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예술

<발칙한 현대미술사>

윌 곰퍼츠

by 해헌 서재

<발칙한 현대미술사> 윌 곰퍼츠(Will Gompertz)


강 일 송


오늘은 미술에 대한 책을 한 번 보겠습니다.


저자는 세계적인 현대 미술관인 영국 테이트 갤러리 관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BBC에서 아트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미술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약 중인

윌 곰퍼츠입니다.


훌륭한 미술사나 미술 서적이 서점에 가면 즐비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인상파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편하게 이야기하듯이 재미있게 미술사를 풀어냅니다.

즉, 스토리텔링 현대미술사라고 정의하면 되는데, 한글판 책에서 제목을 조금

자극적으로 “발칙한 현대미술사”라고 정해서 주의를 끌려고 하고 있네요.


한 번 보시지요^^


---------------------------------------------------------------


인상주의는 현대미술에 비해서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고 다소 쉬워보이기까지

하지만, 처음 등장했던 시대에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예술사를 통틀어 볼 때, 인상주의 화가들은 매우 급진적이고 혁명적이며 틀을

깨부수는 획기적인 예술가들이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개인적 시련과 화가로서 받는 조롱을 견뎌내야 했다.

그 당시 프랑스의 미술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서 갑갑하리만치 관료주의적인

프랑스 미술아카데미가 중심에 있었다.

아카데미 측은 화가들이 신화, 종교적 도상학, 역사, 고대를 바탕으로 삼아 대상을

이상적으로 표현해 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젊고 야심만만한 화가들은 작업실 밖으로 나가 대담무쌍하게, 피크닉, 음주,

산책을 즐기는 장면을 화폭에 담았다. 이는 당시로서는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다. 마치 스티븐 스필버그가 결혼식 비디오 촬영으로 돈을 버는 격이었다.


인상주의자들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야외에서 보냈다. 그리고 자기들이 생각해 낸

대상을 표현하려면 기술적으로 이전과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당시 사회적으로 인정받던 회화기법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그랜드 매너(Grand Manner)이었다.


그랜드 매너에서 중요한 것은 데생 실력이었다. 담백한 물감을 혼합하여 정밀하게 붓을

놀려 실제와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대상을 묘사한다.

하지만 인상파들은 밖으로 나가 그림을 그려야 했기에, 빛이 계속해서 변하는 바깥 환경

은 작업실 환경과는 너무도 달랐다. 가장 필요한 것은 속도였다.

그래서 그들은 급하고 거칠게 쓱싹쓱싹 해치우는 붓질을 등장시켰고 붓자국을 숨기려

들지 않았다.


이를 두고 점잖은 아카데미에서 어떻게 반응했을지는 뻔한 일이다. 그들은 인상주의에

대해 유치하고 하찮다는 평을 내렸다.

대중은 조소를 퍼붓고, 인상파를 예술계의 애송이라 여겼다. 그들의 그림이 ‘단순한 밑

그림‘에 불과하며, ’그림다운 그림‘이 아니라는 것이 비난의 이유였다.

인상파들은 사람들의 반응에 실망했지만 굴하지는 않았다.


당시 불어닥친 변화의 바람이 있었는데, 1840년대까지만 해도 밖에 가지고 다닐만한

물감의 용기가 없었다. 그러다가 색 분류를 표시한 작은 튜브에 물감을 휴대하게 되자

겁 없는 화가들은 작업실 밖에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러던 중 에두아르 마네(1832-1883)가 등장한다. 1863년에 <풀밭위의 점심식사>를

아카데미에 출품했는데,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 2명과 벌거벗은 여자를 그렸다.

금욕적인 아카데미는 마네의 그림을 역겨워했고 곧바로 퇴짜를 놓았다.


하지만 마네 뿐 아니라 3000점이 넘는 허가를 받지 못한 작품과 많은 미술가들이

있었는데, 장차 거물이 될 폴 세잔, 제임스 맥닐 휘슬러, 카미유 피사로 등이었다.

