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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예술

<그림 속 경제학>

문소영

by 해헌 서재

<그림 속 경제학> 문소영

강 일 송

오늘 볼 책은 그림을 통한 경제학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그림과 경제학을 쉽고 재미있게 저자는 연결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오고 홍익대에서 예술학과 석사를 수료한 특이한 경력

의 소유자입니다.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장을 맡고 미술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이 책을 보다보면 저자의 박식함과 예술과 경제를 넘나드는 통합적인 마인드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경제학에서 배운 이성과 합리적 사고 문학과 미술에서 얻은 감성과 상상력이 그의

삶의 균형을 이루는 두 개의 축이라 하네요.

내용 중 몇 개의 그림을 예로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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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예술 작품에는 알게 모르게 그 시대의 상황이 녹아 들어가 있게 마련이다.

예술가의 뛰어난 감수성은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종교가 세상을 들여다보는 창인 시대가 있었다. 정치가 세상을 들여다 보는 시대가

있었다. 오늘날은 경제가 세상을 들여다 보는 창인 시대다.

모든 관심의 꼭짓점에 경제가 자리하고 있다.

물론 이 시대에도 구원과 믿음을 찾고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추구한다.

하지만 이전의 어느 시대와도 비교할 수 없이 부의 창출과 물질적인 풍요에 관심이

많다. 재테크에서 복지에 이르기까지.

첫 번째 그림을 한번 본다면,

19세기 화가 영국 낭만주의 풍경화의 거장인 윌리엄 터너(1775-1851)의 유명한

<전함 테메레르>이다. 해체를 위해 작은 증기선에 의해서 최후의 정박지로

이끌려 가는 범선이 테메레르인데 테메레르는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크게

활약한 영국 국민의 사랑받던 전함이었다.

세월이 흘러 낡은 데다가 증기선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1838년 해체의 운명을 맞게

되었다. 저물어 가는 옛 문명과 떠오르는 새로운 기계문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 그려졌다.

산업혁명이 최초로 영국에서 1780년부터 1840년까지 일어났으며 그 변혁의

동력은 바로 터너의 그림 속 증기선에 사용된 것과 같은 증기기관의 발명과

기술혁신이었다.

산업혁명은 곧 속도의 혁명이기도 했다. 증기기관으로 인한 운송속도의 혁명,

공장 기계 도입으로 인한 생산 속도의 혁명 뿐 아니라 분업으로 시간을 절약

하는데 따른 속도의 혁명까지 아우른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분업하면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애덤 스미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스미스는 고전 <국부론>에서 금,은 화폐를 축적하는 것이 부라고 생각한 중상주의

를 배격하면서, 부의 원천은 노동에 의한 생산이라고 했다. 그리고 부의 증진은

노동생산성의 개선으로 이루어지며, 노동생산성은 분업에 의해 개선된다고

하였다.

노동분업이 생기도록 한 원동력은 바로 자유로운 시장경제(free market economy)

이고, 개개인의 이기심이 경제행위의 동기가 된다고 한다.

또한 그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 즉 시장 메커니즘의 기능에 의해 조화되어서

궁극적으로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자유주의적 고전파 경제학은 산업혁명으로 인해 성장한 신흥 산업자본가들

에게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들이 기존의 지배층인 귀족과 지주 계급을

압도하면서, 중상주의적 보호와 통제 정책이 무너지고 자유 방임주의와 자유무역주의

정책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자본가와 임금노동자 계급이 사회의 중요한

두 축을 형성하면서 자본주의 사회가 성립한다.

두 번째 그림을 보자면,

그윽한 운치가 있는 이탈리아의 파도바에는 중세 후기 부자였던 스크로베니 가문의

개인 예배당이 남아있다. 지오토 디 본도네(1266-1337)가 전성기에 그린 보석같은

프레스코 벽화로 가득차 있는 곳이다.

이 곳에는 예수의 생애를 그린 그림이 남아 있는데, 예수가 무서운 눈빛으로 채찍을

휘두르며 두 남자를 때리려고 하고 있다.

오른쪽의 남자는 놀라 어쩔 줄 모르며 두 손을 올렸다. 반면 젊은 남자는 왜 나만

그래요? 하는 표정이다.

르네상스 화가이자 저술가인 조르조 바시리(1511-1574)는 최초의 본격적인 미술사

책으로 여겨지는 그의 저서 <미술가 열전>에서 지오토야 말로 중세 미술과 차별화

되고 르네상스 미술의 근간이 된 사실적인 묘사를 처음 도입한 화가라고 했다.

