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純白)에의 동경
<구원의 미술관> 강상중
-- 순백(純白)에의 동경
강 일 송
오늘은 예술에 대한 책을 한 권 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강상중(1950~)은 일본 규슈에서 재일 한국인 2세로 태어나 폐품
수집상을 하던 부모 아래에서 자랍니다. 와세다 대학에 다니던 1972년
한국 방문을 계기로 자신의 존재를 새로 인식하고 일본 이름을 버리고
‘강상중;’이라는 본명을 쓰기 시작합니다.
재일 한국인으로 사회 진출이 어려워 독일 유학을 떠나 뉘른베르크 대학
에서 공부하고, 재일 한국인 최초로 도쿄대학 정교수가 됩니다.
그는 비판적 지식인으로 밀리언 셀러 “고민하는 힘”을 비롯한 많은 책
을 저술하였고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합니다.
오늘 책 “구원의 미술관”은 2009년부터 2년간 일본 NHK 방송의
<일요 미술관>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만난 예술 작품에서 출발하여
그림 속에서 만난 ‘구원’의 의미를 독자들에게 전해주려 지은 책이라
합니다.
그중 “순백에의 동경” 파트를 한 번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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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 꽃, 하얀 옷, 하얀 그릇
백(白), 이것은 색인가, 아니면 색이라는 것을 초월한 색이라 할 수
없는 색일까?
흰 옷, 흰 꽃 그리고 흰 그릇, 저는 조선의 백자를 아주 좋아합니다.
한반도에서는 고려(918-1392) 말기 무렵부터 백자를 만들기 시작
했습니다. 백자는 순도 높은 백토를 사용하여 투명한 유약을 발라 고온
에서 구운 도자기인데, 처음에는 청록색을 띈 청자와 함께 만들어졌
다고 합니다. 그러나 청자는 점점 쇠퇴합니다.
하얀 바탕 위에 산화철로 된 안료로 그림을 그려 넣은 철화백자를 많이
만들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색과 형태가 심플한 순백의
도기만이 사랑받게 되었습니다.
도예의 전통을 가진 나라들은 많지만 이렇게까지 하얀 도자기를
사랑한 나라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너그러움
조선백자의 매력을 세상에 알린 사람으로는 일본의 민예 운동가이자
미술 평론가, 철학자인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가 유명합니다.
그는 소박하고 간소한 데다 고상함까지도 함께 지닌 조선백자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는 조선백자를 '조선 민족의 비애의 미'로 평했다고 하는데 저는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는 평가로, 이후 독일에 가게 되면서 조선백자
에 대하여 더 나아가서 백이라는 색에 대해 더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독일의 도자기 하면 마이센(Meissen)이지요. 그 역사는 18세기 초엽
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얀 황금'이라 불리던 동양의 도자기를
동경한 작센 공국의 한 제후가 연금술사를 고용하여 제작을 명한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마이센에 왕립 도자기 공장이 만들어지고 장인
들은 중국의 경덕진, 조선의 백자, 일본의 가키에몬 등을 참고하여
절차탁마를 거듭한 끝에 멋진 도자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제가 마이센 도자기를 실제로 보고 놀란 것은 도자기 표면의 비단과도
같은 아름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어떠한 불순물도 허용하지
않고 철저하게 미립자 수준까지 갈고닦은 듯한 섬세함이었습니다.
물건을 만들 때는 타협하지 않는다는 독일인다운 장인 정신의 정화
로구나 싶어 감탄했습니다.
그러나 마이센 사람들은 그 빈틈없이 갈고닦인 '백' 그 자체를 사랑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 위에 화려하고 선명한 그림을
덧붙이거나 고도의 장식적인 조각을 하는 등, 잘 꾸며진 장식을 사랑
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이센이 대단하다고는 생각하면서도 어딘가 제 심금
을 울리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마주하고 말았습니다.
탁 트인 무도회장에서 드레스와 턱시도 차림으로 춤을 추는 듯한
마이센과 비교하면 조선백자는 서민의 그릇입니다. 장식성도 없을
뿐더러 그중에는 좀 뒤틀리거나 색이 고르지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예를 들면, 조금 실수를 하더라도 용서해줄 듯한 대범한 너그러움
이 있다고나 할까요.
