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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Nov 15. 2016

<금융으로 본 세계사>

제1세대 세계화폐, 네덜란드의 차용증

<금융으로 본 세계사> 천위루,양천
-- 제1세대 세계화폐, 네덜란드의 차용증

                                   강 일 송

오늘은 금융을 통해서 세계의 역사를 살펴보는 책을 한 권 보려고 합
니다. 역사를 들여다보는 창은 다양하다고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다. 프레임을 달리하면 다양한 모습의 역사가 보입니다.
예를 들어, 커피를 통해 본 세계사, 향신료를 통해 본 세계사, 홍차의
세계사, 유목,농경의 시각으로 본 세계사 등등, 수많은 창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 금융을 통해 본 세계사 책이고, 제1세대 세계화폐라는
네덜란드의 차용증에 얽힌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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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초반 스페인의 통치를 받던 네덜란드는 몇 개의 행정구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자원도 없는 비좁은 땅이었던 이곳은 역사 대대로 여러
국가의 지배를 받아왔던 볼품없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세계 역사 최초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세운 나라가 바로 네덜란드였다.

자원이 많다고 해서, 군사력이 막강하다고 해서 강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강국이 되는 비결은 무엇일까? 네덜란드를 통해 살펴보자.

지리상의 대발견 이후 세계무역의 중심은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옮겨왔다.
서유럽의 주요 하천은 대부분 네덜란드 부근에서 바다로 빠져나갔다.
이곳은 발트해, 북해, 지중해로 통하는 교통 요충지였다.
네덜란드 도시 안트베르펜, 겐트, 브뤼헤 등은 무역 중심지로 발돋움했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기 전 네덜란드는 이미 발트해 운송업의 75%를
통제하고 있었다. 선원의 숫자만 해도 스페인, 영국, 프랑스를 합쳐 놓은
것보다 많았다. 네덜란드는 비록 스페인 땅의 일부였지만 이곳의 주민들은
왕권을 우습게 여겼다. 또한 스페인은 가톨릭이 국교인데 반해 네덜란드는
신교를 믿었다.

네덜란드는 세계 역사상 가장 큰 거대 시장으로 유럽 전체의 상선들이 모두
이곳을 지나갔다.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복종을 하지 않았기에 왕실의
지원을 받을 수 없어서, 세수 확보를 위해 소상인들을 양성할 필요가 있었
다. 다시 말해 네덜란드는 스페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평한 행정
체제를 이루고 사회 각계각층의 재산을 보장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길드가 아니라 유럽 각지에서
모여든 소상인이었다. 소상인으로 인해 교역 방식과 품목이 다원화될
수 있었고, 장사꾼들은 이른바 ‘교역 원가’를 절감할 수 있었다.

소상인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다섯 명의 네덜란드 공작은
새로운 교역 방식을 창안했다. 표준화된 교역소를 설립한 것이다.
교역소 안에는 다양한 상품의 샘플을 전시하고 상품의 정가, 교역 시간,
장소, 지불 방식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1609년 암스테르담 증권 거래소가 설립되었다. 세계 역사상 최초의 증권
거래소이자 제 1세계 금융의 중심이었다. 이때부터 진정한 서유럽의 금융
업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는 은광이 없는 데다 국왕과의 대립관계에서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없어 돈이 매우 궁핍했다. 이런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해 무역 발전에 의존
할 수밖에 없었다.
도시에는 유럽 각지에서 몰려든 부유한 상인들로 붐볐는데, 당시 국제무역을
할 때 상인들은 상품을 인도받고 곧장 대금을 지불하는 대신 차용증을
썼다. 이 차용증은 네덜란드의 재정담보가 되었기 때문에 신용도가 매우
높았다. 이로 말미암아 차용증은 화폐 대신 유통되었고, 이로써 유럽
최초의 차용증 시장이 형성되었다. 국제무역의 발전에 따라 점차 유럽
전체에 유통되기 시작했고, 마침내 수표로 발전했다.

16세기 후반에 이르러 네덜란드는 수표 교역이 집중되었고, 대금업자와
차용인의 정보도 빠른 속도로 흘러들어왔다. 덕분해 지중해 지역의 은행
들이 앞다퉈 네덜란드로 옮겨왔다.
1609년 암스테르담 은행이 탄생했다. 암스테르담 은행에서 발행하는 은행
권은 전 유럽에 유행하는 화폐가 되었다. 유럽 최초의 종이 화폐가 등장한
셈이었다. 1640년 암스테르담은 전 세계 중금속 무역 중심이 되었다.
이후 암스테르담 은행은 국제환율 중심이 되었고, 이로써 국제무역 중심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되었다.

금융력은 17세기 네덜란드의 대외 확장을 효율적으로 지원해주었다.
막강한 자금력은 금세 통제력으로 변했다. 중국과 영국, 프랑스, 스페인은
네덜란드의 창고 역할을 하게 되었다. 최대 이익은 대부분 네덜란드 상인
이 차지했다.

16세기 후반 네덜란드는 마침내 스페인 왕실의 통제로부터 벗어나기 시작
했다. 왕실의 반응은 전쟁 통보였다. 무적함대가 엘리자베스 1세에 의해
모조리 불태워진 뒤 해군 주력 부대가 네덜란드에 있다는 사실을 합스부르크
왕조는 까먹고 있었다.

전쟁의 결과 북방의 일곱 개 행정구역이 독립하고, 1588년에는 네덜란드
공화국이 정식으로 성립되었다. 이어서 네덜란드는 남부의 대외무역을
봉쇄했다. 이로써 남방 무역은 점차 쇠락하게 되었다.
덕분에 암스테르담은 다양한 지불 시스템의 핵심 역할을 하며 세계금융
중심으로 1710년까지 번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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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금융을 통해 본 세계사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특히 작지만 강한 나라, 네덜란드가 어떻게 세계 무역의 중심지로 우뚝 서게
되었는지, 차용증이 수표로 변해 무역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는지 살펴보았
습니다.

네덜란드는 자원도 없고, 땅도 좁고, 강국들에 의해서 지배받던 볼품없는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글로벌한 마인드로 무장하여 운송업으로 시작
하여 소상인들을 육성하게 되고, 표준화된 교역소를 만들게 됩니다.
세계 최초의 암스테르담 증권 거래소가 들어서고, 국제 무역의 중심, 국제 환율
의 중심으로 자리잡습니다.

동양의 진출도 빨라서 일본에게 서양문물을 전파한 것은 네덜란드의 공이
컸습니다.
1600년대에 나가사키의 데지마섬에 포르투갈에 이어 정착한 네덜란드는
일본의 대외 창구 역할을 맡았습니다. 서양 문물의 받아들이는 창구로 네덜
란드가 역할을 한 것이었지요.
1635년 제주도에 표류한 네덜란드인 하멜도 일본으로 향하던 중 폭풍우를
만나 조선에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물론 세계 금융의 중심을 이후에는 영국으로 넘겨주었지만, 네덜란드의
예에서 우리는 자원이 없고, 국토가 좁고, 국력이 강하지 않아도 충분히
글로벌한 마인드와 전략을 갖춘다면 충분히 세계 역사를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다른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연속해 보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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