새로 만들어낸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 경영이론에서 거론되는 창조경제, 또는 창조산업을 이미 전망한 것입니다.



◉ 새로운 생각을 탄생시키는 원동력


인류의 역사에서 예술이 단 한번이라도 소멸한 적이 있나요, 없습니다. 이는 예술이 매우 생명력이 강하고 실용적이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문화는 인간이 자연의 상태에서 벗어나면서 탄생했습니다. 그림이 한 장 있으면 무엇을 가리키는 지시성이 크지만, 같은 그림이 여러 장 규칙적으로 배열되면 그림의 지시성은 사라지고 뭔가를 상징하는 의미성이 강해져 무늬가 됩니다.


문화라는 것은 그런 무늬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일정한 패턴을 지닌 것을 문화라고 합니다. 그래서 문화에는 질서가 있고, 그 질서는 문화체의 중심부로 갈수록 더 견고해집니다. 모든 무리에는 문화가 있습니다. 모든 시대에도 문화가 있습니다.


문화가 탄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예술입니다. 예술은 원시시대에 등장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무척이나 다양하게 전개되면서도 하나의 동일한 일을 합니다.


인간이 자신이 처한 삶과 환경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가 곧 “예술”이라는 점이죠. 이것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예술의 성질입니다. 원시인들은 자신들이 파악하지 못한 자연현상에 대해 공포감을 느꼈습니다. 자신들이 어떻게 해도 알 수 없는 무의미는 그 자체로 공포를 낳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 사람들은 의미를 부여하는 무늬를 그렸습니다. 지금까지 동굴벽화에 남아있는 그림들이 그 흔적입니다.


또한 그들은 이야기를 지었고 노래를 불렀으며 춤을 추었습니다. 행위예술 역시 인간의 삶에 의미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이처럼 인간이 자연의 상태에서 벗어나 문화를 형성할 때 예술은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현대에도 마찬가지죠.


예술은 자유를 지향합니다. 자유로우려면 어떠한 질서나 양식에 얽매이지 않아야 하겠지요. 세상을 창의적으로 해석해서 이해하는 일, 기성의 질서에 단순히 편입되기를 거부하고 주체로서 살아가는 일, 바로 이것이 예술의 근본성질입니다. 예술은 늘 그러한 일을 합니다.


예술은 정치혁명처럼 어떤 거창한 구호를 외치지 않습니다. 인간의 삶은 소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술은 그 소소한 것들에 새로운 무늬를 그려나가 전체에 스며들게 하지요. 거창한 구호보다 큰 감동을 주는 작은 울림들로 세상을 움직입니다.




오늘은 예술과 창의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해보았습니다. 우리는 예술을 흔히 실용적이지 못하고 현실에서 한 발 떨어진 존재로 인식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예술이야말로 과거와 현재의 문화를 만들어 낸 가장 큰 원동력이고 창조의 근원이라고 말합니다. 예술의 근본성질 가운데 하나가 세상과 현실을 새롭고 다르게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창의성을 가지기 위한 전제로 “전문성”과 “대상에 대한 애정”을 제시하는데 정말 명쾌한 분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현대미술작품을 보고, 저건 나도 그리겠다, 유치원생이 그린 것 같다. 등의 말을 가끔 하고 듣지요. 하지만 피카소의 초기 작품을 보면 정말 세밀하게 그린 그림들이 많습니다. 즉 완벽한 데생과 정밀화를 그릴 바탕이 있은 후에 추상작품 등이 나왔다는 말입니다. 음악에서도 재즈나 즉흥 연주를 하는 연주자들을 보면 아무런 질서없이 연주하는 것 같지만 이들도 완벽한 악기 연주실력을 마스트한 후 가능한 일입니다.


먹고사는 일들로 채워진 현실에서만 사람이 거한다면 요즘 말하는 번아웃 신드롬(burn out syndrome)에 금방 빠져 들고 말겠지요. 이런 상태에서는 창의성이 나올 수 없고, 오직 예술 등으로 인해 진정 인간은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다고 봅니다.


현실에서 다들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진정 삶의 풍요로움과 여유로움을 잃지 않기 위해서, 이 책을 한 번 읽어 보시기를 권해드리고, 이를 계기로 근처 미술관에서 그림 한 점 감상할 수 있고, 음악회에 찾아가서 음의 선율에 몸을 맡길 마음의 공간과 여백을 가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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