독일에서 돌아와 저는 몇 번이나 교토의 고려 미술관이나 서울의
국립 중앙박물관 등으로 발걸음을 옮겨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습니다.
마이센의 자기처럼 순백도 아니고 살짝 두툼한 느낌에 여기저기
균열이나 구멍 같은 것도 보이지만, 조선의 백자들은 '아이고 잘왔소'
하는 얼굴로 저를 맞아 주었습니다.
어딘가 빈 곳이 있는 듯한 조선백자가 저는 좋습니다.
★ 모든 것은 백(白)으로
한국에서는 경사 때도, 조사 때도 흰 옷을 입습니다. 이들에게
흰색은 기쁨이나 슬픔을 초월하여 모든 것이 끝까지 치달았을 때
의 색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상중에는 검은색만
입도록 정해져 있고 흰색은 피합니다.
회화에서도 그러합니다. 예를 들면 19세기 프랑스에서는 인상파
가 등장한 이후 아틀리에를 나와 야외의 햇빛 아래에서 붓을 드는
화가들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더 많은 빛을, 더 많은 빛을'이라면
서 빛을 추구하던 그들이 사용한 기법은, 야단스러울 정도로 극히
채도가 높은 색들로 꽉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떨어져서 바라
보면 정반대입니다. 오히려 점점 밝아지고 눈부신 하얀 빛이
넘쳐 흐르는 세계가 되었습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색을 극한까지 추구하면 한없이 흰색에 가까우
집니다. 반짝이는 빛이 되는 것이지요.
★ 공허가 아닌
모든 색을 다 써서 그것이 극한이 되었을 때 흰색이 된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광대무변(廣大無邊)'이라는 말이 가장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광대무변이라는 것은 기쁨도 슬픔도 경계 없이 서로 녹아들어
하나가 되는 세계, 사람의 마음이 그대로 펼쳐져 광활한 우주에
이어지면서 자신과 타인의 경계가 없어지는 세계이지요.
그런 경지로 우리를 이끄는 색깔이 흰색입니다.
한국에서는 기쁨도 슬픔도 흰색으로 드러납니다. 흰색은 시작인
동시에 종말을 표현하고, 탄생인 동시에 죽음을 품고 있습니다.
이것이 광대무변한 백의 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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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미술에 관한 책을 보았습니다.
저자인 강상중교수는 재일 한국인으로서 자기 정체성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하고 한국 이름을 얻은 지식인입니다.
한국인 최초로 도교대학 정교수가 되고, 많은 책을 저술하고 베스트
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르기도 합니다.
그러한 그가 전공과는 다르게 미술에 대한 조예를 보이며, NHK 일요
미술관이라는 프로그램까지 진행합니다.
그가 오늘 보여준 흰색에 대한 미학은 조선의 백자와 독일의 마이센
도자기, 그리고 한국미까지 이릅니다.
흰색은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색입니다. 이른바 백의민족이지요.
저자의 말처럼, 우리 민족은 기쁜 경사나, 슬픈 조사에 모두 흰 옷을
입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화려한 고려 청자보다는 조선의 달항아리 백자가
훨씬 친근하고 좋습니다. 빛의 색이 모이면 결국 흰 색으로 수렴
이 되지요. 인상파의 예에서도 야외로 나간 화가들이 추구한 것은
결국 빛이었고, 그 빛은 흰색으로 수렴됩니다.
예전에 한국미에 관해 말씀 드린 적이 있었는데, 한국미는 자유분방
미라고 하였지요. 정형화되고 틀에 짜여진 숨막히는 비율 등에
한국인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은 여유가 있고 여백이 있으며 자유스럽고 해학이 동반된
작품들을 만들고 즐겨왔습니다.
저자가 마이센의 치밀하고 정밀한 도자기보다는 조선의 백자가
"아이고 왔소"라고 인사하는 듯하게 느낀 것도 천상 한국인의 피가
흐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여유가 넘치고 평안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