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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Dec 07. 2016

<인류의 유목생활과 정착혁명> 고쿠분 고이치로

<인류의 유목생활과 정착혁명> 고쿠분 고이치로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 中 <2>.

                               강 일 송

오늘은 “좋아하는 것이란 무엇인가”에 이어 연작으로 글을 올립니다.
스피노자 철학에 심취한 학자인 저자는 지난 편에서 현대인의
좋아하는 것이 문화산업의 생산자에 의한 개입과 의도로 소비자로서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았었습니다.

오늘은 연이어, 문명이 발달하면서 어떻게 한가함과 지루함이 생겨
났고 정착문화가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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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루함과 역사의 척도

지루함의 기원을 생각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대개 지루함이
인류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 비교적 새로운 현상으로 다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지루함은 많은 경우에 ‘근대’와 결합
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관점에는 허점이 있다.
좀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가서 수천 년, 수만 년에 걸쳐서 사고하는 것이
필요하고 인류사의 관점이 필요하다.

◉ 인류와 유목생활

인류의 초기에는 그다지 크지 않은 집단을 이루며 일정한 범위에서 이동
하면서 살아왔다. 아무리 쾌적한 장소라고 해도 한곳에 오래 머물면
황폐해진다. 먹을거리는 고갈되고, 배설물로 더럽혀진다. 그러나 빈번
하게 이동하면 환경의 과도한 오염을 방지할 수 있다. 오염된 환경은
금세 원래대로 회복되므로, 시간이 흐른 후 다시 그곳으로 돌아오면 된다.

이렇게 이동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유목생활이라고 한다. 유목생활은
고차원의 이동 능력을 발달시켜온 동물에게는 살아가기 위한 기본 전략
이었다. 이러한 유목생활의 전통은 인류에게도 계승되었다.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대규모 사회를 이루지 않으며, 낮은 인구 밀도를
유지하고, 환경을 황폐화시키지 않은 채 수백만 년을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활양식이 크게 변했다. 인류가 한곳에 계속 머무르는
정착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약 1만 년 전의 일이다. 인류는 1만 년 전에
중위도 지역에서 정착생활을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 1만 년이라면 한 세대를 20년으로 보았을 때, 불과 500세대 전에
지나지 않는다. 즉, 부모를 500명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1만 년전에
도달하는 것이다.
두발 보행을 하는 인류가 늦어도 400만 년 전에 출현했다고 하니 정책
생활은 아주 최근의 일이었다.
따라서 인류의 육체적, 심리적, 사회적 능력과 행동양식은 유목생활에
적합했으며, 그렇기에 몇백만 년 동안 유목생활을 지속해왔다고 생각하는
편이 타당할지도 모른다.

◉ 정착생활과 식량

유목생활자는 자연에서 채집해서 식량을 확보한다. 물론 한곳에서는 한계
가 있기 때문에 식량이 부족해져서 생활 터전을 옮긴다.
사실 수백 미터를 이동했다고 하니 그리 먼곳을 옮겨 다닌 것은 아니었다.
유목생활을 한다면 식량에 어려움을 겪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정착
생활을 함으로 식량으로 인해 곤란함을 겪는다. 인간은 이내 주위를 오염
시키고 자원을 모조리 고갈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착생활자는 어떤 수단으로든 식량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때 중요
한 것은 ‘저장’이다.

◉ 왜 1만 년 전, 중위도 지역이었을까?

왜 1만 년 전 중위도 지역에서 정착이 시작되었을까?
고고학에 의하면 빙하기부터 후빙기에 걸쳐 일어난 기상변동과 이에 따른
동식물 환경의 변화가 원인이 되었다.
인류가 원래부터 살고 있던 열대환경을 떠나 중위도 지역으로 진출했던
것은 약 50만 년 전으로 보인다. 중위도 지역에는 당시 한랭 기후였기
때문에, 초원이나 듬성듬성한 숲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인류는 사냥
기술을 발달시켰고, 주로 창을 사용해 말과 소, 순록, 코뿔소, 매머드,
동굴 곰 같은 동물을 사냥해서 생활했다고 한다.

그러나 빙하기가 끝난 약 1만 년 전, 온난화가 진행되어 중위도 지역이
삼림화되면서 이런 생활 전략은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된다. 온대 삼림이
확대되면서 그때까지 사냥했던 덩치 큰 동물의 수가 감소했다.
수렵이 힘들어지자, 식물성 부재료나 어류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식물성 식재료나 어류는 저장이 필수조건이었다. 그리고 저장은 이동을
방해한다. 저장이라는 필요에 의해 인류가 정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결론에 이를수 있다.

