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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화주의의 덫>

시사에 훤해지는 역사, 中

by 해헌 서재

<문화 중화주의의 덫>

-- 시사에 훤해지는 中

강 일 송

오늘도 역사 이야기를 더 해보겠습니다.
지난번에는 동양의 4대 발명품이 유럽으로 넘어가 오히려 역으로 그들의
도구가 되어 동양이 침략을 받게 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았습니다.

오늘은 중국에서 비롯된 문화 중화주의가 어떻게 한반도로 유입되어
영향을 미치고 오늘날까지 내려오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한 번 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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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관광을 다녀온 분들은 알겠지만 북한 당국은 금강산의 관문에
거창하게도 “천하제일명산”이라는 플래카드를 걸어놓았다.
금강산이 아름답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천하제일명산, 즉 “세상에서 으뜸가는 아름다운 산”이라는 문구는
어떨까? 으레 있기 마련인 수식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실제로 정부 당국만이 아니라 일반 주민들도 금강산을 포함
한 자신들의 체제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치다 싶을 만큼 대단하다.

원래 “천하제일”이라는 수식어는 중화 문명권의 특유한 표현 가운데 하나다.
역사적으로 일찍이 정치적 통일이 이루어졌고 정치를 중심으로 삼는 수직적
동심원적 질서가 지배했던 중화 세계에서는 뭐든지 서열을 따지고 “최고”를
가려내는 습성이 있었다.

중국인들이 지금도 “천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이런 발상이 문화의 영역에까지 투영된 결과가 북한의 금강산 플래카드라고
봐야 할 것이다.

사실 중국도 아닌 한반도에 중화주의적 발상이 자리 잡은 데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그 시작은 17세기 중반 만주족이 중국 대륙을 정복하면서부
터다. 흔히 한반도 왕조들은 전통적으로 중국에 사대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더 좁히면 사대의 대상은 중국의 한족(漢族) 왕조에 제한된다.
중원을 북방의 오랑캐 민족이 장악하던 시기에는 사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약화된 한족 왕조를 섬기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랬으니 17세기에 중국이 몽땅 오랑캐의 수중에 들어갔을 때 조선의 지배
층이 얼마나 당황했을지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심한 패닉은 정신이상을 낳는다. 조선의 지배층은 중국에서 중화가 사라
졌으니 이제 조선이 중화의 본산이라고 믿는 병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것이 바로 소중화주의(小中華主義)다. 그들은 유일한 문명국은 조선밖에
남지 않았다고 믿게 되었다. 이런 위기감과 시대착오적인 관점이 소중화주의
라는 괴물 같은 이데올로기를 낳았다.

물론 긍정적인 결과도 있었다. 문화적으로 중국에 예속된 자세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노선으로 돌아선 게 그런 예다. 학문에서는 유학을 실용적이고
주체적인 학문으로 정립해보겠다는 실학 운동이 그런 토양 가운데 생겼다.
미술에서는 중국의 자연이 아니라 우리의 자연을 담은 “진경산수화”(-진경,
즉 진짜 경치란 조선의 경치라는 의미다. 18세기부터 조선 화가들은 조선의
산수를 그리게 됨, 정선의 인왕제색도, 금강전도가 그러함)가 등장했고,
음악에서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1인극 형식인 판소리가 정립되었다.

지금은 오랜 역사로 간주되는 전통 예술은 사실 300년 밖에 되지 않았고
더구나 중국을 청나라가 정복하지 않았더라면 생겨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중국 대륙의 변화가 기본적인 동인으로 작용했다고 보면 안타깝게도 그
주체화 노선은 그다지 주체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17세기 예송논쟁도 이러한 소중화주의의 병리 현상이다. 이제는 유학의 모든
예법을 조선에서 정해야 한다고 믿었다.
중화의 메이저리그가 사라졌다면 마이너리그가 오리지널이다. 이제는
모든 예법을 조선에서 다듬어야 하고 필요하면 새로 만들어야 한다.
결국 서인과 남인이 사뭇 비장한 자세로 예법을 두고 설전을 벌인 것이 예송
논쟁인 것이다. 그 바탕에는 조선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남은 문명국가라는
허황된 자존심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소중화주의는 오늘날까지 흔적을 남기고 있는데, 남한과 달리
폐쇄적인 체제를 취하고 극단적 민족주의로 무장한 북한사회에는 그 흔적이
더 뚜렷하다. 그 점을 보여주는 예가 금강산 플래카드와 같은 주관적이고
자기중심주의적인 시각이다.

실제로 북한 당국은 금강산을 외국인들에게 보여주면 누구나 입을 다물지
못하리라고 생각한 듯하다. 그러나 그런 오판이 관광 정책과 같은 정책의
측면에까지 반영될 경우에는 오히려 피해를 낳을 수도 있다.

“무릇 산은 금강산처럼 기암괴석과 맑은 물이 있어야 진짜 산이다.”
이런 견해도 훌륭한 미학이기도 하지만, 이런 관점에만 집착한다면 스타인
벡이 묘사한 로키 산맥의 험준한 아름다움, 생텍쥐페리의 눈에 비친
사하라의 황량한 아름다움은 보지 못하게 된다.

김치가 세계화될 수 있는 상품인 것은 분명하지만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김치를 맛보면 감동하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경주를 관광한 서양인이 “뷰티풀”을 외친다고 해서, 사물놀이패의 뉴욕 공연
에서 미국 관객들이 “원더풀”을 외친다고 해서 액면 그대로 믿었다간 “풀,fool"
이 되기 십상이다.

한때 서구 문화제국주의가 악명을 떨쳤지만 그에 대한 대응책이 소아병적인
“소중화주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문화란 본래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절대
적인 기준이나 우열을 말할 수는 없다.
진정으로 우리 문화에 대한 애착이 있다면 객관적으로, 때로는 타자의 시각
에서 바라보고 냉정하게 평가할 줄 아는 시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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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문화중화주의, 소중화주의 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보았습니다.
한반도의 왕조들 중 조선의 왕조에서 중국 한족에 대한 사대는 유난스러웠
습니다.
청태종이 쳐들어왔는데 망해가는 명나라에 대한 사대를 버리지 못하여
인조는 “삼전도의 굴욕”을 당합니다.
이후, 우리의 자연을 그린 진경산수화와 실학 등이 나타났지만 진정한 의미의
자주적, 주체적인 변화는 아니었다고 하지요.

예전에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책에서 말씀 드린 적이 있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오랜 전통처럼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얼마 안 된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하지요. 저자의 말처럼 우리의 전통도 300년이 안된 것들이 상당하고, 김치도
빨간 것이 오랫동안 그래왔을 것 같지만 고추가 한반도에 들어온 지도 얼마
안됩니다. 스코틀랜드의 각양각색의 킬트도 18세기 이후에 만들어졌고,
천년의 전통이 재현되는 것처럼 보이는 영국왕실의 마차행렬도 19세기 후반
에야 생긴 전통이라 합니다.

저자는 북한의 과도한 민족주의와 문화체제에 대한 자부심 등이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온 소중화주의의 결과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북한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런 현상이 보이기도 합니다.
문화는 정말 상대적인 것이지 우열을 가리는 분야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문화유산을 사랑하고 아끼되, 금강산을 세계에서 가장 빼어난 산이라고
생각하듯 우리 문화를 바라보는 편향적인 시각은 없는지 늘 살펴야 하겠고,

현대에 맞는 좀 더 글로벌하게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는 폭넓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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