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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Sep 19. 2016

<꽃과 달>   바쇼

<꽃과 달>   바쇼


                           강 일 송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詩), 하이쿠 몇 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5-7-5의 열일곱 자안에서 언어와 풍경이 만나 예술의 경지를 이루는데,

짧지만 절대로 깊은 성찰 없이는 쓸 수 없다고 합니다.


하이쿠의 성인 마쓰오 바쇼(1644-1694)의 작품 및 몇 편을 보겠습니다.



보이는 것 모두

꽃이 아닌 것 없고

생각하는 것 모두

달 아닌 것 없구나

       - 바 쇼 -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꽃과 달 만큼 인간에게 아름다운 심상을 주는

대상은 없지 않을까 합니다.

바쇼는 험난한 인생길을 살아오면서 깊은 사색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꽃은 지상의 것이고 달은 천상의 것이라 합니다.

지상의 것과 천상의 것을 절묘하게 단 두 문장으로 연결한 바쇼는

생의 마지막까지 한 군데 머무르지 않고 방랑의 길을 다니며 자연과

하나가 됩니다.


시에 대한 그의 말을 보겠습니다.


“소나무에 대해선 소나무에게 배우고

대나무에 대해선 대나무에게 배우라.

그대 자신이 미리 가지고 있던 주관적인 생각을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생각을 대상에게 강요하게 되고 배우지 않게 된다.

대상과 하나가 될 때 시는 저절로 흘러나온다.

그 대상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안에 감추어져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 그 일이 일어난다.

아무리 멋진 단어들로 시를 꾸민다 해도

그대의 느낌이 자연스럽지 않고

대상과 그대 자신이 분리되어 있다면

그때 그대의 시는 진정한 시가 아니라

단지 주관적인 위조품에 지나지 않는다.“


정말 인생에 대해서 깊은 관조를 가진 성인이라 불릴 만 합니다.

이 시대의 모든 문학인을 비롯해 어느 분야이든지 이 말을 깊이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두 사람의 생

그 사이에 피어난

벚꽃이어라

     - 바 쇼 -


이 시는 바쇼가 천하 유랑 중, 어릴 때 친구 도호를 19년 만에 만나고

지은 시라 합니다.

벚꽃은 화려하지만 빨리 집니다. 눈처럼 흩날리며 장관을 이루지만

밤새 내리는 비바람에 순식간에 사라지는 존재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두 친구.

그 각각 살아온 인생이 마주할 때 화려한 벚꽃이 핍니다.

그렇지만 오래지 않아 둘은 금방 헤어져야 했고, 추억은 아름답게

벚꽃처럼 피었다가 사라집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번개를 보면서도

삶이 한순간인 걸

모르다니

           - 바 쇼 -


저는 인생을 이처럼 짧은 시어에 표현한 시를 본 적이 없습니다.

깊은 경지를 담고 있지만 표현은 이렇게 가볍게 할 수 있다니오.

심입천출(深入淺出) 이란 말이 있습니다.

예전의 제 선생님 중 한분이 즐겨 하시던 말이었습니다.

깊게 들어가고 얕게 나오라.

즉 깊이 생각하고 공부하되 나올 때는 쉽게 간단하게 표현하라는 것입니다.

공부의 깊이가 깊을수록 쉽게 가르칩니다.

어려운 말을 많이 쓰는 사람일수록 얕게 아는 경우가 많지요.

시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합니다.

바쇼는 진정 깊은 내공이 있는 시인이라 여겨집니다.



마지막으로 예전 한 번 올렸던 시지만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또 다른 시인 “잇사”의

시를 두 편 더 보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이 세상은

지옥 위에서 하는

꽃구경이어라

     - 잇 사 -


이 세상은 양면성이 있는 곳입니다.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오래된 벗이 있는 좋은 곳이기도 하고,

온갖 힘든 고난과 삶의 무게가 넘치는 지옥 같은 곳이기도 하지요.


잇사는 쉰 세 살에 첫 아들을 얻지만 아이는 한 달 만에 죽습니다.

그다음에 태어난 딸은 천연두로 1년밖에 살지 못합니다.

두 번째 아들도 몇 달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이듬해 세 번째 아들을 낳던 아내는 세상을 떠나고, 아이도 숨을

곧 거둡니다.   이 기간에 잇사는 뇌졸중으로 몸에 마비가 찾아옵니다.

지옥같은 삶이었네요.

그러나 그 와중에도 꽃은 피고 또 핍니다.

아내가 죽고 잇사가 썼습니다.


나비 날아가네

마치 이 세상에

바랄 것 없다는 듯

       - 잇 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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