◉ 정착으로 인한 커다란 변화

인류가 대부분의 시간을 유목을 하면 살아오다가 정착을 하게 되자
완전히 새로운 과제들이 부과되었다. 인류의 육체적, 심리적, 사회적
능력과 행동 양식은 모두 유목생활에 맞춰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정착화는 인간의 능력과 행동 양식 전체를 새롭게 편성한 혁명적인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 아주 커다란 사건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일어났다.
농경과 목축의 출현, 인구의 급속한 증가, 국가와 문명의 발생, 산업
혁명에서 정보혁명까지 매우 단기간에 일어났다.

◉ 사회적 불평등의 발생

유목생활에서는 많은 재산은 지니고 이동할 수 없다. 아니 원래 많은
재산을 가질 필요가 없다. 식재료는 주위에서 채집하면 되고, 도구는
빌려서 쓰곤 한다.
이에 반해 정착사회는 식량의 저장을 전제로 한다. 이는 사유재산이
라는 사고방식을 낳는다. 또한 저장은 당연히 저장량의 차이를 낳고,
경제적인 격차가 발생한다. 그리고 경제적 격차는 결국 권력 관계를
만들어낸다. 재화를 써서 사람을 고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재력이 있는 자는 정착 집단의 권력자가 된다.
그러면서 도둑질과 같은 범죄도 발생한다. 그래서 사법 체계가 한층
더 필요해진다. 즉 법질서는 문명의 척도 중 하나이지만, 이는 정착
이라는 현상과 강하게 결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 정착에 의한 지루함의 발생

유목생활에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서식지에서 오감을 갈고닦아 주위를 탐색한다. 어디에서 먹을 것을
얻을 수 있을까? 물은 어디에 있을까? 위험한 짐승은 없을까?
잠자리는 어디에 마련할까? 등등
이런 적응에 의해 “사람이 가진 우수한 탐색 능력은 충분히 작동한다.
신선한 감각에 의해 모인 정보는 대뇌의 무수한 신경세포 사이를
격렬히 이동할 것이다.”

그러나 정착자가 되어 항상 변하지 않는 풍경을 경험하다보면, 감각
을 발휘할 힘을 서서히 잃는다. 그래서 쓸데없어진 탐색 능력을
집중시켜 대뇌에 적당한 부담을 줄 만한 기회를 찾아야 한다.
이걸 본다면, 정착 이후의 인류가 왜 그렇게 고도의 공예 기술과
정치경제 체계, 종교 체계와 예능 등을 발전시켰는지 납득할 만하다.
인간의 남아도는 심리 능력을 흡수할 만한 다양한 장치와 기회를
스스로 만들었던 것이다.

정착민은 물리적인 공간을 이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심리적인 공간을
확대하고 복잡하게 만들어 그 속에서 ‘이동’함으로써 자신이 지닌 능력
을 발휘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루함을 피할 기회를 만드는 것은 정착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인 동시에, 그 이후 인류사를 다르게 전개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른바 “문명”이 발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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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난번에 이어서 인류가 한가함을 얻게 되고 지루함을 가지게
되는 과정에 대한 철학적 담론을 들어 보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우리의 선조들이 정착문화를 어쩔수 없이
받아들이게 되면서 고도의 창조적인 심리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상실하며
이를 다르게 활용하면서 "문명"을 발생시키게 되었다는 논지였습니다.

이전까지의 우리가 흔히 듣던 이론과 다른 방향으로 정착생활의 문화를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유목생활의 식량의 채집과 사냥
의 고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농경을 하여 정착문화를 발달시켰다는
관점이 지배적이었는데, 오히려 중위도 지역의 빙하기 이후 자연의 변화
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정착을 하게 되었고, "저장"이라는 방식이 생겨나
부의 불평등, 범죄의 증가,  권력의 등장, 국가와 도시의 생성 등이 일어
났다고 합니다.

어찌 되었건 두 이론 모두 "정착문화"와 "농경의 시작", "도시의 발달" 등은
아주 단시간에 인류의 생활 패턴을 이동하는 유목문화에서 정착한 문화로
바꾼 이후의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수백 만 년간의 유목문화의 패턴에 익숙해진 인류의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본능은 너무나 뿌리깊어서, 단지 1만 년 밖에 겪지 못한
세월의 정착생활은 아직도 익숙하지 않고 그 본능이 틈만 나면 불쑥불쑥
솟아오릅니다.

그래서 이러한 관점의 심리학 책 중 "양복을 입은 원시인"이라는 책도
있었었지요.  현대인이 양복을 입고 세련된 사고를 하는 것 같지만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면 깊이 내재된 유목생활의 본능을 보게 됩니다.

"지루함", "한가함"이란 키워드로 인류의 문명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관점의 철학적 재미를 보여준 흥미로운 책이었네요.

오늘 하루도 행복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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