도대체 이 장면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예수에게 혼이 나고 있는 남자들은 가축상인과 환전상이다. 어떻게 신성한 성전

안에 이런 동물 장사꾼과 환전상이 진을 치고 있었던 것일까?

당시 유대인들은 정기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에 “흠 없는” 소, 염소, 양, 비둘기 등을

희생 제물로 바쳐 제사를 지내야 했다.

그런데 제물로 바칠 동물을 끌고 성전까지 오는 것이, 멀리 사는 사람들에게는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오다가 동물들이 다쳐서 “흠이 없어야 한다”는 규정에 맞지

않게 되거나 병들어 죽는 일도 생겼다. 그래서 성전 바로 앞에서 규정에 맞는

동물을 파는 상인들이 생겼다

또 유대인 성인 남성은 성전세를 정기적으로 내야 했다. 성전에서는 오로지 성전

반세겔 은화만 받았고 다른 종류 화폐는 받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유대인들이

외지에 살면서 로마 화폐를 비롯한 외국돈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성전 앞에서 외국 화폐를 성전 반세겔 은화와 바꾸는 환전이 성행하였던

것이다.

문제는 이들 환전상들이 높디높은 수수료를 받았고, 희생제물을 가진 장사꾼들도

마치 관광지의 행상처럼 바가지를 톡톡히 씌웠다는 것이다. 본래 비둘기는 소나

양을 바칠 형편이 안되는 사람들이 제물로 바치는 것이었는데 그런 비둘기조차

한 쌍당 금화 한닢까지 오르는 바람에 빈민의 등골이 휘는 지경이었다는 것이다.

상인들이 그렇게 값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첫째, 가격을 아무리 올려도 수요가

별로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재화와 서비스는 가격이

올라가면 수요가 줄어든다. 하지만 희생제물용 동물값을 올린다고 누가 감히

신의 불벼락을, 대제사장의 벼락을 각오하면서 안 사고 버틸 것인가?

제물용 가축과 성전세용 환전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가격변화에 대해 지극히

비탄력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갸격 상승을 제한할 수 있는 것은 상인들간의 경쟁이다. 누군가 저가 정책을 쓰면

가격이 내려갔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가격담합에 의하여 카르텔이 형성

되어 있었고 이것을 어기면 성전에서 퇴출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독점과 답합의 뒤에는 바로 “대제사장”을 비롯한 성전 관계자들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성전 안 상인들에게 독점적 지위를 부여하여 그 대가로 막대한 상납금

을 받아 챙겼을 것이다.

실제로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37-100)는 예수 그리스도 시대의 성전이 대제사장

“안나스”의 장터였다고 했다. 안나스 가문은 대를 이어 로마황제에게 뇌물을

바치며 장기간 대제사장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니 예수가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였고, 이는

성직자들이 앞장서서 독점과 담합으로 부당이익을 취하는 행태를 통렬히 비난

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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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접하는 명화들을 경제학적인 관점과 예술적인 관점을 적절히 조화하

면서 그 의미를 전하는 저자의 능력에 책을 읽으면서 내내 감탄을 하였답니다.

저자도 서문에서 “이 책은 미술과 정치경제적 변동, 그 저변에 깔린 경제학과 철학

의 흐름이 몇 겹의 고리로 연결이 되어 있는데, 명화에서 경제학 코드를 찾아

경제, 정치, 사회적 변화의 역사를 좀 더 유기적이고 종합적으로 이해해 보려고

한 통섭의 여정이었다“ 고 합니다.

모든 학문의 최종 목표가 “인간의 삶을 향상” 시킨다고 한다면, 결국 그 과정으로

서 경제학이나 미술이나 의학이나 과학이 다 같이 그 기능을 한다고 하겠지요.

그렇다면 경제학과 미술은 그 고리가 이미 존재를 할 것이고, 뛰어난 감수성의

예술가들은 그 고리를 파악하고 그들의 작품에 표현을 하였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자연스럽게 작품에 나타났을 것입니다.

오늘날 경제의 위상이 다른 분야를 압도하는 이 시대에, 명화도 감상하고 그 안에서

숨어 있는 경제학의 코드를 발견한 내용의 이 책을 읽은 것은 분명 의미가 있고

행복한 과정임에 틀림없습니다.

한 번 일독을 권해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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