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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Oct 10. 2016

<실패의 두 얼굴, Art of Failure>

위축과 당황

<실패의 두 얼굴, Art of Failure> 말콤 글래드웰
- “What the Dog Saw(그 개는 무엇을 보았는가)” 中

                            강 일 송

오늘은 역사상 가장 천재적이고 독창적인 저널리스트 중 하나라고 평가
받는 말콤 글래드웰(1963~)의 책 한권을 더 보려고 합니다.

이미 “티핑포인트”, “블링크”, “아웃라이어” 등으로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오른 그가 자신이 집필한 수백 건의 아티클 중의 이야기들을 모아서
발간한 책으로 “What the Dog Saw(그 개는 무엇을 보았는가)”를 보겠
습니다. 뉴욕타임즈 24주 연속 베스트셀러, 아마존 논픽션 베스트셀러
를 한 책인데 그중 실패의 이야기를 “위축”과 “당황”의 차원에서 멋지게
풀어쓴 내용입니다.

한번 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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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보트나의 어이없는 실수

1993년 윔블던 여자테니스 결승에서 마지막 3세트를 맞은 야나 노보트나는
절대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이제 한 포인트만 따내면 세트스코어는 5대1
이 되고 거기서 한 세트만 더 이기면 테니스 선수들이 열망하는 윔블던
우승을 쟁취할 수 있었다. 그녀의 상대는 슈테피 그라프였다.

그런데 갑자기 뜻밖의 상황이 전개되었다. 그녀의 첫 번째 서브가 네트에
걸렸던 것이다. 잠시 뒤 두 번째 서브는 더 엉망이었다.
어느 순간 그녀는 우승을 눈앞에 두었다는 사실을 의식한 것일까?
한 번도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린 것일까?
그녀는 문득 상대가 당대 최고 선수인 스테피 그라프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일까?

노보트나는 확실히 불안해 보였다. 정상급 선수가 아니라 다시 초보자 시절
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녀는 압박감을 견디지 못했다. 대체 노보트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매치 포인트에서 그라프는 도저히 받을 수 없는 강력한 오버핸드스매싱을
날렸다. 그것으로 경기는 끝났다.
노보트나는 충격을 받은 모습으로 네트로 걸어갔고 그라프는 노보트나의
뺨에 2번 입맞춤했다.

◉ 당황과 위축의 심리적 차이

인간은 압박을 받으면 대개는 흔들린다. 조종사들이 추락사고를 내고, 농구
선수는 슛을 놓치고 골프선수는 스윙을 망친다. 이 경우 우리는 당황했다거나
위축됐다고 말한다. 두 가지 말의 정확한 의미와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는 성공에 집착하는 시대를 살고 있고, 재능 있는 사람들이 난관을 극복
한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재능 있는 사람이 실패한 이야기를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우리가 어떤 게임을 할 때, 어떤 패턴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면 반응 속도
가 엄청 빨라진다고 한다. 이를 ‘명시적 학습,(Explicit Learning)'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미리 알려주지 않은 그룹도 무의식적으로 패턴을 배우는데, 이를
‘묵시적 학습(Implicit Learning)'이라고 부른다. 묵시적 학습은 의식 바깥에서
이루어진다. 이 두 가지 학습 방법은 뇌의 다른 부분에서 진행된다.

우리는 백핸드나 오버헤드로 공을 넘기는 방법처럼 새로운 내용을 배우면 의식
적이고 기계적인 사고를 통해 받아들인다. 그러다가 익숙해지면 묵시적 체계가
작동한다. 이때는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백핸드를 구사하게 된다.

그런데 압박을 받으면 때로 명시적 학습체계가 몸을 지배한다. 이때 우리 몸은
위축된다. 야나 노보트나가 경기를 망칠 때, 움직임이 초보자처럼 느리고
소심했다. 그 이유는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초보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야나 노보트나처럼 명시적 학습으로 돌아가 망치는 경우를 “위축”이라
표현한다.

당황은 위축과는 좀 다르다. ‘당황’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식 제한(Percep-
tion Narrowing)을 초래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한 가지 일에 의식이
고정이 된다.
항공기 추락 사고에서 표시등이 고장이 나서 랜딩기어가 내려갔는지 알 길이
없었다. 온통 랜딩기어에만 정신이 팔린 조종사들은 자동조종 장치가 풀렸
아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고, 결국 추락 사고를 내고 말았다.
눈에 보이는 것이 그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위축은 생각이 너무 많아 생기는 문제고 당황은 생각이 나지 않아 생기는
문제다. 또한 위축되면 본능을 잃고, 당황하면 본능으로 돌아간다.
겉으로는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것이다.

