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훈
<생각거리 36> 최용훈
강 일 송
오늘은 인문학자이자 교수인 저자가 생각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36가지 주제를 정해서 풀어내고
있는 책을 한 번 보려고 합니다.
저자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문학,연극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위대한 치유력 세익스피어 인문학” 등의 저서 및 역서가 있습니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주제 중 몇 개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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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선적 사고와 다중화
서양사람들의 사고는 직선적이다. 2,000년 이상 이어진 기독교정신의 결과이다.
성경의 이야기는 창세기에서 최후의 심판까지 직선적으로 이어진다. 시작이 있으니
끝도 있기 마련이다. 역사는 연대기적으로 기록되고 논리는 인과관계에 기한다.
반면에 동양의 사고는 원형적이다. 처음과 끝이 따로 있지 않고, 심지어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 불교의 윤회사상은 처음과 끝, 삶과 죽음이 영겁으로 이어짐을
나타낸다.
“직선적 인과관계”
직선적 사고는 직선적 인과관계로 발전한다. 시작이 있으니 끝이 있고, 빛이 있으니
어둠이 있고, 선이 있으니 악이 있으며, 남자가 있으니 여자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이라 부른다.
현대 프랑스의 철학장 데리다의 “해체철학”은 이러한 서양인들의 로고스에 대한
해체이다. 빛이 어둠보다 강하고, 선이 악보다 도덕적이라면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한
것일까? 즉 이항대립에서의 가치판단에 대한 의심과 전도가 해체의 요체이다.
“다중화의 오류”
‘사회적 증거(social proof)'라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하면 다수의 행위를 통해 사회적으로
입증된 사실을 가리킨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적 증거를 따르는 경향이 있다.
다수의 행위를 모방함으로써 실수의 위험을 줄이고자 하는 태도이다.
19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그송은 “웃음(Le Rire)"라는 책에서 웃음의 특징은
전염성이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웃을 때 더 큰 웃음이 유발된다는 것이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가짜 웃음 트랙을 삽입하는 것도 이러한 원리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다중의 행위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기에는 너무 힘들고
외롭다고 느낀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다중화하고 우리의 개인적 삶을 낭비한다.
외적 현상에 일희일비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내면을 외면한다.
이제 근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직선적이고 단선적인 논리에서 벗어나고,
무수한 대중의 외침에서 벗어나 내 안의 소리를 되찾아야 한다.
◉ 우연과 필연
우리의 삶은 우연에 의해 좌우되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겪게 되는 모든 것들은
미리 정해진 대로 이루어지는 필연인 것일까?
우연과 필연의 차이는 결국 인과관계에 있다. 원인 없이 이루어진 결과는 우연이고,
원인에 의해 초래된 결과는 필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운좋게 복권에 당첨되는 것은 우연이고, 방탕과 게으름으로 몰락하는 인생은 필연이다.
결국 우리의 삶은 우연과 필연이 끊임없이 얽혀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연이 필연을 낳고, 또 다시 그 필연의 결과는 우연에 의해 변화된다.
우리의 삶은 우연과 필연으로 이루어진 뫼비우스의 띠와도 같은 것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우연과 필연의 열매이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의 말이다.
우리의 탄생 자체도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우연에서 비롯되지만 그러나 결국
한 개체로서의 삶이 필연적으로 이어지고 생명은 끝없이 연속되고 있다.
사실 모든 것의 시작은 우연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2002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일본의 다나카 고이치는 평범한
연구원이었지만 실험도중 용기를 착각해 코발트와 글리세린을 섞는 실수를 범한다.
그는 이 실수를 통해 레이저에 의해 파괴되는 단백질을 보호하는 완충제를 만들어
냈다. 우연히 벌어진 실수는 그의 노력으로 새로운 발견이라는 필연으로 이어지게 된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연은 늘 강력하다. 항상 낚시 바늘을 던져두라. 전혀 기대하지 않은 곳에 물고기가
있을 것이다.“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지혜야말로 인생의 지혜가 아닐 수 없다.
운명에는 우연이 없다. 운명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 역사 - 과거를 통해 보는 현재
E.H.카는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가
나누고 있는 대화이다“라고 말하였다.
역사는 역사가의 손에 의해 씌어져 후세의 사람들에게 과거를 대면하게 한다.
미국의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과거는 반복된다.”
라고 말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현재라고 인식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과거의 영역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와 과거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과거의
시간과 경험 속에서만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결코 과거를 외면하고 살 수 없다.
유태인들은 자신들의 비극적 역사를 통해 배운 대표적인 민족이다. 그들의 고대 이집트의
지배를 받고 노예로 전락했다. 모세에 의해 이집트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또 다른 고대
제국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자 그들은 자신의 땅을 등지고 2.000년 세월을 조국 없는
민족으로 떠돌게 된다. 유태인의 역사는 박해의 역사이다.
로마의 학정을 피해 유럽의 각지로 흩어진 유태인은 로마에 의해 기독교화 된 유럽인들에
의해 배척당한다. 예수라는 메시아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의 지옥을 경험했지만, 독일인을 비난하거나 저주하는 단 한 편의 책도 유태인
에 의해 출간되지 않았다는 것은 큰 미스테리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통해 인고의
가치를 배우고 생존을 위한 침묵의 유전자를 내재화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역사가 가치를 지니는 것은 현재 속에서 의미를 지닐 때이다.
과거의 기록물들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것은 역사를 종교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과거의 단편들이 현재와 일치되고 그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찾고자 노력하는
한 역사는 가치를 지닌다. 그 속에 현재의 우리가 존재하고, 그 안에서 목소리가 반향
되기 때문이다.
역사는 그래서 오늘의 우리에게 의미를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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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단편의 에세이처럼 써내려간 몇 가지 주제들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영문학자이자 문학, 연극평론가답게 인간의 기본적인 명제에 대해서 자기만의 명확한
의견을 담담히 이야기하듯이 풀어 나가고 있습니다.
처음 이야기한 직선적 사고와 다중화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보자면,
이전부터 있어온 서양은 직선적 사고이고 동양은 순환적 사고이다 라는 말을 다르게
설명하고 풀어낸 것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서양이라고 무조건 직선적이고, 동양은 무조건 순환적인 것은 아니겠지요.
자연을 지배하고 개척해야할 대상으로 보는 서양과 자연을 같이 어울려 살아가는
존재로 보는 동양이, 현대에 와서는 오히려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개발도상국들의
자연이 오염되고 황폐화되고 있는 반면에, 유럽의 나라들은 자연이 잘 보존되고 있는
것을 보곤 합니다.
우리네 인생은 우연과 필연의 얽힌 조합이듯이 사람들의 사고도 다양하게 서로 맞물려
돌아가고 세월의 흐름과 교류에 따라 닮고 비슷해지는 경향이 두드러져서 그리 되었지
않을까 합니다.
역사에 대한 내용에서도, 결국 과거의 기록은 승자 입장에서, 문자를 가진 민족의 입장
에서 기록이 되어 왔고, 보는 시각에 따라서 너무나 다른 평가가 가능하기에 역사를
보는 보편적이고 타당성을 가진 눈을 스스로 길러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를 잊으면 그 역사는 반복된다는 교훈은 너무나 정확합니다.
그래서 역사는 더더욱 현재에 있어서 중요성을 가진다고 봅니다.
저자의 말처럼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지혜가 참 멋진 인생의 지혜라는
생각이 드네요.
오늘은 낚시바늘을 던져서 강력한 우연을 건져내는, 인생의 지혜가 내 삶에 있어서
무엇인지 고심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