이들은 아카데미 살롱과 대치되는, 또 다른 전시회를 열었는데 1863년 이 전시회는

“살롱 데 르퓌제(낙선전)” 이라 불리었다.


인상파 중에서 한 화가를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그는 제일 나이가 많고 별난 축이었다. 인상파의 출발을 함께 했지만 마지막은

지켜보지 못했다.

“세잔(1839-1906)은 처음으로 두 눈을 써서 그림을 그린 화가입니다.” 데이비드 호크니

가 말했다. 칠십대의 영국인 예술가 호크니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세잔은 동작이 없는 대상을 선호했고, 이미 130년 전에 눈에 보이는 것을 전부 믿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은 두 눈이 있어 양안시를 사용하고 양쪽눈이 바라보는

풍경은 미묘하게 다르다.

세잔은 측면과 정면처럼 다른 두 각도에서 바라본 대상을 그렸고, 두 가지 이미지를

하나로 합쳤다.


세잔은 원근법을 포기하는 대신 진실을 손에 넣었다.

우리가 다양한 각도에서 풍경을 바라보듯이 세잔은 여러 각도를 뒤섞어 시점을 표현했다.

바야흐로 모더니즘으로 향하는 문이 열리고 있었다.


세잔은 현대적 방식에다, 오래전부터 발전해온 “그랜드 매너”풍의 색조를 더했다.

그러자 마치 화음처럼 색채들이 어우러진 조화의 이미지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사과와 복숭아가 있는 정물”을 통해 입체파, 미래주의, 구조주의, 그리고 마티스로

대표되는 장식미술의 탄생에 영향을 주게된다.


또한 그는 보통 풍경에서 세세한 부분이 아닌 형태를 보았는데, 땅과 건물, 나무, 산,

심지어 인물까지도 기하학적인 형태로 생략해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25년뒤

완전한 추상주의를 탄생시키게 된다.


세잔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더니즘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있었다.

네덜란드의 화가 몬드리안은 유명한 데스테일 작품을 통해 세잔의 아이디어를 극적

으로 표현했다.


파리 전위파들 사이에 세잔은 엄청난 존재로 인식되었고, 당대의 쟁쟁한 예술가들이

그를 추종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피카소는 이렇게 말했다.


“세잔이야말로 나의 유일한 스승이고 만인의 아버지다”


-----------------------------------------------------------


오늘은 테이트 미술관장을 역임한 미술 전문 저널리스트인 “윌 곰퍼츠”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인상파부터 현대미술에 이르는 여정을 바로 앞에 앉은 사람들에게 얘기하듯이 흥미

롭게 풀어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어렵고 난해하기만 한 현대미술을 발칙하다고 표현하면서까지

사람들에게 쉽고 편안하게 접목시키려는 노력이 엿보입니다.


한 때 주류의 파리 아카데미로부터 형편없는 평가와 대중의 조롱을 받아야 했던

인상파는 어느덧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이 되어 그 가치의 끝을 알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파격은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되지만, 처음엔 조롱과 비판이 자주 함께하게 됩니다.

비단 미술뿐 아니라, 어느 분야든지 창의적이고 새로움을 여는 작품이나 시도는

비슷한 경로를 겪게 되겠지요.


마네와 세잔의 예를 보듯이, 미래를 미리 볼 수 있는 통찰력과 주위의 어떤 어려움도

묵묵히 이겨나가는 뚝심이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힘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고, 자주 볼수록 더 잘 보이는 법이지요.


우리 삶을 더욱 윤택하고 풍요롭게 해주는 예술작품을 좀 더 가까이 하고

오늘 소개해 드린 이 책처럼 미술이나 음악 등을 쉽게 다가가게 도와주는

책들을 여유 있을 때 한 번씩 접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감사합니다.^^


BandPhoto_2016_09_20_13_20_47.jpg
BandPhoto_2016_09_20_13_20_50.jpg
20160920_132126.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