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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에 목숨을 걸다>

by 해헌 서재

<홍차에 목숨을 걸다>


* 차(Tea), 영국에 상륙하다


지난번에 버터와 후추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를 했었고, 오늘은

홍차 이야기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별것 아닌(?) 한 음식이 인간의 역사에 영향을 주고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게 되는 역할을 한 것이 참 흥미롭습니다.

동양에서 시작된 차문화가 유럽으로 전해져 한 나라의 대표적

문화코드로 자리 잡는 과정과, 가장 불공정한 전쟁이었다는

아편전쟁과의 관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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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Tea)는 우리가 익히 아는대로 중국이 원산지이지만 영국인들의

차사랑은 유별납니다.

차가 테이(tay), 또는 티(tea)라고 불린 이유는 차를 처음 유럽에 가져

들어온 네덜란드 상인들이 그들이 차를 구입한 중국 푸젠성 샤먼

지역의 방언발음을 따랐기 때문이랍니다.

처음 네덜란드 왕가와 귀족들에게 보급되어 인기를 끌자 네덜란드

상인들은 다른 유럽 국가에도 적극적으로 차를 보급했다고 합니다.


영국에서 차를 처음 언급한 자료는 광고인데, 가웨이(Garway)라는

런던의 상인이 1658년 한 신문에 "모든 의사가 추천하는 중국의

신비한 음료"를 커피 하우스에서 판다는 광고를 냅니다.

차의 효능을 두통, 소화불량, 감기, 간염, 수종, 학질, 괴혈병에 효과가

있다고 광고하고 당시 차 500g이 2.5파운드에 팔렸는데, 당시 귀족

저택에서 일하는 남자하인의 연봉이 2-6파운드였다고 하니 얼마나

사치품이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처음 유럽인들이 마시는 차는 대부분 녹차였고, 발효차는 18세기 이후

보히차(Bohea tea)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영국인들은 이 홍차를 각별히

사랑했습니다.

영국차를 마시고 맛있다고 사와서 먹으면 국내에서 그 맛이 안나는

경우가 많은데, 영국은 경수이고, 우리는 연수라서, 석회염 등이 많이

포함된 경수는 탄닌이 잘 우러나지 않아서라 차이가 난다 합니다.


중국에서 온 차지만, 유럽에서 기호에 맞추어 재해석해서 마시기 시작

했는데, 네덜란드에서는 차에 설탕을 넣어서 마시는 것을 즐겼고,

영국에서는 여기에 우유까지 더해 차를 달달하고 든든하게 만들어

마시게 됩니다.


1741년 80만 파운드의 차를 소비한 영국인들은 1750년 250만 파운드,

1784년에는 1100만 파운드를 소비함으로써, 처음 1693년보다

400배가 증가합니다.

차의 영향에 대해서 상반된 견해가 존재하는데, 진이나 맥주 대신에

차를 마심으로 더 건강한 몸이 되어 영국의 산업화가 촉진되었다는

주장이 있고, 노동자들이 영양가 있는 음식을 구입해야 할 돈으로

차를 마시게 되면서 오히려 허약해졌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정치 경제학적 측면에서 보면, 차에 대한 대금으로 중국은 은(銀)만

받았고, 중국인은 영국물건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에 막대한

무역적자가 있었습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식민지 인도에서 차를 재배

하기 시작하였고, 아편을 중국에 팔아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려

하였기에, 19세기의 아편전쟁은 사실 차전쟁 이었던 셈입니다.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된 보스턴의 차사건(Boston tea Party)

역시 식민지 미국에서의 차 수입과 유통을 통제하려 했던 영국의

정책에 반발한 시민들이 영국의 간섭없이 차 마실 권리를 주장한

사건이었습니다.


우아한 홍차 한 잔에 여러 전쟁과 사건들이 연루되어 있고

"중국의 신비로운 맛"이 영국의 맛으로 거듭난 배경에는 제국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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