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숙
<삶이 그림을 만날 때> 안경숙
강 일 송
오늘은 “인생의 길목에서 만난 아름다운 명화 이야기”라고 부제가 붙은
책을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자는 미술 전공자는 아니지만, 불어불문학을 전공하고, 프랑스 기업 유코레일,
알스톰을 거쳐, 주한 프랑스대사관에서 근무하였다 합니다.
그림을 좋아해서 미술관에서 직접 명화들을 스케치하였고, 그림을 통해 아픔을
치유하고 용기를 얻고,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 수필작가이기도 합니다.
본문 중 3개 정도 그림과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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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종>, 밀레(1814-1875)
밀레의 <만종>은 어린 시절 구멍가게는 물론 어디서나 볼 수 있던 그림입니다.
밀레는 테오도르 루소,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 도비니, 쥘 뒤프레, 콩스탕
드루아용 등과 더불어 바르비종파로 잘 알려진 화가인데 자연을 표현하는 양식에는
차이점이 있지만 모두 자연을 사랑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밀레는 그러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소박한 농부들과 그들의 노동, 일상
생활을 그림으로 담아냈습니다. 반 고흐는 밀레를 다른 화가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적인 화가로 간주했습니다. 또한 “젊은 화가들이 모든 문제에서 의지하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아버지 같은 존재“라고도 했지요.
그림을 보면, 해가 저물어 어스름해진 하늘 아래로 갈색 평야가 펼쳐져 있습니다.
그 한가운데서 남녀가 기도를 하고 있네요. 함께 밭을 일구며 생계를 꾸려가는
농촌 부부인 듯합니다. 부인은 가슴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남자는 모자를
두 손에 쥔 채 경건하게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비록 작은 광주리에 담긴 감자 몇 개지만 “오늘도 무사히 일할 수 있게 해주시고
양식을 마련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드리는 것이겠지요.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두 사람의 마음이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헤아려보면 참 많을 겁니다. 단지 깨닫지 못하거나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영어 속담에 “당신이 받은 축복을 세어보라(Count your blessings)"
라는 말이 있습니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많은 것들은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 가치를 알게 됩니다.
<비 온 뒤의 오베르, 1890> 반 고흐(1853-1890)
“그 풍경이 나에게 말을 걸었고, 그것을 빠른 속도로 받아 적었다.” (반 고흐)
도시 생활이 갑갑하게 느껴질 때면 누군가 ‘자연으로 가라’며 등을 떠미는 것
같습니다. 마음은 굴뚝같아도 도시에 발이 묶인 제가 고안해낸 묘안이 있으니,
바로 베토벤의 교향곡 6번 <전원>을 방 안 가득 울리게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곡은 놀랍게도 베토벤이 귀가 들리지 않던 시절에 작곡한 곡이었습니다.
소리 없는 세계에 갇혀 있던 그가 창조한 음들은 그 어느 곡들보다 오묘하고 신비롭
습니다. 산책하면서 마주한 짙은 녹음과 싱그러운 풀들, 고운 빛깔과 자태를 뽐내는
향기로운 꽃들, 맑고 영롱한 시냇물 등, 비록 귀는 들리지 않아도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과 자연의 소리를 자신만의 것으로 재창조해 담았던 것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비 온 뒤의 오베르>를 보고 있으면 <전원>의 마지막 악장
“폭풍우 뒤의 기쁨과 감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차분한 톤과 정갈한 색감, 평온한 분위기, 비를 흠뻑 맞은 신록과 들풀은 파아란
물을 잔뜩 머금었다가 비가 그치고 나면 물방울들을 또르르 굴러 떨어뜨릴 듯합니다.
“진정한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라고 반 고흐는 말했습니다.
광기어린 색채는 치열한 삶의 흔적이었고 집어 삼킬 듯 이글거리는 붓의 터치는
예술에 대한 절대적 사랑이었다는 것을.
전심전력으로 그림에 스스로를 내던지고 그림을 위해 생명을 건 반 고흐의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북유럽의 여름 저녁, 1899-1900> 리카르드 베리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가 떠오르는 그림입니다. 생택쥐페리는 사랑은 서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하였답니다.
이 그림은 적당히 서로 거리를 둔 채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각자의 자유를 존중하
면서 “따로 또 같이” 꿈을 가꾸고 나아가는 사랑을 보여줍니다.
리카르드 베리는 주로 스웨덴의 경치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그의 아버지 역시 풍경
화가였다고 합니다. 스톡홀름의 미술 아카데미에서 수학한 뒤 파리로 건너가 공부를
계속 하였습니다. 심리학에도 관심이 많아서 자신의 작품에 반영하기도 하였습니다.
“북유럽의 여름 저녁”에도 어쩌면 자신만의 사랑 심리학이 드러나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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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림 몇 점을 통하여 우리 삶을 투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았습니다.
저자는 말하기를 “그림에는 우리네 삶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라고 합니다.
살면서 좋은 그림을 만나는 것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행복한
경험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도 이 책을 보기 전에는 리카르드 베리 라는 화가를 몰랐습니다만, 그의 그림
<북유럽의 여름저녁>이 인상이 깊더군요.
시작하는 연인인지, 아니면 현실에서 표현하기 힘든 연인인지 모르지만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그들의 떨어진 공간만큼 수많은 사연과 이야기가 그 사이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밀레 그림에서 나왔던 것처럼, 작은 것에 감사하고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에서조차
감사를 발견할 수 있는 마음이 늘 내마음에 자리잡고 있기를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섬유육종 때문에 오른쪽 다리를 잘라야 했고,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자기 사명을 다하다가 전이된 폐암으로 31세에 세상을 떠난 일본인 의사
“이무라 가즈키요”의 <당연한 일> 이라는 시를 끝으로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당연한 일>
이무라 가즈키요
왜 모두 기뻐하지 않을까
당연하다는 사실들
아버지가 계시고 어머니가 계시다
손이 둘이고 다리가 둘
가고 싶은 곳을 자기 발로 가고
손을 뻗어 무엇이든 잡을 수 있다
소리가 들린다
목소리가 나온다
그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아무도 당연한 사실들을 기뻐하지 않아
“당연한 걸”하고 웃어버린다
세 끼를 먹는다
밤이 되면 편히 잠들 수 있고 그래서 아침이 오고
바람을 실컷 들이마실 수 있고
웃다가 울다가 고함치다가 뛰어다니다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두가 당연한 일
그렇게 멋진 걸 아무도 기뻐할 줄 모른다
고마움을 아는 이는 그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일뿐
왜 그러지 당연한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