◉ 압박의 칼날

위축은 직관적인 판단에 어긋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노보트나는 훌륭한
교육과정을 거쳤으며 훈련을 게을리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경험은 그녀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자신이 얼마나 잘할 수 있을지에 신경 쓰는 사람은 고정관념의 압박을
받는다. 그러므로 더 열심히 노력하고 진지하게 임하라는 일반적인 조언은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위축의 경우 당사자보다 상황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노보트나가 위축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그녀를 구할 유일한 길은 방송 카메라를 끄고 VIP관람객
인 왕세자 부부가 자리를 뜨고 관중이 밖에서 잠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물론 스포츠 경기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위축은 스포츠 경기에서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핵심적인 요소다.
챔피언이 되기 위해서는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압박감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삶의 나머지 부분에도 그처럼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부진한 결과가 능력 부족이 아니라 압박감 때문일 수 있으며, 나쁜
학생은커녕 오히려 좋은 학생이기 때문에 부진한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그냥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1996년 마스터즈골프대회 초반 3라운드에서 그렉 노먼은 2위로 쫓아오던
닉 팔도를 월등하게 앞서 나갔다. 별명이 ‘백상어’인 그는 세계 최고의
골퍼였다. 마지막 날에 이르자 승부는 이미 결정된 것처럼 보였다.
팔도는 노면에 6차 튀진 채 마지막 라운드를 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명의 9번 홀에서 보기를 한 후, 3연속 보기를 하고 재난은
계속 되었다. 결국 18번 홀에서 길게 늘어선 갤러리 앞에 도착했을 때,
팔도가 4타가 앞서 있었다.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았던 팔도는 위축된 상대에 대한 예의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거둔 것은 진정한 승리가 아니었고
노먼이 당한 것은 진정한 패배가 아니었다.

경기가 끝난 후 팔도는 노면을 끌어안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냥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라고 속삭였다. 그리고 ”이렇게 되어 장말
안타깝군요. 미안합니다.“ 라고 덧붙였다. 이 말은 위축된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함께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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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실패의 두 얼굴인 “위축”과 “당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역시 말콤 글래드웰의 글은 흥미가 진진하고 날카롭습니다.

스포츠에서 대역전극이 펼쳐지는 경우는 많습니다. 야구도 9회 이후에 불가능한
차이를 역전시키기도 하고, 골프에서도 마지막 몇 개 홀을 남기고 무너지는 모습
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묘미 때문에 경기는 끝이 나봐야 안다는 말이 나왔겠
지요?

스포츠 뿐 아니라 시험에서도 예비시험은 잘 보다가 막상 본 시험을 보면 하얗게
아무 생각이 안나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 음악에서도 시험장에서 너무
떨어 악기연주나 노래를 평소보다 훨씬 못 부르는 경우 등 우리 주변에는 이런
일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오늘 저자는 이런 상황을 파헤칩니다. 명시적 학습과 묵시적 학습에 대한 내용은
상당히 의미가 깊습니다. 위축이 된 상황에서는 마치 갓 배운 초보처럼 변해 버리
는데 이때가 바로 명시적 학습 상태에 돌입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당황은 좀 달라서 한 곳에 매몰되어 다른 곳을 보지 못하는 상태를 말하네요.

이처럼 강한 압박감은 위축과 당황을 이끌어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실전에 강하기도 하고, 위기 상황에서 더욱 큰 능력을
발휘합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박인비 선수가 그랬습니다. 갖은 부상과 부진속에
엄청난 비난과 압박에 시달렸지만, 오히려 가장 좋았던 상태로 스스로를 돌려세워
수많은 선수들을 뒤로하며 초인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테니스의 노보트나나 골프의 그렉 노먼은 다 잡은 경기를 스스로
무너져 잃어버리지요. 문제는 여기에 대한 대책이 별로 없다는 데 있습니다.
타고난 유전적 성향이 필요하기에, 타고난 천재들이 있겠지요.

하지만 압박이 강한 상황을 설정하고 끊임 없이 학습하면서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는 것이 가장 큰 효과를 발휘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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