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복, The Conquest of Happiness>
-- 버트런트 러셀
강 일 송
오늘은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20세기의 철학의 대가로부터 들어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버트런트 러셀(1872-1970)은 영국의 철학자이자, 수학자, 과학자
로서, 철학, 수학, 과학, 역사, 교육, 윤리학, 사회학, 정치학 분야에서
40권 이상의 책을 쉬지 않고 출간할 정도로 탁월한 능력을 보여 주었
습니다.
한번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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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만났던
행복한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물론 중간 단계가 있긴 하지만 행복에는 두 종류가 있다.
그것은 분명한 행복과 공상적인 행복, 또는 동물적 행복과 정신적 행복,
또는 심적(heart) 행복과 지적(head) 행복이다.
나는 소년 시절에 행복에 취한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우물 파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엄청나게 키가 크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근육이 강한
그는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라서, 1885년 국회의원 선거권을 갖게 되었
을 때 처음으로 그러한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행복은 지적 원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행복은 육체적
정력, 충분한 일감, 또는 도저히 파내지 못할 것 같은 암석의 장애를
극복하는 일 등에 바탕을 둔 행복이었다.
우리 집 정원사의 행복도 같은 종류의 것이다. 그는 일년 내내 토끼와
전쟁을 치르는데, 늘 런던 경시청이 볼세비키에 대해 하는 말과 똑같은
말을 한다. 즉 토끼는 불가사의하고 음흉하며 사납고 토끼와 마찬가지로
교활한 수단에 의해서만 토끼한테 대항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매일 저녁 토끼를 잡는데, 70이 넘었지만 하루 종일 일하고 16
마일의 언덕길을 자전거로 왕복한다. 그러나 환희의 샘은 마르지 않는데
환희를 공급하는 것은 바로 ‘그 토끼들’이다.
현대 사회의 보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지식층 중에서 가장 행복하
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과학자이다. 과학자 중 가장 탁월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 감정이 단순하고 그들이 하는 일에 아주 만족하고 있기 때문
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즐거움은 어느 것이든 존중되어야 한다.
내 경우를 말한다면, 나는 강을 즐기고 있다. 볼가 강을 따라 내려가거나
양자 강을 따라 올라갈 때 즐거움을 얻었고, 아마존 강과 오리노코 강에
가보지 못한 것을 대단히 후회하고 있다.
그러나 도락(道樂)이나 취미는 대부분의 경우, 근본적인 행복의 원천이
아니라, 아마도 현실을 도피하거나 직면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고통을
잠시 잊는 수단일 것이다. 근본적인 행복은 무엇보다도 이른바 인간과
사물에 대한 우호적인 관심에 달려 있다.
인간에 대한 우호적인 관심은 깊은 애정의 형식이지만, 욕심이 강하고, 소유
욕이 강하고, 언제나 반응을 요구하는 그런 형식은 아니다. 후자의 형식은
오히려 불행의 원천이다.
행복을 안겨주는 관심은 사람들을 관찰하기를 좋아하고 자기가 관찰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징으로부터 즐거움을 맛보고, 접촉하는 사람들을 지배
하거나 또는 그들로부터 찬양을 받기를 원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에게
흥미와 즐거움을 누릴 기회를 주기를 바라는 관심이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진정으로 이러한 사람은 행복할 것이며 그는 또한 호혜적인
친절을 받을 것이다.
행복한 사람의 가장 보편적이고 분명한 특징 중 하나는 “열의”이다.
삶이라는 성찬 앞에 앉은 사람들은 삶이 제공하는 여러 가지 좋은 일에
대해 동일한 태도를 갖는다. 행복한 사람은 건강한 식욕을 갖고 음식을
즐기며 적당히 먹는 사람과 같다.
축구경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그만큼 폭이 넓다.
독서를 즐기는 사람은 훨씬 더하다. 독서의 기회는 축구 구경의 기회보다
더 잦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물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질수록 행복의
기회를 더 많이 갖게 되고 또한 그만큼 운명의 지배를 덜 받게 된다.
행복한 사람은 객관적으로 사는 사람이자 자유로운 사랑과 폭넓은 관심
을 가진 사람이며 이러한 사랑과 관심을 통해, 그리고 다음에는 그의
사랑과 관심이 다른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통해 자신의 행복을 확보하는 사람이다.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행복의 유리한 원인이지만 사랑을 요구
하는 사람이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자를 받기 위해 돈을
빌려주듯이 계산을 한 끝에 사랑을 주려고 하는 것은 무익하다.
계산된 사랑은 사랑이 아니며 사랑을 받는 사람도 진정한 사랑이라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행복의 비결은 다음과 같다.
가능한 한 폭넓은 관심을 가져라. 그리고 가능한 한 당신이 흥미를 가지
고 있는 사물이나 인간에 대해 적대적이기보다 우호적인 반응을 보여라.
인생에 대해 열의를 가지고 따뜻한 사랑을 주고받으며, 원만한 가정과
헌신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있는 한, 인간은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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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세기의 대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버트런트 러셀 경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았습니다.
그의 경력을 보자면 화려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 시대의 천재들은 한 가지
분야를 넘어서서, 전혀 다른 분야까지 탁월한 학문적 경지를 보여줍니다.
철학자이면서, 수학에 대한 뛰어난 저술을 하고, 또한 역사학, 사회학,
정치학 등 그의 발이 닿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오늘 그의 글은 “행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제목을 보자면, 행복의 정복입니다. Conquest, 즉 정복을 말하는데,
서양적인 사고관이 잘 나타난 제목이라 생각합니다. 아마 동양에서
행복에 관한 책을 썼다면, 아마 “행복의 성취”, 혹은 “행복의 달성”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서양적인 사고와 동양적 사고는 이 지점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러셀경은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관심과 관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계산된 관심이 아니고 진심으로 타인을 위하는
관심을 가지고, 주변의 사물과 사람에 우호적인 태도를 유지하라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행복과 관심에 대한 연관성은 많이 듣는 이야기는 아닌데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진지하고 진정한 관심을 가질 때 행복의 기회는
늘어나고 운명의 지배를 덜 받는다고 합니다.
행복에 대한 담론은 서점에 가면 넘쳐 납니다. 하지만 이 시대의 사람이
아닌 19-20세기를 걸쳐 살았던 대 지성의 이야기는 조금 색다르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삶에 있어서 주위 사람과 사물에 따뜻한 관심을 가지고, 열의를 가지고
일에 임하며, 따뜻한 사랑을 가지고 가정과 일에 헌신하는 것,
이것이 대학자의 행복에 대한 조언이었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