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 中 <1>
<‘좋아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고쿠분 고이치로
---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 中 <1>
강 일 송
오늘은 인간의 근원적 고통을 정면으로 다룬 철학서로 일본의 ‘기노쿠
니야 올해의 인문대상’을 받은 책입니다.
저자인 고쿠분 고이치로(1974~)는 도쿄대학 총합문화연구소에서 박사학
위를 취득하고 다카사키경제대학에서 준교수로 재직하며 철학을 가르
치고 있다고 합니다. 주요 연구주제는 스피노자를 비롯한 17세기 철학
과 프랑스 현대사상이며 <스피노자의 철학>, <들뢰즈의 철학원리>,
<다가올 민주주의> 등 여러 권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 첫 번째 내용으로 “좋아하는 것”이란 무엇인지 한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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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에는 여러 가지 대립이 있었고, 그 대립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비극을 낳았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풍요로움을 목표로
노력해왔다는 사실 역시 인정해야 할 듯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해할 수 없는 역설이 드러난다. 인류가 지향한 풍요
로움이 달성되면 인간은 거꾸로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은 1930년에 <행복론>이란
저서에서, 20세기 초반에 유럽에는 이미 많은 것이 이루어졌다. 앞으로
젊은이들이 고생스럽게 만들 세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따라서 젊은이들은 그다지 해야 할 일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불행하다. 이에 비해 러시아와 동양은 아직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힘써야 할 과제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서 젊은이
들은 행복하다.
만약 러셀의 말이 맞다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상황인가. 사람들은
더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해왔다. 그런데도 풍요로움이 실천
되면 도리어 불행해진다니.
국가와 사회가 풍요로워지면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여유가
생긴다. 금전적인 여유와 시간적인 여유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또한 생존을 위한 노동에 모든 시간을 할애
할 필요가 없어 한가함을 얻게 된다.
몇 년 전 타계한 경제학자 존 갤브레이스(1908-2006)는 20세기 중반인
1958년에 쓴 <풍요한 사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대인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 의식할 수 없게 되었다.
광고와 세일즈맨의 말에 끌려서 처음으로 자신의 욕망이 확실해진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광고회사에 의해 배우는 이런 상황은 19
세기 초반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던 일이다.
그가 말하는 ‘풍요한 사회’, 즉 고도 소비사회에서는 공급이 수요를 앞선
다. 아니 공급하는 쪽이 수요를 만들어낸다. 말하자면 생산자가 소비자
에게 “당신이 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라고 권해서 사게끔 하는 것이다.
욕망은 생산에 의존하고, 생산은 생산에 의해 충족되어야 할 욕망을
만들어낸다.
풍요한 사회, 즉 여유있는 사회에서 여유를 얻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위해 사용한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은 ‘바라고는 있었지만 이루지 못했던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것이다. 애초에 우리에게는 여유를 얻은 순간 이루고 싶은 무엇
인가가 있는 것일까?
조금 더 관점을 넓혀보자.
20세기 자본주의의 특징 중 하나는 문화산업이라는 영역이 아주 커졌다는
것이다. 20세기 자본주의는 새로운 경제활동 영역으로 문화를 발견했다.
이 시기에 문화 영역이 대중에게 폭넓게 개방되면서, 대중을 대상으로
작품을 조직적으로 만들어내어 대량으로 소비하게 함으로써 이익을 창출
하는 방법이 확립되었다.
현대에는 문화산업이 지배적인 성격을 드러내며, 제작 프로덕션이 소비자의
감성 그 자체를 먼저 지배한다고 한다.
인간의 주체성은 인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산업에 의해 미리 준비되는 것이다.
산업은 주체가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먼저 알아차리고, 미리 수용자에게
맞춰 결정해놓은 것을 제시한다.
즉 “이런 것이 바로 즐거움입니다.” 라는 이미지와 함께 ‘즐거운 것’을 제공
한다.
자본주의가 전면적으로 전개되면서 적어도 선진국의 사람들은 여유로워졌고
한가함을 얻었다. 그러나 한가함을 얻은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알지 못한다. 무엇이 즐거운 것인지 모른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자본주의는 이 틈을 파고든다. 이전에는 노동자의 노동력 착취를 이야기
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노동자의 한가함이 착취되고 있다.
정보화가 진행되고 인터넷이 보급된 오늘날, 한가함의 착취는 자본주의를
끌어가는 거대한 힘이다.
왜 한가함은 착취되는 것인가? 인간이 지루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한가함을 얻었지만, 한가함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모른다.
그 상태로 한가함 속에서 지루해지고 만다. 그러므로 제공된 즐거움,
준비되고 마련된 쾌락에 몸을 맡기고 안도감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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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본의 독특한 젊은 철학자의 책을 한번 보았습니다.
저자는 자본과 소비가 주가 되는 현대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먼저 러셀의 <행복론>을 들어서 풍요로움을 얻었을 때, 오히려
불행해지는 상황의 역설을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은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무한히 행복할 것 같지만 다시 예전의 낮은 행복의 정도로 돌아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또한 여유가 생기면 오히려 노동의 착취가 아니라 한가함의 착취가 이루어
진다는 관점은 아주 새롭습니다. 인간은 진정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좋아
하는 것을 잘 알지 못하고 자본주의에 의한, 문화산업에 의한 생산자의
의도에 맞춘 이미지를 소비합니다.
인간은 수십만 년 동안 늘 불안한 삶의 터전과 불확실한 음식의 공급을
경험하여 왔기에, 최근 넘치는 식단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비만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마음도 불안과 삶의 불안정성으로 여유가
없다가 처음으로 한가함을 접하자 이 한가함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아무런 경험이 없었습니다. 이 틈을 현대 자본주의는 타고 들어옵니다.
생산자의 의도에 의한 이미지의 대량 생산과 광고로 인한 부추김 등으로
결국 대중은 이러한 의도된 이미지를 소비하게 되지요.
다음에는 연이어 한가함과 지루함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 정착문화
와 유목문화에 대한 담론을 전개할까 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